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 안정·국민 통합 없이 성장도 번영도 없다

2025 위기극복 (2) 정치 개혁

보복·증오의 정치, 선진 한국 무너뜨려
상호 관용·자제·설득으로 갈등 치유를
정치권에서도 새해가 되면 상생과 통합, 다짐을 얘기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올해는 이런 말 자체가 잘 들리지 않을뿐더러 하기도 민망하다. 우리 정치가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망가졌다는 뜻이다. 해방 8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에 정치인들에게 무엇을 주문하는 것조차 허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 외교, 안보, 문화 등 전 부문에 걸쳐 ‘간난신고(艱難辛苦)’ 끝에 쌓아 올린 ‘선진 대한민국’을 무색하게 만든 진원지도 정치다. 민주화의 단초를 마련한 지 40년 가까이 됐는데, 순식간에 정치 후진국이란 오명을 듣게 됐다.

정치는 대오각성하는 것으로 새해를 출발해야 마땅하다. 우선 형편없이 무너진 정당의 기본 기능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정당은 기본적으로 권력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어서 상대와의 치열한 다툼과 갈등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민주주의 체제라면 지켜야 할 기본 선이 있다. 권력을 향한 열정에는 공공선을 위한 책임 의식과 균형적 판단이 깔려 있어야 한다. 이게 전제되지 않는다면 정당은 한낱 사익을 추구하는 이익단체에 불과하다.지금 우리 정당의 모습이 딱 이렇다. 지난해 보복정치가 횡행하면서 정당 본연의 기능이 사라졌다. 총선을 거치며 살벌하고 극단적인 진영정치가 더 심해졌다. 정치가 복수의 도구가 되고, 갈라치기에 앞장서면서 이념·노사·빈부 갈등 해결이라는 공적 역할은커녕 사회 전반의 분열을 촉발하는 진앙이 됐다. 정치 실패로 인한 갈등 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27%에 다다른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29번에 걸친 탄핵안 제출, 입법 폭주 등 다수의 폭정은 멈추지 않았다. 대통령은 여야, 여여 삼각 갈등 구조 속에서 허우적대다 계엄령으로 파국을 초래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외골수 여야의 충돌은 ‘증오의 정치(hatocracy)’ ‘광기의 정치(democrazy)’ ‘야수의 정치(brutocracy)’ 등 온갖 험악한 오명을 낳았다. 정치 지도자의 신년사는 실망을 더한다. 우원식 국회의장부터 ‘대통령 탄핵심판 차질 없는 진행’ 등 정파적 입장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등 통합과 갈등 치유를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 때문에 대한민국이 얼마나 후퇴했는지 정치권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정치가 이 지경인 데는 제도적 문제도 있을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 승자독식 선거제도 등 구조적 문제를 고치기 위한 개헌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과거 숱하게 개헌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실패한 원인은 온통 정파적 유불리 셈법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제대로 개헌하려면 당파적 이익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한 번의 실패 사례만 쌓일 뿐이다. 개헌이 모든 병폐를 씻어줄 수도 없다. 상호 관용과 지난한 민주적 방식의 토론 등 정치적 기본 기제(機制)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제도를 잘 갖춰도 소용이 없다. 20년간 대통령을 세 번이나 탄핵할 정도의 폭압적 입법 권력 제어도 반드시 필요하다.새해 난제는 국내 정치적 혼돈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대외 환경까지 복합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엄중한 시기에 무엇보다 정치 안정이 중요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계엄 실패와 대통령 및 그 권한대행 줄탄핵 성공을 승리라고 여긴다면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정권 다리 잡기식의 입법 폭주와 거부권 행사가 도돌이표처럼 된다면 미래는 암울하다. 국가 리더십 공백엔 야당의 책임도 있고, 국가 지도자 복이 없다는 국민의 탄식도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국민의힘도 집안싸움과 거대 야당을 비토하는 데 정신을 팔 게 아니라 여소야대라는 현실에 맞는 정교한 협상 전략을 짜내 성과물을 내야 한다. 당장은 여야정협의체를 잘 가동해 반도체법, 전력망확충법, 방사성폐기물법, 해상풍력특별법 등 주요 민생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야 한다. 국민이 정치에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게 아니다. 정치가 만성적 대결 구도로 국민 통합을 저해한다면 성장도 번영도 힘들다는 것을 지난해 뼈저리게 경험했다. 적어도 상호 자제와 대화, 설득이 작동하는 상식의 정치만이라도 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