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재판관 임명 후폭풍…대통령실 수석급 이상 사의

권영세 "책임과 평가 따를 것"
여권 균열에 정책 불확실성 커져
< 여권내 균열 >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오른쪽)이 1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에서 신년 참배를 마친 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다른 곳을 응시하며 스쳐 지나가고 있다. 김범준 기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지난달 31일 헌법재판관 임명을 놓고 여권 내 갈등이 확산하고 있다. 1일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대통령실 고위 참모 전원이 사의를 밝혔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최 권한대행을 향해 “책임과 평가가 따를 것”이라고 비판했다. 비상계엄 사태에 이은 탄핵 정국으로 국가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사태를 수습해야 할 정부와 여권이 도리어 내홍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이날 정 실장과 성태윤 정책실장,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장호진 외교안보특보를 비롯해 수석비서관 전원이 최 권한대행에게 사의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전날 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두 명을 임명한 것이 이유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권한대행의 대행 직위에서 마땅히 자제해야 할 권한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매우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실과 사전에 의견 조율이 되지 않았고 최 권한대행이 독단적인 행동을 한 것”이라고 했다.최 권한대행은 대통령실 참모진이 낸 사표를 수리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 실장 등 참모진 일부는 사직 의사를 재차 밝히며 날을 세웠다.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도 이날 헌법재판관 임명에 반발해 사직서를 냈다. 이에 따라 법으로 규정된 대통령실의 권한대행 보좌 기능이 정지되는 것은 물론 관련 동요가 행정부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여당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권 비대위원장은 이날 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결정에 “굉장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국무회의에서 충분히 논의 후 결정했으면 헌법 원칙에 부합할 텐데 과정을 생략하고 본인 의사를 발표한 것은 독단적 결정”이라고 했다. 권한대행 체제에서 당정 간 정책 조율 등이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으며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여권의 과도한 '최상목 흔들기'…국정안정 대신 '정치적 셈법' 몰두
헌법재판관 임명 후폭풍…대통령실 참모 일괄사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둘러싼 여권 내 갈등은 지난달 31일 국무회의에서 촉발됐다. 최 권한대행이 “정치적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며 헌법재판관 임명 의사를 밝히자 일부 국무위원이 “이렇게 중대한 사안을 왜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느냐”는 취지로 반발하면서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도 최 권한대행이 사전에 의견 조율을 거치지 않은 것에 불만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단체로 사의를 표명했다. 국정 안정에 힘써야 할 여권이 정치적 이해관계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전 상의도 없이 결정”

1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국무위원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2명 임명 방침을 밝히자 크게 반발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한덕수 권한대행도 ‘현상 유지’한다며 재판관 임명을 하지 않았는데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 무슨 결정을 해서 되겠느냐”는 취지로 말했다.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권한대행은 “중요한 결정을 국무위원 의견을 듣지 않은 채 결정한 것은 민주적 정당성을 결여한 것”이라고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권한대행은 이날 사직서를 냈다.

반발한 국무위원들은 주로 윤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인사나 정치인 출신이었다. 윤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동기인 이완규 법제처장, 유철환 권익위원장 등이 대표적이다. 한 국무위원은 “비정치인이 정치적으로 첨예한 사안에 결정을 내려도 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최 권한대행은 “내가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며 “수없이 고민해서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무안공항 사고만 아니었으면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고 사퇴하려고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일부 국무위원 앞에서 울먹이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고성이 오가자 한 국무위원은 “지금 이게 뭐 하는 거냐.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며 국무회의장에서 퇴장한 것으로 알려졌다.최 권한대행은 국무회의 막판까지 헌법재판관 임명 여부를 고심했다고 한다.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 중 2명만 임명한다는 사실은 국무회의를 준비하는 실무진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관계자는 “원로 경제관료 그룹에게 ‘경제가 어려우니 진영 논리가 아니라 나라만 생각해야 한다’는 취지의 조언을 듣고 재판관 임명을 결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최 권한대행은 국무회의에서 “하루라도 빨리 정치적 불확실성과 사회 갈등을 종식해 경제와 민생 위기 가능성 차단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에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최상목 흔들기’ 비판도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대통령실 수석급 이상 참모 전원은 이날 최 권한대행에게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헌법재판관 임명에 반발해서다. 대통령실 측은 그간 최 권한대행에게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해야 한다는 의견을 물밑에서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탄핵심판에 직접 참여하는 재판관을 임명하는 일인 데다 재판관 임명을 놓고 여야 이견이 큰 사안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최 권한대행을 향해 연이어 “강한 유감”이라고 비판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여권 관계자는 “정치적 파급력이 큰 사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여당 지도부, 대통령실 등과 조율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 문제”라며 “향후 다른 사안을 놓고 권한대행과 당이 다른 목소리를 낼 것이 우려된다”고 했다.일각에선 여권이 과도하게 ‘최상목 흔들기’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권한대행을 보좌해야 할 대통령실 고위급 참모 전원이 사의를 밝힌 것이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다만 탄핵 국면에서 여권 분열은 안 된다는 기류가 강한 만큼 최 권한대행에게 거취 정리 등의 요구는 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양길성/박상용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