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회 결정 존중…혼란 보태지 않고자 직무정지" [전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사진=뉴스1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27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 직후 대국민 입장문을 발표해 "국회의 결정을 존중하며 더 이상의 혼란과 불확실성을 보태지 않기 위해 관련 법에 따라 직무를 정지하고 헌법재판소의 신속하고 현명한 결정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앞서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고 한 권한대행 탄핵안을 무기명 투표에 부쳐 재석 의원 192명 중 찬성 192명으로 통과시켰다. 여야 최대 쟁점이었던 탄핵안 의결 정족수는 대통령(재적의원 과반수 발의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기준이 아닌 국무총리(재적의원 과반수 찬성)를 기준으로 한다고 우원식 국회의장이 표결 직전 발표했다. 이 기준에 반발한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 퇴장했다.한 권한대행 탄핵안이 통과되면서 한 권한대행의 직무는 정지되고, 정부조직법에 따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권한대행직을 이어받게 된다. 민주당은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을 여야 합의 전까지 보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전날 즉각 탄핵안을 발의했다.

다음은 한 권한대행의 입장문 전문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저는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250달러일 때 공직에 입문해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정부의 공복으로 일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250달러이던 나라가 1000달러, 1만달러, 2만달러, 3만달러 시대를 여는 것을 보았고, 개발독재, 고도성장, 민주화를 차례로 경험하며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이겨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나라, 이런 국민은 우리밖에 없다고 생각해 늘 자랑스러웠습니다.

저는 국민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신 헌법재판관 임명과 관련하여 여야가 합의하여 안을 제출하실 때까지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여야가 합의하여 안을 제출하시면 즉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겠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왜 거부권은 행사하면서 헌법재판관 임명은 거부하느냐”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만, 안타깝게도 저는 그런 말씀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과거에도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님은 위헌요소와 부작용 우려가 큰 법안에 대하여 국회에 재의요구를 부탁드렸고, 국회도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여야 합의 없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 헌정사에는 여야 합의 없이 임명된 헌법재판관이 아직 한 분도 안 계십니다. 그만큼 권한과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입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님도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헌재의 탄핵 심판 결정이 끝난 후에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였습니다.저는 또한 ‘대통령 권한대행은 안정된 국정운영에 전념하되 대통령의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기조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였습니다.

이러한 기조에도 불구하고 헌정사의 전례를 뛰어넘어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기 위해서는
법률과 제도가 다 규정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는 정치적 슬기, 다시 말해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여야가 합의를 못할 테니 그냥 임명하라”는 말씀은 헌정사의 전례를 깨뜨리라는 말씀이자 우리 정치문화에서 더 이상 토론과 합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만들라는 말씀이기에 깊은 숙고 끝에 저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번 비상계엄을 겪으면서 국민 여러분께서 얼마나 놀라고 실망하셨는지 절절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헌법재판관 충원이 얼마나 시급한 사안인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헌법재판관 충원 못지않게 헌법재판관을 충원하는 과정도 중요하다는 점을 국민 여러분과 여야에 간곡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헌법과 법률, 그리고 우리 헌정사의 전례를 소중히 여기며 소통을 통한 합의로 이견을 좁혀가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오늘 국회는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였습니다. 여야 합의를 청하는 말씀에 대하여 야당이 합리적 반론 대신 이번 정부 들어 스물아홉번째 탄핵안으로 답하신 것을 저 개인의 거취를 떠나 이 나라의 다음 세대를 위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저는 국회의 결정을 존중하며, 더 이상의 혼란과 불확실성을 보태지 않기 위하여 관련법에 따라 직무를 정지하고 헌법재판소의 신속하고 현명한 결정을 기다리겠습니다. 국무위원들과 모든 부처의 공직자들은 평상심을 가지고 맡은 바 소임을 흔들림 없이 수행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한평생 공직 외길을 걸으며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국정의 최일선에서 부족하나마 미력을 다해 국민 여러분을 섬길 수 있었던 것을 제 인생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