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하면 감면해줄게"…카르텔 리니언시 제도의 명과 암 [이인석의 공정세상]

과점시장의 가격 담합 '카르텔'
"자진 신고하라" 리니언시 도입
"진술 신뢰 의심" 비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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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300년 동안 이루어진 서구의 산업화를 단 30년 만에 따라잡는 압축성장을 일구었다. 이러한 압축성장을 위해 정부는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소위 '될만한' 몇몇 산업과 대기업을 관리하며 이들 위주로 성장정책을 폈다. 우리 경제는 성장이라는 과실(果實)뿐만 아니라 산업 간 불균형 및 몇몇 사업자로만 이루어진 과점시장이라는 산업 구조적 문제점 또한 안게 됐다.이처럼 정부 주도로 짜인 과점시장에서는 품질이나 서비스의 차별성을 찾기가 쉽지 않고, 품질개발도 뒷전으로 밀려나기에 십상이다. 소비자의 기호보다는 정부 대출이나 지원 여하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좌우되고, 특화된 기술 없이 정부 지원으로 살아남은 사업자들은 품질경쟁보다는 가격 위주의 경쟁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은밀하게 가격 '짬짜미'하는 카르텔

과점시장에서는 사업자들 간 짬짜미도 용이하다. 과점시장에서 가격결정권은 통상 공급자에게 있다. 과점시장을 주도하는 사업자가 가격을 조정하면 나머지 사업자들도 가격차별화보다는 현상 유지를 위해 선도사업자에 맞추어 가격을 조정하는 가격 동조화 현상이 일어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심지어 과점시장의 사업자들은 과열 경쟁을 지양하고 친목을 도모한다는 명목하에 은밀히 만나고 공조해 가격을 담합하거나 서로의 고객을 빼앗지 않기로 합의하는 등의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당국의 행정지도라도 있는 경우에는 업계 이견을 조율한다거나 행정지도에 따른다는 명목으로 또 다른 담합을 시도하기까지 한다.그런데 경쟁사업자 간 이러한 합의, 즉 '카르텔(Cartel)'은 시장의 경쟁을 제한해 가격을 높이고 품질경쟁을 제한하여 소비자 후생을 저해한다는 측면에서 중대한 위법행위에 해당한다. 이에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은 경쟁사업자 간 카르텔을 부당한 공동행위로 금지한다. 적발 시 과징금을 부과하고,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하여 경쟁사업자 간 카르텔을 엄벌하고 있다.


내부 고발하면 과징금 감면... '리니언시'의 등장

문제는 카르텔이 경쟁사업자 사이에 은밀하게 이루어져 적발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구두로만 합의하고 메모 등 기타 자료를 남기지 않는 등 그 수법이 보다 고도화·지능화하고 있다. 특히 과점시장에서는 가격이 쉽게 동조화하는 경향이 있어 경쟁사업자끼리 가격이 유사하게 움직이는 점만으로는 카르텔이 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공정거래법은 카르텔을 보다 쉽게 적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했는데, 바로 자진신고자 감면제도(Leniency Program·리니언시)다.

리니언시의 시행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리니언시는 카르텔에 가담한 사업자가 해당 사실을 자진해서 신고하고 증거를 제출하는 등 조사에 협조할 경우, 자진신고자 1~2순위에 따라 시정조치 및 과징금의 감면 혜택을 준다. 내부자 신고를 유도해 갈수록 은밀해지는 카르텔에 대한 적발 가능성을 높이고자 도입됐다.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올해 공정거래백서에 의하면 이 제도를 통해 적발한 카르텔 건수가 전체 적발 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9년부터 2023년까지 총 56.8%에 이른다. 2010년대 이후로만 따지면 전체 적발건수 가운데 60~80% 정도가 이 제도를 통해 적발됐다. 카르텔 적발 가능성을 높이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또 사업자 간 신뢰를 무너뜨려 카르텔 시도 자체를 억제하고 예방한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자료=공정거래위원회 공정거래백서

카르텔 당사자 처벌 無... "신고 내용 못 믿어"

리니언시가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카르텔 적발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부이기는 하지만 카르텔에 가담한 자를 처벌하지 않는 것이 과연 정의 관념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나 의문부호를 달 수밖에 없다. 특히 카르텔을 주도해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사업자가 감면 혜택을 받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실제로 카르텔을 주도한 사업자들은 공정위의 1차 조사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조사정보를 가장 먼저 포착하는 만큼 1~2순위 자진신고자가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고, 카르텔을 주도한 만큼 관련 증거도 많이 가지고 있어 자진신고자로서의 요건을 충족하는 것도 용이하다. 반면 다른 사업자의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카르텔에 가담한 사업자들은 조사 순서도 상대적으로 뒷순위고 관련 증거도 충분하지 않아 1~2순위 자진신고자로 인정될 가능성이 작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카르텔 조사가 자진신고자의 진술에만 의존하는 경우도 문제다. 카르텔은 은밀하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어 물증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카르텔 조사는 진술 위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자진신고자가 1~2순위로 인정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진술하고 조사담당자가 특정 사실을 염두에 두고 확증편향을 갖는 경우 신고내용이 자칫 허위 또는 과장으로 오염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 경우 1~2순위 자진신고자의 진술이 일치한다는 점만으로 다른 사업자에게 신고내용을 탄핵할 기회도 충분히 주지 않은 채 물증도 없이 사실인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실체적 진실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사실인정이 이뤄질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공정위가 공익 신고자에게 20억 원의 포상금까지 지급하며 3000억 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한 고철구매 담합 건의 경우 자진신고자의 일부 진술이 허위로 판단되어 올 9월에 무죄가 선고된 사례까지 있었다.


리니언시도 개선 검토해야

카르텔에 가담한 사업자가 감면 혜택을 누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진신고를 하는 경우 신고내용이 사실과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신고내용이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는지에 관해 보다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죄 없는 자를 처벌하지 않는 소극적 실체진실주의도 죄 있는 자를 처벌하는 적극적 실체진실주의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카르텔을 주도하며 경제적 이익을 누린 사업자에게도 전면적인 감면 혜택까지 주는 것이 타당한지도 충분한 고민이 필요하다.리니언시가 카르텔 적발을 위한 필요악(必要惡)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흠결 없는 제도는 없는 만큼, 이제는 이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인석 법무법인 YK 대표변호사 I 서울대 공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제3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제27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서울남부지법, 서울중앙지법, 서울고법 부장판사, 대전고법 부장판사 등 23년간 법원에서 경력을 쌓았다. 법원행정처 형사심의관, 공정거래 판결작성실무 집필위원 등도 역임했다. 2021년 법무법인 광장에서 공정거래그룹장을 맡아 공정거래를 비롯한 각종 기업 관련 송무 전문가로 활동해 왔다. 현재 법무법인 YK의 대표변호사이자 공정거래그룹장으로 활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