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사랑하던 '불륜남'이 살해당했을 때, 여자는 총을 들었다

[arte] 오동진의 아웃 오브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Black Doves

‘소확행’의 첩보전, 그 양립할 수 없는 설정의 매력
스파이와 암살자의 팀워크
설정이 상큼하긴 하지만 대본에 구멍이 많다. 넷플릭스 최신작으로 6부작 영국 드라마인 ‘블랙 도브’는 매력적이고 흥미롭지만 잘 만든 작품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또 다른 영국 드라마 ‘외교관, The Diplomat’과 비교된다. 전자는 후자처럼 지적이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를 본 이용자 수는 1편만큼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시즌2 계획이 떴을 정도다.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 도브(Black Doves)' 포스터 / 사진출처. © IMDb
드라마상 이해가 안 가는 것의 대표적인 부분은 10년간의 위장 부부생활 동안 헬렌 위브(키라 나이틀리)가 남편이자 국방장관인 월리스(앤드류 버칸)를 속일 수 있는 것 따위가 아니다. 그건 그럴 수가 있다. 그런데 헬렌 위브는 1년 정도 제이슨(앤드류 코지)이라는 하급 공무원과 사랑에 빠진다. 자주 집을 비운다. 그런데 의심을 단 한 번도 안 한다? 그것까지도 괜찮다.헬렌은 비밀스럽고 가공할 범죄집단인 알렉스 클라크(트레이시 울만) 조직이 보낸 청부 살인 업자와, 그것도 집 안에서, 그것도 사위가 조용한 심야에 한판 세게 붙는다. 가구와 집기가 깨지고 부서지며 헬렌도 많이 얻어맞는다. 칼싸움을 벌인다. 소음기를 장착했다 해도 총소리가 난다. 그런데 남편인 국방장관은 2층에서 쿨쿨 잠을 잔다. 집이 그렇게 넓어?

그 많은 허술함에도 드라마 ‘블랙 도브’는 6부를 단 한 번에 정주행시킨다. 그 힘은 상당 부분 키라 나이틀리와 그녀를 돕는 트리거맨 사무엘 역의 벤 위쇼(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을 영화로 만드 ‘향수’의 주인공 역) 때문이다. 특히 사무엘, 곧 샘이라 불리는 이 남자가 매력덩어리이다. 그는 많은 게이가 그렇듯이 몸이 꽤나 작고 호리호리하다.

샘은 마이클이라는 흑인 아티스트(오마리 더글러스)와 사랑하는 사이였다. 7년 전 헥터 뉴만(루서 포트)이라는 마약 패밀리의 막내아들을 처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해 공격을 받은 후 연인 곁을 떠났다. 친구인 헬렌 위브가 위기에 처하자 정보 조직 ‘블랙 도브’의 수장 리드(새라 랭카셔)의 요청으로 지금 막 현업에 복귀한 상태다.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 도브(Black Doves)'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블랙 도브’는 일본 사무라이 시대에 견주면 일종의 ‘어정번중(御庭番衆)’ 조직과 같은 것이다. 에도 막부의 최고 권력자인 쇼군에게 직접 명령받는 정보 사찰 조직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닌자들이 여기 소속이다. 몸과 신분을 숨기는 데 있어 탁월한 능력을 지녔으며 순간 이동의 속도로 남의 뒤를 좇을 수 있는 요원들이다. ‘블랙 도브’는 이것을 여성형 캐릭터로 만들되 가능한 한 액션은 줄여 놓았다. 대신 미국의 첩보 소설가 제이슨 매튜스가 창조해 낸 여성 섹스 스파이 이미지인 ‘스패로우’ 캐릭터를 붙여 놓았다.

블랙 도브란 일종의 마타하리 조직인 셈이다. 블랙 도브의 여성 정보요원은 마타하리의 방중술에다가 닌자의 기술을 지닌 셈이다. 주인공 헬렌 위브는 여기 출신으로서 차기 총리감인 남자에게 접근해 10년 동안 블랙 도브 조직으로 하여금 ‘꿀을 빨아 먹게 하고’ 있는 중요한 자원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진짜 정체는 첩보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척하고 있을 뿐이다. 첩보물로는 꽝이다. 얘기했다시피 구멍이 많다. 첩보물의 외피를 쓰고 있는 척 사실은 러브 스토리이다. 가족 드라마이기도 하다. 게다가 뒤로 갈수록 약간 코믹해진다. 그런 면에서 드라마를 지켜보면 오히려 꽤 볼만 해진다.헬렌 위브는 남편을 10년 동안 기만하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사랑한다. 속이기만 하면 스파이 짓을 할 수가 없다. 스파이 세계의 철칙이다. 남자를 침대로 유혹한다 해도 그의 ‘솜씨’에 황홀한 척만 해서는 10년을 갈 수가 없다. 스파이는 속이는 상대와의 섹스에서도 진짜 만족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랑은 척만 하면 들통이 난다. 헬렌은 게다가 남편인 월레스 사이에서 쌍둥이 남매를 낳아 키우고 있기도 하다. 헬렌은 자신의 조직인 블랙 도브 일도 중요하지만, 가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후자는 특히, 점점 더 중요해진다.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 도브(Black Doves)'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그러나 스파이는 스파이이다. 헬렌은 10년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불안해했고 그 불안증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려 왔다. 헬렌이 결국 젊은 남자 제이슨에 빠졌던 이유이다. 국방장관의 아내로서 보면 제이슨은 ‘하찮은’ 남자이다. 게다가 연약해 보인다. 그런데 헬렌은 드디어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헬렌은 제이슨에게 자꾸 말한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여자가 아냐. 사실 헬렌은 존재하지 않아.” 헬렌이 감동했던 것은 제이슨의 대답이다. “아냐 헬렌은 존재해요. 왜냐하면 내가 그녀를 사랑하니까요.” 헬렌의 마음속은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한다.

그러면서도 남자에게 빠진다. 미쳤어 미쳤어, 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그 제이슨이 어느 날 갑자기 불분명한 이유로 살해당한다. 헬렌은 ‘빡이 친다’. 그게 누가 됐든 그자를, 혹은 그 조직을 박살 내겠다고 생각한다. 조직 블랙 도브의 수장 리브는 그런 헬렌이 불안하고 그래서 트리거 맨인 샘을 불러들인다. 리브 입장에서는 이 많은 일들이 주 영국 중국 대사의 미스터리한 죽음과 관계가 있어 보이고 자칫 중미, 미중 외교전이 확대되다 전쟁까지 날 판이다. 그런 등등의 배경이 이 드라마 ‘블랙 도브’ 이야기의 모든 시작이다.남편 월레스와의 가정을 지키고 연인의 죽음에 복수를 하는 것. 이건 사실 양립할 수 없는 감정이자 행동이다. 현실의 비현실성, 곧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로 생각한다. 그런데 곧 이것이 영화나 드라마만의 얘기는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비현실성의 현실성이다.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정과 애인을 동시에 갖고 싶어 하는 폴리아모리의 욕망이 존재하며 이 드라마 ‘블랙 도브’는 바로 그 점을 얘기하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닫게 됐다.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 도브(Black Doves)' 스틸컷 / 사진출처. © IMDb
살인 병기인 샘이 파트너인 동성 연인 마이클과의 사랑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도 이 드라마의 ‘취지’를 보여 준다. 마이클은 샘의 정체(살인 청부업자)를 알고 나서 “내가 아는 다정한 남자 샘의 진짜를 알고 싶어. 나를 사랑했던 마음에 얼마나 진심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듣는 샘은 쩔쩔매는 표정이 된다.

사람들은 일정 정도 상대를 속이고 산다. 때로는 완벽하게 속이고 산다. 만약 상대에게 일말의 진심이 없었다면 그건 사기이다. 그런데 연인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많은 부분 진심이다. 그건 이 커플들, 그것이 이성이든 동성이 됐든, 둘의 시작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사랑의 시작은 사랑의 전반을 지배하며 상대가 나를 일시적으로 속였다 해도 용서하고 돌아가는 이유가 바로 그 시작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샘과 마이클의 러브 스토리, 그 둘의 포근하고 아름다운 입맞춤은 이 드라마의 메인 테마이다.

마지막 6부에서 주인공 헬렌은 자신의 보스인 리드에게서 퍼즐의 조각을 맞춘다. 하찮은 남자 제이슨의 죽은 이유, 그 수수께끼를 푼다. 둘은 성당에서 만난다. 성가대가 노래를 부르는 중이다. 주세페 베르디가 말년에 만든 성가(聖歌) ‘4개의 신성한 조각’이다. 리드가 말한다. “기독교인들, 노래는 잘 만든단 말야.” 헬렌은 노래처럼 성스러운 조각을 맞춰 제이슨의 비밀을 알아낸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그가 자신을 진심(의 약간)으로 사랑했음을 알게 된다. 그거면 됐다고 헬렌은 생각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 도브(Black Doves)' 스틸컷 / 사진출처. © IMDb
미국과 중국이 외교 전쟁을 벌이다 국지전과 핵전쟁을 벌일 위기까지 갔다는 둥 왔다는 둥은 중요하지 않다. 헬렌에게는 죽은 제이슨의 진심을 확인하고 곧 총리가 될 남편과 아이 둘의 안위가 중요하다. 사람은 절대 큰 이유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동력, 동인은 대개 내 남자, 내 여자, 내 아이들이다. 드라마 ‘블랙 도브’는 ‘소확행’의 첩보전이다. 양립할 수 없는 얘기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점이 좋았다. 물론 이 드라마는 모두가 다 좋아할 작품은 아니다. 그럼에도 넷플릭스 글로벌 시청 1위에 올랐다. 연말에 연인과 집에서 즐길만한 작품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블랙 도브 | 공식 예고편 | 넷플릭스]
[블랙 도브 | 공식 예고편 #2 | 넷플릭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