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인류에게 예술이 던지는 한 마디 "삶에서 죽음을 생각하라"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책들
죽음 앞에서, 삶을 생각한다.

우리는 예외 없이 죽는다. 너도, 나도, 모두가 그렇다. 태어난 순간부터 작동하는 이 잔인한 명제 앞에 우리는 철부지처럼 망각하며 살아간다. 살면서 죽어간다는 것을, 죽어가며 살아간다는 것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일상을 곁에 두고, 어김 없이 새해를 맞이했다. 왜 우리는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삶을 생각하는가. 왜 이리도 어리석은가. 단언컨대 모든 죽음은 낯설다. 살아남은 자들에겐-예측 여부와 상관없이-고요한 바다에 몰려오는 거대한 폭풍과도 같다. 언젠가 끝날 것임을 애써 부정하다 ‘그것’을 마주한 이들은 말한다. ‘떠난 자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몰랐던 것들뿐’이라고.
죽음은 필연적으로 결코 나의 일이 될 수 없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나의 일’이 된다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은 누구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가장 두려운 것인 지도 모른다.

찰나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뿐이다. 진심을 다해 슬퍼하고, 예의를 갖춰 떠난 이들을 잘 보내는 일뿐이다. 인간의 무력한 나날을 버틸 수 있는 힘, 생애 끝자락에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오직 그 감정을 공감하는 데서 나온다.

삶과 죽음이 종이 한장 차이라면, 도대체 사는 것과 죽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수 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먼저 살았던 사람들이 오랜 세월 반복해 던졌던 질문이다. 비애와 고통 앞에 인류를 치유하고 구원했던 음악과 문학, 예술의 편린을 다시 찾아본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또 바보처럼 잊고 살아가겠지만, 불쑥 불쑥 찾아오는 파도를 넘어서야만 하는 상실의 숙명 앞에 정답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행복한 삶은 믿을 수 없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은 빛을 찾아낸 작가들
삶과 죽음에 관하여 생각하게 하는 책들


“운 좋게 얻은 전도유망한 직장이 있는 마천루의 사무실로는 더 이상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지난해 베스트셀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각별한 사이였던 형을 암으로 떠나보내고 인생의 항로를 바꾼 저자 패트릭 브링리의 에세이다. ‘뉴요커’에서 일하며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걸어 온 야심만만한 젊은이 브링리는 의지했던 형의 투병과 죽음을 겪으며 모든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다. 그는 두번째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일하기로 마음먹는다.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며 스스로를 그저 놓아두기 위해서.

렘브란트, 보티첼리, 모네, 고흐, 드가… 거장이 그린 수백점의 그림 속에 둘러싸여 일하기를 10년. 브링리는 문득 깨달았다.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하고 도망치고 싶었던 과거와는 달리, 여전히 살아나가야 할 삶이 있고 그 방향키는 스스로가 쥐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 때때로 인생은 우리에게 폭군처럼 무자비하게 굴지만, 멈추지 않고 세상은 계속해서 돌아간다. 브링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상실을 겪은 뒤 다시 용기를 얻고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 브링리의 에세이는 지난해 많은 독자에게 위로를 줬다.

어느 때보다 위로가 필요한 요즘이다. 치유란 단어가 성급하게 느껴질 만큼 죽음과 상실의 무게가 무겁게 다가온다. 죽음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인가. 역설적으로 죽음 앞에 섰을 때 우리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죽을 힘을 다해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은 빛을 발견한 작가들의 치열한 흔적이 여기 있다. 우리는 때로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위로를 받는다.생명의 감각이 폭발하는 순간
&lt;첫 번째 피&gt; 아멜리 노통브 지음, 열린책들
얼마 전 국내에 번역 출간된 소설 <첫 번째 피>는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가 2020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게 보내는 추도사다. 아버지 파트리크 노통브는 콩고에서 외교관으로 일하던 중 20세기 최대 규모의 인질극으로 알려진 ‘1964년 콩고 반군 인질극 사건’을 직접 겪었다. 작가는 당시 죽음 문턱에 갔던 아버지의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썼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 쓰기 시작한 소설이다. 사실과 허구를 오가는 이 책은 딸로서 아버지를 애도하고 이해하는 과정 그 자체기도 하다.

인질 협상 과정에서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파트리크는 오히려 강한 생명력을 느낀다. 열두 개의 총부리가 머리를 겨눈 순간, 오히려 ‘살아 있음’에 대한 감각이 가장 생생해지고 삶을 향한 애정이 팽창한 것. “나는 살아 있고, 계속 살아 있을 것이다. 얼마나? 2분, 두 시간, 50년?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그런 식으로 살아야 한다. 나는 그 의식을 영원히 간직하길 희망한다.”
&lt;이반 일리치의 죽음&gt;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창비 등
죽음 앞에서 강하게 느끼는 삶의 태동은 오래된 고전,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도 잘 나타나 있다. 존경받는 판사인 이반 일리치는 사교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인과 결혼하고 성공의 정점을 달리던 중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어간다. 죽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몸속에서도 일어났지만 주변인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났다.

이반 일리치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가를 거듭 묻는다. 무능한 의사와 무심한 가족들, 신과 운명을 저주하며 고통에 몸부림친다. 그러나 병상에서 자신의 삶 전체를 되짚어본 이반 일리치는 결국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마지막 순간에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고 죽음조차 넘어선다. 죽음을 의식할 때야 제대로 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죽음 앞에 선 이의 고백
&lt;그렇게 나는 다시 삶을 선택했다&gt; 최지은 지음, 유선사
최근 출간된 국내 에세이 <그렇게 나는 다시 삶을 선택했다>도 죽음 앞에 섰을 때 삶을 새롭게 살게 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 최지은은 30대 후반의 나이에 글로벌 기업의 임원으로 일하며 성공 가도를 달리다가 말기 암 진단을 받았다. 그때 저자가 느낀 감정은 두려움을 넘어선 배신감. “삶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또 배신했다. 이번에는 정말 궁극의 배신이었다.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있을까.”

저자는 시한부 선고와 함께 미래를 계획하기 어렵게 되자 ‘지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미래의 끝이 보이는 순간 미래를 생각하는 것도, 과거에 대한 후회도 무의미해졌다는 것. 오로지 지금 이 순간, 자신 앞에 있는 사람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는 설명이다. “미래를 다 빼앗기고 나서야, 현재를 살 수 있게 되었다.” 결말이 혹여나 정해져 있더라도 결말로 가는 모든 과정이 의미를 잃는 건 아니니까.
&lt;죽음이 알려주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gt; 알루아 아서 지음, 한즈미디어
다른 이의 죽음을 마주하는 일이 직업이 된다면 어떨까. <죽음이 알려주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미국 ‘임종 도우미’의 에세이다. 임종 도우미는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이 중심을 잃지 않고 부끄러움 없이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저자는 말한다.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건 하루를 충만하게 만든다고.
[좌] &lt;또다시 살리고 싶어서&gt; 허윤정 지음, 시공사 [우] &lt;언젠가 사라질 날들을 위하여&gt; 오은경 지음, 흐름출판
<또다시 살리고 싶어서>와 <언젠가 사라질 날들을 위하여>는 각각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가 쓴 책이다. 외상센터와 병동에서 일하면서 죽음을 맞닥뜨리는 게 일상이 된 이들의 진솔한 고백이 담겼다.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은 법의학자 이호가 30여 년간 4000구가 넘는 시신을 부검해오면서 죽음을 통해 삶을 공부한 행적이다. 검시조사관, 지문감정관, 영상분석관, 프로파일러 등 죽음의 현장에서 삶을 찾는 과학수사관들의 에세이 <우리는 영화의 한 장면에만 나오지만>도 있다.
[좌] &lt;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gt; 이호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우] &lt;우리는 영화의 한 장면에만 나오지만&gt; 현장 과학수사관 28명 지음, 고즈넉이엔티
신연수·김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