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 강국' 코리아 생존 시한은 5년

빅 퀘스천 韓 제조업 얼마나 버틸까

中, 저가 공세에 기술력까지 갖춰
첨단 D램·가전부품 등 이미 추월
"美와 '제조 동맹' 강화해야"
약 한 달 전 국내 반도체학계에 중국과학원이 세계 최고 권위의 전기전자공학자협회(IEEE) 국제전자소재학회(IEDM)에서 발표한 차세대 메모리 ‘3차원 D램’ 관련 논문 한 건이 전해졌다. 메모리 기술을 선도한다고 자부해온 한국 반도체 연구자 사이에서 “정신이 바짝 들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전력 소모를 줄일 수 있는 차세대 화합물 이그조(IGZO)를 활용해 한국 연구자들이 따라가지 못할 수준의 진전을 이뤘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가전 기업의 A사장은 지난해 10월 중국 선전에 출장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현지 중견 부품사가 한국과 동일한 성능의 부품을 30% 이상 싼 가격에 하이얼, 샤오미 등에 공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A사장은 “원가 경쟁력에 밀려 망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고 말했다.‘첨단 제조업 강국’, 한국에 붙는 수식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한국 간판 기업들은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앞세워 세계 시장에 진격했다. 선도 기업에 밀리지 않는 품질의 제품을 빠르게 출시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 첨단 분야에서 출하량 기준 세계 1위에 올랐다.

하지만 현재 한국 간판 기업의 경영진이 느끼는 위기감은 상당하다. 더 이상 따라잡을 기업이 없어진 상황에서 한국 제조업은 세상에 없는 기술을 개발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하는 난제에 직면해서다. 미래 산업에서 별다른 성과를 못 내는 사이에 한국 전통 산업은 코로나19 기간을 거치며 중국에 추격을 넘어 추월당했다.

한국 정보기술(IT) 분야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지금 이 상황이 이어진다고 가정하면 한국 제조업의 수명은 길어야 5년 남았다고 본다”고 했다.전문가들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한국 제조업의 생존 기간을 늘리기 위해서는 중국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미국 등 동맹국과의 기술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소프트웨어, 원천 소재, 핵심 장비 기술 경쟁력을 위한 과감한 투자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애덤 포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은 “한국의 조선과 반도체 역량은 미국의 국가 안보에 필수적”이라며 “한국이 미국 제조시설 투자를 늘려 미국과 ‘윈윈’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워싱턴=이상은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