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트럼피즘 겹쳐 '시계 제로'…올해 1%대 성장 예상

경기 전망

트럼프 2기 보호주의 기조에
범용 반도체·석유화학 타격
수출 증가율 1%대로 떨어질 듯

물가 상승 부담은 줄어들어
소비·설비 투자 소폭 개선 기대
건설업 부진에 고용 위축 우려
탄핵 정국이 장기화하면서 한국 경제가 ‘시계 제로’ 상태에 접어들었다. 대외적으로는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2기 행정부의 출범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급격히 위축되는 내수와 고공행진하는 원·달러 환율도 한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은 1%대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 흔들리는 수출

무엇보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흔들리고 있다. 2023년 수출이 저조했던 ‘기저효과’가 끝났다.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피크아웃’(peak out·정점 찍고 하락세) 우려가 커지고 있다.한국은행은 전년 대비 재화 수출 증가율이 작년 6.3%에서 올해 1.5%로 뚝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업사이클 조정, 경쟁 심화, 통상환경 불확실성 확대 등을 고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고성능 반도체와 조선 등 일부 품목은 좋은 흐름을 유지하겠지만, 범용 반도체와 석유화학 등 주요 수출 품목에서 수출 둔화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기업들은 올해 통상 환경이 전례 없이 불확실하다고 보고 있다. 최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간한 ‘2025년 1분기(1~3월)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 조사(EBSI)’ 보고서에 따르면 내년 1분기 EBSI는 96.1로 조사됐다. 4개 분기 만에 기준치인 100을 밑돌았다. 100보다 낮으면 전 분기 대비 수출이 악화할 것이란 의미다. 한국경제인협회가 12대 수출 주력 업종 15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5년 수출 전망 조사’에서도 올해 수출은 작년 대비 1.4%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측됐다.

한은은 수출 증가세가 둔화하면서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작년 900억달러에서 올해 800억달러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제 유가 하락 영향으로 수입이 많이 늘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커 흑자 기조는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서비스수지는 해외여행 증가 등으로 적자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 고용시장 악화 우려

수출 증가세가 약화하면서 올해 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을 밑돌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기획재정부와 국내외 주요 기관의 공통된 예측이다. 한국 경제의 잠재 성장률이 2%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1%대 중후반의 성장률을 예상하는 것이다.

기재부는 올해 경제 성장률이 2%를 밑돌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1.9%)과 해외 투자은행(IB) 시각도 어둡다. 최근 씨티는 “미국이 관세를 인상하면 중국, 캐나다, 멕시코 등으로의 수출에서 한국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로 제시했다. 골드만삭스 1.8%, UBS 1.9%, 노무라 1.7%, JP모간 1.7%, 바클레이스 1.8%, HSBC 1.9% 등 다른 IB도 대부분 1%대 성장률을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내수가 소비와 설비 투자를 중심으로 완만하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은은 민간소비가 전년 대비 1.2%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올해는 2.0%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설비 투자 증가율도 작년 1.5%에서 올해 3.0%로 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다.소비와 설비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는 이유는 물가 부담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작년(2.3%)보다 낮은 1.9%로 제시했다. 국제 유가 등 공급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이 높지 않다. 다만 1430원대 원·달러 환율이 유지될 경우 연간 물가상승률은 0.05%포인트가량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탄핵을 둘러싼 정쟁이 장기화하면 내수와 투자 심리가 더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경제 심리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건설 투자 부진은 계속될 전망이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건설투자는 작년(-1.3%)에 이어 1.3%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저성장과 건설업 부진 여파로 고용 시장도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한은은 작년 17만 명이던 취업자 수 증가 폭이 올해 13만 명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서비스업 고용은 정보기술(IT)·돌봄 수요 확대로 취업자 증가세가 이어지겠지만, 건설업과 제조업은 취업자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