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이 아니라 예술이다… 8팀이 찾아낸 ‘건축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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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건축의 장면'건축이라는 예술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흔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건물이다. 높게 솟아오른 빌딩부터 오랜 역사를 간직한 유적까지, 건축은 인간이 내부로 들어가 활동하고, 생활하는 이른바 소비의 대상으로 여겨진 셈이다.
2025년 6월 1일까지
지금 서울 관악구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에는 이러한 건축의 틀을 깨는 전시가 등장했다. '건축의 장면'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건축을 단순 인간의 소비 대상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한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지난해 1년 동안 펼쳐온 전시 의제인 건축을 마지막으로 조명하는 피날레 전시다. 총 8팀의 작가들이 건축의 진짜 의미를 찾는다. 건축가뿐만 아니라 시각예술 작가들도 참여해 영상, 설치, 조각 작품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작품 15점을 선보인다.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지점은 건축과 영상의 조화다. 무엇보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적 경험을 담아낸 영상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공간이라는 물리적 제약을 넘어서 건축을 즐기고 감상하는 기회를 내어준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이번 전시를 통해 건축과 영상의 상호작용에 집중한 이유는 서로 다른 듯 보이는 두 예술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건축은 공간예술로, 영상은 시간예술로 분류되어 왔다. 하지만 건축과 영상은 역사 속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한 것은 물론, 두 영역 모두 공간성과 시간성을 중요한 속성으로 공유한다는 점을 찾아낸 것이다. 관객들에게 서로 다른 예술이 내는 시너지를 전달하고자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이번 전시에 참가한 건축가 팀 모스 아키텍츠는 건축으로 실험을 펼치며 건축이라는 예술의 경계를 확장해 온 작가다. 이번 전시에 나온 이들의 작품 '로맨스 오브 시스템즈'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영구 소장되며 세계의 주목을 받은 작업이다. 건축을 둘러싼 인간의 환상을 주제로 건물 너머 꿈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박선민은 버섯과 건축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기발한 작품을 내걸었다. 그는 자연과 인간의 문화 사이의 연결점을 찾아내는 작업으로 주목받는 작가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 '버섯의 건축'은 자연을 상징하는 버섯과 인류 문화를 상징하는 건축을 결합해 버섯이 피어나는 과정과 건축물이 탄생하는 순간이 닮아 있다는 것을 관객에게 보여준다.박준범과 이윤석은 도시라는 공통적 주제로 서로 다른 시선을 나타낸다. 박준범은 건축을 통해 자본주의 시대 도시의 상품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탐구하는 영상 작업을 내놨다. 반면 이윤석은 동양과 서양의 도시 속 건축 문화에 주목했다. 서양 건축문화와 한국적 요소가 공존하는 서울의 모습을 유튜브 동영상의 형태를 빌려 표현했다. 또다른 국내 작가인 홍범은 자신의 기억 속 공간을 재구성해 새로운 '심리적 공간'을 구축해냈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초월하는 가상 공간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건축가와 영화감독이 만나 건축영화를 만드는 팀 베카&르무안은 이번 전시에서도 건축을 주제로 한 인간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낸 작업을 선보인다. 건축물이라는 공간 속에서 각자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표현한 영화 '오슬라비아 - ‘과거의 미래’가 잠자는 동굴'이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로마 국립21세기미술관(MAXXI)에 소장된 작품이다. 건축물 그 자체보다 공간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서사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세계 예술계의 찬사를 받았다.보비스투 스튜디오는 실제 건축물의 질감과 질량을 영상을 통해 신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신개념 작품을 선보인다. 가장 마지막으로 만나는 작품을 만든 팀 나나와 펠릭스는 건축을 통해 도시개발과 발전주의라는 주제를 다뤘다. 인간이 만들어낸 도시 풍경을 비추며 발전이 가져다 준 세상의 아름다움을 탐구한다.8팀의 작가가 모두 다른 시선으로 건축을 바라보는 이번 전시는 건축물을 물리적 구조물 대신 세계를 이해하는 틀로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전시를 찾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인간이 건축을 통해 세상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전시다. 전시는 6월 1일까지 이어진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