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나 홀로 뒷걸음 2024 대한민국…모두 겸허히 반성하고 성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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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사로잡은 K매력 일순간에 추락연초 갑진년(甲辰年) 새해를 맞을 당시 우리의 목표는 분명했고 꿈은 컸다. 수명을 다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동시 혁신으로 선진국을 넘어 초일류 국가 도약의 틀을 다지겠다는 의지로 충만했다. 해외시장의 호평과 격찬에 힘입어 ‘K에브리싱(K-Everything)’을 세계로 확산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초일류 선진국 갈림길에서 골든타임 허비
위기극복 DNA로 새로운 전기 만들어야
하지만 한 해의 마지막 날,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고 말았다는 낭패감과 좌절감이 온 나라에 가득하다. 미래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딛기는커녕 ‘나 홀로 뒷걸음질’치며 국격이 속절없이 추락하고 말았다는 열패감이다. 거의 모든 혼란의 원인이자 결과인 삼류 정치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 야당발 29번의 막무가내 탄핵과 최고지도자의 엉뚱한 비상계엄 맞불은 중남미·아프리카발 해외 토픽을 보는 듯했다.그 바람에 국가의 미래를 향한 핵심 과제는 파산지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초 신년사에서 ‘이권 카르텔 혁파’와 연금·노동·교육 등 3대 개혁을 강조했지만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했다. 연금개혁은 정치권·이익집단의 포퓰리즘에 길을 잃었고, 노동개혁·교육개혁도 거대 노조와 기득권층의 격렬한 반대에 속절없이 밀리고 말았다. 거대 야당의 ‘방탄 폭주’에 밀려 선진경제에 필수인 주 52시간제·상속세·반도체특별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정 호소는 물거품이 됐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가운데 2위(이코노미스트지)로 평가받은 경제도 불과 1년 만에 곤두박질쳤다. 원화가치·주가 하락이 잘 보여준다. 원·달러 환율은 천장이 뚫린 듯 치솟아 1500원에 육박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높아졌다. 올들어 코스닥지수는 21.7%, 코스피지수는 9.6% 급락해 아시아 증시 중 꼴찌다. 3분기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낸 한계기업(이자보상배율 1 미만)이 대기업 5곳 중 1곳에 달할만큼 실적 부진이 뚜렷하다.
거시지표도 바닥을 기고 있다. 2.5% 언저리를 기대한 올 경제성장률은 2.0%에 간신히 턱걸이할 전망이다. “2040년대에 잠재성장률 0%대 진입이 불가피”(한국은행)하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왔다. 자본·노동·총요소생산성이 추락하는 가운데 국가·가계·기업 부채가 5782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약 2500조원)의 2.5배에 달하고 있어서다.가장 걱정스러운 대목은 부진한 혁신 경제다. 선진국을 따라잡아도 모자랄 판에 인공지능(AI) 격차는 점점 벌어지는 양상이다. 엔비디아, 브로드컴 같은 혁신기업이 주도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 경제의 주역은 여전히 수직계열화된 전통산업이다. 2022년 7곳이던 신규 유니콘 기업이 올해는 2곳(에이블리, 리벨리온)에 그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사회·문화 전반의 지체 현상도 걱정을 더한다. 이념부터 세대, 성별에 이르기까지 상대를 부정하고 적으로 간주하는 갈등의 문화로 치닫는 모습이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극심한 대립에서 잘 알 수 있다. 최고 전문직역 종사자마저 기득권 사수에 올인하니 사회 구성원 간 신뢰가 추락할 수밖에 없다. 남녀공학 전환을 둘러싸고 지성의 전당에서 벌어진 무질서는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쾌거마저 이념·젠더 갈등 확산의 불씨로 전락한 모습이다. 조사가 한창인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역시 사회 전반의 신뢰 하락 및 무책임성 확대와 무관치 않은 일로 봐야 한다.
초일류 선진국 진입의 갈림길에서 정책적·제도적 인프라 구축을 위한 골든타임을 허송세월하고 말았다. 문제는 제대로 반성하고 성찰하지 않으면 내년에는 더 큰 후폭풍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누구 잘잘못을 따질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겸허한 마음으로 스스로 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