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깎아도 안 팔리고 파산도 못해"…스타트업의 눈물

스타트업 M&A 2년새 90% 급감
올해 스타트업 인수합병(M&A) 시장 규모는 2년 전인 2022년의 10분의 1 수준이다. 대어급 스타트업을 사고파는 ‘빅딜’이 자취를 감춘 영향이다. 기업공개(IPO)와 M&A 시장이 동반 부진에 빠져 벤처업계가 고사 위기에 내몰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벤처투자 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올해 언론에 공개된 스타트업 대상 M&A는 32건(2231억원)이었다. 지난해(39건·4501억원)보다 상황이 더 나빠졌다. 2년 전인 2022년(81건·2조2894억원)과 비교하면 시장 규모가 10분의 1토막 났다.스타트업 M&A 전성기인 2022년에는 카카오게임즈가 라이온하트스튜디오(7540억원)를, 현대자동차그룹이 포티투닷(4276억원)을 인수하는 등 수천억원대 빅딜이 즐비했다. 올해는 가장 큰 스타트업 M&A 규모가 713억원에 불과하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뷰티 브랜드 어뮤즈를 사들인 건이다. 올해 100억원을 넘은 스타트업 M&A는 5건이다.

스타트업 M&A 2년새 '10분의 1토막'
투자혹한기, 경영도 매각도 막막…올해 3분기까지 144곳 문 닫아

#. 차세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으로 불리던 A사는 중견기업과의 매각 논의를 중도 포기했다. 매수 의사를 밝힌 기업이 갑자기 기업가치를 절반 수준으로 낮춰 잡았기 때문이다. A사는 회사를 사줄 다른 기업을 찾고 있지만 관심을 보이는 곳은 거의 없다.

#. 서울 서초동에 본사를 둔 B사는 대표가 직원들에게 돈을 빌린 후 갚지 않아 구설에 올랐다. 회사 상황이 어려워진 후 자금을 돌려가면서 막다가 생긴 일이다. 파트너사가 가압류에 들어가 노트북 등 사무실 집기에 차압 딱지가 붙기도 했다.

○ 업계 흔드는 ‘혹한기 갈등’

27일 더브이씨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폐업한 스타트업은 144곳이다. 2022년(92곳)은 물론 전년 동기(119곳)보다 늘었다. 투자 혹한기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매각을 추진했다가 실패하고 폐업을 결정한 곳이 적지 않다.

경영이 악화한 스타트업이 늘면서 창업자와 직원·고객 사이 갈등도 빈번해졌다. 한 스타트업은 투자 유치가 어렵다는 이유로 1년 동안 직원 8명의 임금 총 1억9000만원을 체불했다. 고용노동부 시정 지시를 받고도 차일피일 임금 지급을 미뤘다. 결국 이 회사 대표는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또 다른 플랫폼 스타트업은 3개월간의 임금 체불로 퇴사한 직원들이 단체 소송을 진행 중이다. 사실상 영업이 중단돼 회사 이름만 남아 있다.

몸값을 낮춰 후속 투자를 끌어내는 과정에서 창업자와 투자사가 충돌하는 사례도 자주 일어난다. 기업가치가 낮아지면 기존 투자자의 지분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는데 기업가치 조정에 협조하지 않는 기존 투자사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올해 1분기 2년 연속 벤처 투자를 받는 데 성공한 스타트업 5곳 중 1곳(20.7%)은 몸값을 깎아 투자를 유치한 것으로 확인됐다.더 이상 사업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돼 파산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투자사가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투자 실적이 중요한 운용사(GP)인 벤처캐피털(VC)이 출자자(LP) 눈치를 보느라 쉽게 파산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다. 동의 없이 파산하면 형사 고소하겠다며 스타트업에 엄포를 놓는 투자사가 적지 않다.

○ “스타트업 퇴로 열어줘야”

기업공개(IPO) 분위기가 악화한 가운데 인수합병(M&A) 시장까지 얼어붙자 스타트업은 진퇴양난에 부닥쳤다. 회수 통로가 막혀 기업은 물론 VC도 신규 투자를 꺼린다. 전성기 네이버와 카카오처럼 적극적으로 스타트업을 사들이는 빅테크도 눈에 띄지 않는다.

2년 전까지 스타트업 M&A 시장의 큰손이던 유니콘 기업들도 활동을 멈췄다. 2020~2022년엔 비바리퍼블리카(타다 인수), 컬리(헤이조이스 인수), 오늘의집(집다 인수), 당근마켓(페스타 인수) 등이 적극적으로 스타트업을 사들였다. 하지만 올해는 세무 플랫폼 세이브잇을 사들인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정도만 활동했다.‘불황형 M&A’가 일부 나타났지만 소수다. 콘텐츠 커뮤니티 스타트업 퍼블리는 다른 스타트업인 뉴닉과 시소에 분할돼 팔렸다. 규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공유 킥보드 회사 피유엠피(씽씽)와 올룰로(킥고잉)도 생존 전략으로 M&A를 택했다. 스타트업 전문 로펌 관계자는 “몸값을 낮춰서라도 팔았으면 다행이지만 투자도 못 받고 팔지도 못하면 결국 재기 불능 상태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창업자 연대보증도 논란이 되고 있다. 프롭테크 스타트업 어반베이스는 지난해 12월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그러자 투자사 중 한 곳인 신한캐피탈이 투자 원금 5억원과 이자 7억원을 합산해 약 12억원을 회사에 상환 청구했다. 지난 9월엔 연대보증인으로 설정한 대표 자택에 가압류를 신청했다. 회사 매각도 논의했지만 투자사와의 갈등이 불거져 무산됐다.

최근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설문에 따르면 창업자 36%는 투자 계약 때 연대 책임을 요구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78%는 연대 책임이 창업 활동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고, 94%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