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나온 증권사 '반성문'…"2024년 가장 큰 실수는" [돈앤톡]

신영증권 '나의 실수' 보고서
신영증권 보고서 첫 장 이미지
올해 2660선에서 시작한 코스피지수가 '3000선 돌파'란 기대와는 달리 2400선 수성에도 실패하며 마지막 거래일을 마쳤습니다. 갖은 대내외 리스크(위험)에 흐름은 아래로 흘러내렸습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올해 부진했던 증시를 돌이켜보고 예측에 실패했거나 분석에 아쉬움이 남는 대목을 정리한 '반성문'을 내놨습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30일 소속 애널리스트들과 함께 '2024년 나의 실수'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증권사는 2022년 말부터 이런 콘셉트의 '나의 실수' 보고서를 해마다 펴내고 있습니다.김 센터장은 중국 기업들의 약진이 예상보다 거셌다며, 이를 간과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중국 경제는 국내총생산(GDP) 기준 글로벌 2위라는 큰 덩치이기 때문에 웬만한 자극으로는 방향을 틀기 어렵지만, 개별 기업들의 약진은 현기증이 날 정도"라며 "올해 내 가장 큰 실수는 중국 기업들의 약진을 지나쳤단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전기차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중국 업체들의 약진이 놀랍다고 평가했습니다. 김 센터장은 "일본 자동차업체 혼다와 닛산의 합병 추진과 독일 폭스바겐의 공격적인 구조조정은 중국차의 부상에 대한 자구책"이라며 "삼성전자에 대한 걱정은 꼭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뒤처진 데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범용 D램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은 기술 혁신뿐 아니라 덤핑(저가 밀어내기) 공세로도 우리나라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철강과 석유화학·태양광·디스플레이·2차전지 등의 분야에서 중국발 공급과잉이 감지됐습니다. 여기에 트럼프의 관세 부과 협박에 맞서기 위해 중국 당국이 의도적으로 용인하고 있는 듯한 위안화 약세도 한국 경제에는 부담이란 설명입니다. 김 센터장은 "이래저래 우리는 중국 포비아(공포증)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짚었습니다.같은 증권사의 박소연 주식전략 애널리스트는 "한국 주식시장의 누적된 문제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 후회된다"고 고백했습니다. 중복상장, 순환출자 등 50년 넘게 누적된 증시 속 문제들이 일부 세제 혜택이나 규제 완화 정도로 해결될 리 없었다는 반성입니다.

그는 "올해 정부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은 연초부터 빠르게 달아올랐지만 그만큼 식는 속도도 빨랐다"며 "자생적 시장환경은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정책적 동력만으로 결과를 내기는 어렵다. 해묵은 문제들은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았나 반성한다"고 했습니다.

조용구 채권전략 담당 애널리스트는 지표와 논리를 따라야 하는 애널리스트의 역할론에 갇혀 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지 못했던 데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그는 "한국은행의 11월 두 번째 금리 인하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공식 전망으로 제시하지 못했고, 내외금리 디커플링 기조가 이 정도로 심해질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한국은행은 줄곧 가계부채와 부동산시장 과열에 대한 경계와 저금리의 구조적 부작용을 근거로 매파적 기조를 이어왔다. 하지만 11월 뚜렷한 신호 없이 이례적 연속 인하를 단행했다"며 "정책 기조의 변화를 감지했는데도 애널리스트로서 뚜렷한 논리와 배경 없이는 전망을 바꾸기 어려웠던 점은 한계였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애널리스트는 논리에 따라 지표와 가격을 전망해야 하므로, 정책에 대한 평가를 활발히 하는 학계나 직감에 따라 기존 의견을 갑작스럽게 변경하는 운용역, 트레이더와는 다르다"면서도 "수면 아래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보다 정교한 투자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강기훈 퀀트 담당 연구원도 같은 맥락에서 정성적 위험에만 초점을 맞춘 채 정성적 위험은 외면했다고 반성했습니다.그는 "밸류업 정책 시행 이후 계속해서 밸류업 포트폴리오를 최신 기준으로 수정해 왔다. 하지만 이달 생긴 정치적 변수로 밸류업 정책의 가장 큰 수혜업종인 은행주가 일제히 내렸고 곧이어 밸류업 수혜주 전반이 밀렸다"며 "정치적 변화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정부의 지지율 추이 등을 근거로 경제외적 위험을 계속 측정하거나 점검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어야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렇게 정량적 지표에만 치중하고 경제외적 위험을 놓친 게 올해 가장 큰 실수였다"며 "자본시장의 화법으로 설명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지지율과 여론조사 결과 등을 외면해 온 것은 아닌지 생각된다. 앞으로는 정성적 요인도 함께 점검해 나가고자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