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항공 전문가 "있으면 안 되는 위치"…커지는 '둔덕' 논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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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전날 무안국제공항에서 있었던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사고 배경과 관련, 무안공항 활주로 끝에 위치한 로컬라이저(Localizer·착륙 유도 안전시설)가 설치된 '둔덕'이 핵심 원인이 됐을 것이란 추측이 국내·외에서 제기되고 있다.
활주로 끝단 흙벽·콘크리트 구조물
국내·외 전문가 "인명피해 키웠다"
"섣불리 판단할 수 없어" 자중론도
29일(현지시간) 영국 스카이뉴스는 전투·항공기 조종사 출신의 항공 분야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리어마운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참사의 원인에 대해 상세히 분석했다.리어마운트는 이 방송에서 무안공항 활주로 끝의 둔덕이 이번 사고의 결정적인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활주로 끝에 위치한 단단한 구조물과 비행기가 부딪치지 않았더라면 인명 피해가 줄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착륙 시 조종사가 플랩이나 랜딩 기어를 내리지 못한 어떤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그 자체가 탑승객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 원인은 아니었을 것"이라며 "승객들은 활주로 끝을 조금 벗어난 곳에 있던 견고한 구조물에 부딪혀 사망했는데, 원래라면 그런 단단한 구조물이 있으면 안 되는 위치"라고 언급했다.
이어 "원래 이런 장치는 땅에 고정돼 설치되지만, 기체와 충돌 시에는 기체에 심한 손상을 주지 않도록 부러지거나 접히도록 설계된다"며 "이번에는 비행기가 그 구조물에 부딪혀 그대로 찌그러지고 폭발한 게 보인다"고 덧붙였다.조종사의 착륙 자체는 훌륭했다고 리어마운트는 평가했다. 그는 "훌륭한 착륙이었다. 영상을 자세히 보면, 벽에 부딪히기 직전까지 기체에 별다른 손상이 없다"며 "그 벽이 없었다면, 탑승객 전원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국내 전문가 "유연한 구조물이었다면…"
국토교통부예규 항공장애물 관리 세부지침 제25조에 따르면, 로컬라이저 안테나 등 장애물이 될 수 있는 공항 장비와 설치물의 종류는 항공기가 충돌했을 때 최소한의 손상만을 입히도록 돼있다. 평시엔 구조적 통합성과 견고성을 유지하다, 그 이상의 충격이 가해지면 항공기에 최소한의 위험만을 가하면서 파손·변형·구부러지게끔 설치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김홍락 국토부 공항정책관은 30일 한경닷컴에 "무안공항에 있는 둔덕의 경우 활주로 종단 바깥에 위치해 규정상의 문제는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구조물의 재질에 관해서는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국내 전문가들은 조항과 별개로 둔덕이 화를 키웠다는 지적을 잇따라 제시하고 있다.
김인규 한국항공대학교 비행교육원장은 이날 한경닷컴에 "로컬라이저 등 공항의 계기착륙시스템(ILS) 밑에 둔덕이 왜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로컬라이저 안테나를 왜 둔덕 위에 두고 있는지 감독관이 파악해야 할 것 같다. 법 규정 준수 여부와 별개로 단순히 둔덕이 없었다면 기체의 직접적인 파손 피해가 줄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일 신라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무안공항 활주로 끝단에 둔덕이 있는 이유와 관련 "항공기가 랜딩하려면 진입 각도를 2.5도에서 3도 사이로 맞춰야 하는데, 그러려면 로컬라이저가 활주로 표면과 동일한 높이에 설치돼야 한다. 이에 무안공항은 로컬라이저의 높이를 맞추려고 둔덕을 세워 활주로와 높이를 맞추려고 했던 것 같다"라고 추정했다.그러면서 "단단한 구조물로 설치하지 않고 좀 부드러운 구조물로 만들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예컨대 공항마다 펜스가 설치돼있는데 펜스 정도는 비행기가 충돌한다고 하더라도 기체가 폭발할 정도로 충격을 주지는 않는다. (사고 영상을 보면) 활주로 끝단에서 속도가 조금씩 줄어드는 게 보인다. 구조물이 유연했다면 항공기가 일부 파손되더라도 지면을 지나가면서 서서히 속도가 줄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예단하긴 어렵지만 미국에서 훈련용 항공기로 학생들과 비행도 많이 하고 해봤다. 외국 공항에서 활주로 바깥에 인공구조물이 설치된 것은 본 적이 없다"고도 말했다.
다만 진상 규명을 위한 정보와 증거가 수집되고 있는 단계에서 섣부른 추측은 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한경닷컴에 "사고 원인을 섣불리 단정짓기 어렵다. 잘못하면 마녀사냥이 될 수 있다"며 "예컨대 버드스트라이크가 엔진에 영향을 줬다고 해서 랜딩기어가 안 내려가는 게 아니다. 기체결함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의미다. 블랙박스, 음성 분석 등의 증거가 나온 뒤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연방항공청(FAA) 안전 검사관인 데이비드 수시도 전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추측은 조사관의 최악의 적"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항공기 사고 조사를 할 때 정보를 철저히 보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며 "이러한 종류의 사고에 대해 추측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둔덕과 관련한 의문이 증폭되자, 국토부 관계자는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무안 공항은 활주로 종단 안전 구역 외곽의 활주로 끝단에서 약 251m 거리에 콘크리트 외벽을 포함한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이 설치돼 있다"며 "여수공항과 포항경주공항 등에도 콘크리트 구조물 형태로 방위각 시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고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면밀히 파악해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아울러 국토부는 사고 재발 방지 차원에서 항공기 운영 체계 전반에 대한 안전 점검을 진행할 계획이다. 국토부는 "사고 기체인 B737-800는 국내에서 101대가 운영되고 있다"면서 "해당 기종에 대해 특별 전수 점검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안공항 외 타 공항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라고 관계자는 덧붙였다.
김영리/이민형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