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비용질병'으로 전락한 韓 서비스업

'서비스는 공짜' 인식 강해
노동 생산성 세계 하위권인데
임금만 오르면서 경쟁력 하락

高부가가치 창출 위해 혁신 절실
서발법은 14년째 국회서 표류
'의료 민영화'라며 반대하는 野

강경민 경제부 차장
‘군만두’를 영어로 하면 뭘까. 이 질문에 망설임 없이 ‘서비스’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은 40대 이상의 연령대일 가능성이 높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중식당에서 탕수육을 주문하면 군만두 한 접시가 공짜로 나오곤 했다. 네 명이 당구장에서 짜장면을 배달 주문할 때도 서비스로 군만두를 달라는 말을 당당하게 했다. 하지만 요새 탕수육을 주문할 때 군만두를 서비스로 달라고 하면 ‘갑질’ 손님 취급을 받는다. 가게마다 다르겠지만, 요새 군만두 한 접시는 6000원을 훌쩍 넘는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짜장면 한 그릇 평균 가격은 6656원이다. 서비스로만 여겼던 군만두 한 접시 가격이 짜장면 한 그릇에 버금가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화(財貨)에 대한 대가를 제때 지급하는 것은 기본적 원칙이다. 군만두를 짜장면처럼 공급자가 생산하는 엄연한 재화로 보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으면서 ‘군만두=서비스’라는 공식은 사실상 사라졌다.

그렇다면 서비스는 어떨까. 사전적 의미의 서비스는 유형의 재화와 달리 용역(用役)이라는 무형적 성격을 띠는 활동이다. 서비스업은 용역을 제공하는 산업이다. 3차 산업을 1차·2차 산업과 구분하는 것이 서비스업이다. 하지만 군만두를 한때 서비스라고 농담삼아 불렀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서비스는 공짜이거나 덤에 가깝다. ‘서비스로 하나 더 주세요’ ‘이건 서비스입니다’ 등의 표현은 우리 사회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서비스(service)의 어원은 노예를 뜻하는 라틴어 ‘servus’에서 나왔다. servant(종업원·공무원), serving(봉사), servitude(종속) 등의 단어도 서비스와 뿌리가 같다. 다만 분명한 건 어느 단어에도 ‘공짜’라는 뜻은 없다는 점이다.

군만두처럼 재화에 대한 대가 지급을 당연히 여기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도 정착됐지만 서비스에 대한 대가 지급은 여전히 인색하다. 서비스에 대한 낮은 인식은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내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하위권이다. 국내 서비스산업 취업자 1인당 노동생산성은 2021년 기준 6만6000달러로, 미국(12만8000달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국내 제조업 취업자 1인당 노동생산성이 13만8000달러에 달하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서비스업이 전(全)산업에서 차지하는 부가가치 비중도 2010년 60.1%에서 지난해 63.0%로 정체된 상태다. 총수출 중 서비스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낮다. 2022년 기준 전체 수출 중 서비스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6.0%로, 세계 평균(22.3%)에도 미치지 못했다.

저출생 등의 여파로 1%대 잠재성장률 추락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성장과 고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서비스업 혁신이 시급하다. 하지만 혁신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발법)은 2011년 최초 발의된 뒤 14년째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서발법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언론에 자주 회자됐다. 의료, 교육, 법률, 관광, 교통, 환경 등 각종 서비스 분야를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담고 있다.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이유는 이 법안에 보건·의료 분야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와 야당은 서발법이 의료 민영화를 가속화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의료계도 반대한다. 당초 정부는 연내 서발법 제정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탄핵 정국 속에서 물 건너간 분위기다.

미국 프린스턴대 총장을 지낸 경제학자인 윌리엄 보몰은 서비스업이 생산성은 낮은데 임금은 오르는 구조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통 경제학에서 임금은 생산성에 비례해 상승한다고 본다. 하지만 보몰은 생산성이 빠르게 오를 수 있는 제조업에서 상대적으로 더딘 서비스업으로 주력 산업이 전환되면서 산업 전반의 생산성이 둔화되는 성장 정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봤다. 이를 ‘보몰 효과’라고 부른다. 생산성은 낮은데도 비용이 높아지면서 자생력을 잃는 ‘비용질병(cost disease)’을 낳는다는 것이다. 1960년대 등장한 보몰의 경고는 60여 년 후인 한국에서 현실화됐다. 국내 서비스업의 낮은 생산성이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 상황에까지 달한 것이다. 역대 정부마다 매번 서비스업 육성을 외쳤지만 실상은 참담하다. 서비스업이 최소한 성장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선 정치권이 혁신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서발법 통과를 이번만큼은 더 이상 늦춰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