[사설] 기업 자금시장 경색 없게 선제적으로 과감하고 충분한 대응을

내년 상반기에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가 역대 최대 수준인 50조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종전 최대인 올 상반기보다 1조2000억원 정도 늘어난 것인데, 문제는 회사채 시장이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빠졌다는 점이다. 안 그래도 채권시장에선 석유화학, 2차전지 등 업황 악화 기업과 롯데 등 유동성 위기설이 퍼진 기업의 회사채를 기피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강력한 보호주의를 내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예고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탄핵 정국까지 겹쳐 채권 거래가 끊기다시피 했다.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하려고 해도 수요처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수요도 우량 회사채와 공사채 등 안전자산으로 몰려 신용도 낮은 기업은 채권 발행이 더 어려워졌다.이런 상황에서 내년 상반기에 회사채 만기가 몰려 차환 발행에 차질을 빚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시적 자금 경색으로 기업이 흔들리는 일이 벌어지면 우리 경제 전체에도 손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 기조를 이어가기로 한 만큼 회사채 시장에 숨통이 트이긴 하겠지만 이것만으론 한계가 있다. 회사채 시장 경색을 풀려면 금융당국의 미시 대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우선 채권시장안정펀드 등 채권·단기자금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 프로그램의 가용 재원은 현재 27조원 정도 남아 있다. 여기서 회사채 매입을 늘린다면 시장 경색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공사채 발행 시기와 물량을 조절하는 것도 방법이다. 회사채 만기가 몰린 내년 상반기에 신용도 높은 공사채 발행이 겹치면 회사채 발행이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이 회사채 상당 부분을 매입하는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필요하다면 언제든 쓸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기업 자금시장이 경색하지 않도록 정부가 선제적으로 과감하고 충분한 대응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