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한강의 거센 물결에도 흔들리지 않고 우뚝 선 책들이 있었다
입력
수정
지면A19
칼럼 '탐나는 책' 쓰는 편집자들“올해 출판계는 한강과 비(非)한강으로 분위기가 갈렸죠.”
올해 가장 좋았던 책 1권씩 뽑아
등
국내 작가 소설책 4권으로 최다
도 선정arte 필진이 선정한
2024
올해의 책
한 출판사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의 책은 200만 부 가까이 팔렸다. 한강뿐 아니라 부친 한승원 작가의 작품과 한강이 읽었다고 알려진 소설까지 덩달아 주목받은 한 해였다. 반면 다른 작가들의 작품은 노벨상에 가려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아쉬움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올해도 서점엔 수만 권의 새 책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경제신문은 문화 종합 플랫폼 아르떼에 ‘탐나는 책’을 연재 중인 국내 주요 출판사 편집자 11명에게 ‘올해의 책’을 한 권씩 추천받았다. 올해 출간된 책 가운데 자신이 소속된 출판사의 책은 제외하고 골랐다. 출판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스쳐 지나간 책 중에서 ‘인생 책’을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
○동시대를 그려낸 소설에 주목
문학 작품 추천이 두드러졌다. 추천받은 11권 중 7권이 소설과 산문집이다. 그중 김애란, 김기태, 조해진, 김지연 등 올해 문단에서 주목받은 국내 작가의 소설을 추천한 편집자가 많았다.‘젊은 거장’이란 수식어가 따르는 김애란은 올해 들어 13년 만에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냈다. 각자 비밀 한 가지씩 가진 고등학생 세 명의 시점을 오가며 그들이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통상 성장은 성취나 성공과 연결되지만, 김애란은 무언가를 그만둠으로써 나아가는 성장을 그렸다. 이 책을 추천한 백다흠 은행나무 편집장은 “과거의 혼돈과 상처를 현재의 내가 어떤 서사로 완성해 구성할 것인지를 보여준 소설”이라고 말했다.젊은 작가가 그려낸 동시대 청춘의 초상도 주목받은 한 해였다. 김동휘 난다 편집자는 등단 3년 차 신예 작가 김기태의 첫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박선우 한겨레출판 편집자는 김지연의 <조금 망한 사랑>을 올해의 책으로 꼽았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아이돌 그룹 팬 문화, 일반인 데이트 예능 프로그램 등 요즘 유행하는 대중문화를 소재로 활용했다. <조금 망한 사랑>엔 고달프고 얄궂은 청년 세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겼다.절판 20년 만에 재출간된 한국계 미국인 작가 차학경의 유작 <딕테> 역시 올해 화제작 중 하나다. 1982년 미국에서 펴낸 이 책은 유관순, 잔 다르크, 성녀 테레즈, 그리스 신화 속 뮤즈, 작가 자신 등 다양한 여성의 삶을 소설과 시, 자서전 등 복합적 장르로 교차시키며 풀어나가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국내엔 1997년과 2004년 나온 뒤 절판됐다가 올해 독자들의 펀딩을 통해 재출간됐다. 박은아 편집자는 “해외 각지에서 쓰인 한인 디아스포라(이주민)의 작품이 세계 독자들과 활발히 만나고 있다”며 “세대를 초월하는 예술 작품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고전”이라고 평했다.이 시대에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문학은 어떤 쓸모를 가질 수 있을까. 시인 진은영의 산문집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은 이 같은 질문을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 등 고전에서 문학의 쓸모를 건져 올린다. 서효인 안온북스 편집자는 “문학에 대한 믿음과 삶에 대한 믿음을 전파하는 책”이라고 설명했다.조해진의 반전소설 <빛과 멜로디>(김성태 김영사 편집자), 프랑스 작가 앙리 보스코의 <이아생트의 정원>(정기현 민음사 편집자) 등도 추천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세월호 기록, ‘제2의 한강’ 낳을 수도
시대를 충실하게 기록한 논픽션에서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 있다. 최윤경 어크로스 편집장은 세월호 사고 10주기를 맞아 피해자 가족 등을 인터뷰하고 관련 기록을 모은 <520번의 금요일>을 올해의 책으로 추천했다. 최 편집장은 “소설가 한강이 <소년이 온다>를 집필할 때 5·18 피해자와 유족의 구술 증언집을 참고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며 “이 책 역시 세대를 뛰어넘어 전해져야 할 기록”이라고 강조했다.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역사책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를 추천한 최지인 인플루엔셜 래빗홀 팀장은 “전쟁과 포로, 제국과 식민, 가해자와 피해자 등 단순한 프레임을 벗어나 역사의 격랑 속 전복을 반복하는 힘의 지형을 바라보는 책”이라고 밝혔다.지난해 세상을 떠난 ‘투자의 전설’ ‘워런 버핏의 영원한 파트너’ 찰리 멍거의 글과 강연을 엮은 <가난한 찰리의 연감>도 올해의 책으로 추천받았다. 정소연 세종서적 편집주간은 “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 투자란 행위는 투자자를 철학자로 만든다”며 “서학개미의 필독서”라고 말했다.시네필(영화 애호가)이라면 <영화도둑일기>를 찾아 읽어도 좋겠다. 이재현 문학동네 편집자는 “정식 루트로 구할 수 없는 영화를 수집하는 과정이 낱낱이 새겨진 책”이라고 했다.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