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순간' 인간을 위로한 건 음악이었다…레퀴엠에서 님로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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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과 침묵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한다.” 소설 ‘레 미제라블’ 등을 쓴 프랑스 대문호(大文豪) 빅토르 위고(1802~1885)가 남긴 말이다. 음악이 인간에게 가장 효과적인 ‘위로의 언어’이자 ‘심신의 치유제’가 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입 밖으론 도저히 내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인간 내면의 힘겨운 감정까지 모조리 긁어내 표출한 존재가 바로 음악이기에 그 안에선 어떤 고통도 슬픔도 잠시나마 옅어지고, 이성이 아닌 감각을 통한 위안을 경험하게 된다. 구태여 속내를 드러낼 필요 없이,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그게 바로 음악의 진정한 힘 아닐까.
요하네스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레퀴엠은 라틴어로 ‘안식’을 뜻하는 단어로,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미사 음악을 일컫는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떠올리며 최후의 걸작 ‘레퀴엠’을 작곡했다면, 요하네스 브람스는 평생의 스승 슈만과 어머니의 죽음을 마주하며 느낀 충격, 상실감을 토대로 10여 년에 걸쳐 ‘독일 레퀴엠’을 써냈다. 라틴어 가사를 사용하는 보통의 레퀴엠과 달리 마르틴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성경 구절에서 가사를 따왔으며, 망자에 대한 심판이 아닌 세상에 남겨진 이들에 대한 위로가 중심축을 이룬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2001년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린 9·11 테러 희생자를 위한 음악회에서 쿠르트 마주어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브람스 ‘독일 레퀴엠’을 연주하면서 대표적인 추모곡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2001년 9월 20일, 지휘자 마르틴 루터와 뉴욕필은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을 연주하며 9·11 테러로 고통받은 이들의 영혼을 달랬다.]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미국 출신의 20세기 작곡가 새뮤얼 바버가 1936년 로마에서 쓴 현악 사중주 1번의 2악장을 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한 작품이다. 1938년 이탈리아 지휘 거장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이끄는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미국 전역에 방송되는 무대에서 초연하면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특유의 애처로우면서도 엄숙한 선율 때문에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에서 주로 사용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존 F. 케네디 대통령,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전 세계에서 두루 존경받는 인사들의 장례식에서 연주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베트남전쟁 참상을 다룬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플래툰(1987)’,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영화 ‘엘리펀트 맨(1980)’ 등에도 삽입된 바 있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트리오 '어느 위대한 예술가를 추모하며'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가 평생의 음악적 동반자였던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쓴 작품이다. 차이콥스키는 평소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가 함께 연주되는 트리오 형식에 심한 거부감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정교한 피아노 터치와 유려한 선율로 명성이 높았던 루빈스타인을 추모하기 위해 피아노 트리오 작곡을 결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이 작품은 차이콥스키가 남긴 유일한 피아노 트리오로 남아있다. 절규하는 듯한 바이올린의 강렬한 악상 표현과 짙은 우수를 쏟아내는 묵직한 첼로의 울림, 죽음에 대한 애절한 감정을 담담히 속삭이는 피아노의 조화가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1901년 심각한 장 출혈로 목숨을 잃을 뻔했던 구스타브 말러가 이듬해 병마와의 싸움을 이겨내고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 바로 교향곡 5번이다. 이 교향곡의 4악장 '아다지에토'엔 투병 생활 중 만난 연인 알마 신틀러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생(生)과 사(死)의 경계를 경험한 직후인 만큼 삶에 대한 회한을 드러내는 듯한 묘한 서정도 담겨있다. 이러한 독특한 색채 때문에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2022)’ 등 여러 영화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1968년 로버트 케네디 미 상원의원 장례식에서 세계적 명장 레너드 번스타인의 지휘로 연주된 이후부턴 추모곡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박찬욱 영화 '헤어질 결심'에는 지휘자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쓰였다.]
프란츠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가곡의 왕’이라 불리는 프란츠 슈베르트가 19세기 스코틀랜드 소설가 월터 스콧의 ‘호수의 여인’에 나오는 창작 가사에 선율을 붙여 만든 작품이다.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녀 엘렌이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길을 나선 아버지의 평안을 성모 마리아에 간절히 기도하는 장면을 담고 있으며, 격렬한 악상 표현 하나 없이 인간의 무력감과 불안감, 아버지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애틋함 등 복잡미묘한 감정을 선명하게 드러내 청중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국내에선 소프라노 조수미가 2006년 파리의 샤틀레 극장에서 열린 데뷔 20주년 기념 독창회에서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른 채 선보인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조수미가 2006년 파리서 부른 프란츠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이날 공연 직전 조수미는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에드워드 엘가가 작곡한 ‘수수께끼 변주곡’ 가운데 아홉 번째 변주다. ‘수수께끼 변주곡’은 주제 선율과 더불어 엘가가 평소 가깝게 지낸 지인들의 캐릭터를 묘사한 14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님로드’는 평소 엘가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던 절친한 친구 오거스터스 예거를 형상화한 음악이다. 풍성한 관현악 음향과 따뜻한 주선율 덕에 공동체 간 화합을 염원하고 인간의 슬픔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자주 연주된다. 지휘 명장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끄는 서동(西東)시집 오케스트라가 팔레스타인 라말라에서 평화를 위한 공연을 열었을 때 마지막으로 연주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빈의 장례식에 쓰인 작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구출 작전을 그린 영화 ‘덩케르크(2017)’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에 등장해 깊은 감동을 선사한 음악으로도 친숙하다.
김수현 기자
요하네스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레퀴엠은 라틴어로 ‘안식’을 뜻하는 단어로,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미사 음악을 일컫는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떠올리며 최후의 걸작 ‘레퀴엠’을 작곡했다면, 요하네스 브람스는 평생의 스승 슈만과 어머니의 죽음을 마주하며 느낀 충격, 상실감을 토대로 10여 년에 걸쳐 ‘독일 레퀴엠’을 써냈다. 라틴어 가사를 사용하는 보통의 레퀴엠과 달리 마르틴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성경 구절에서 가사를 따왔으며, 망자에 대한 심판이 아닌 세상에 남겨진 이들에 대한 위로가 중심축을 이룬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2001년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린 9·11 테러 희생자를 위한 음악회에서 쿠르트 마주어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브람스 ‘독일 레퀴엠’을 연주하면서 대표적인 추모곡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2001년 9월 20일, 지휘자 마르틴 루터와 뉴욕필은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을 연주하며 9·11 테러로 고통받은 이들의 영혼을 달랬다.]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미국 출신의 20세기 작곡가 새뮤얼 바버가 1936년 로마에서 쓴 현악 사중주 1번의 2악장을 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한 작품이다. 1938년 이탈리아 지휘 거장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이끄는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미국 전역에 방송되는 무대에서 초연하면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특유의 애처로우면서도 엄숙한 선율 때문에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에서 주로 사용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존 F. 케네디 대통령,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전 세계에서 두루 존경받는 인사들의 장례식에서 연주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베트남전쟁 참상을 다룬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플래툰(1987)’,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영화 ‘엘리펀트 맨(1980)’ 등에도 삽입된 바 있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트리오 '어느 위대한 예술가를 추모하며'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가 평생의 음악적 동반자였던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쓴 작품이다. 차이콥스키는 평소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가 함께 연주되는 트리오 형식에 심한 거부감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정교한 피아노 터치와 유려한 선율로 명성이 높았던 루빈스타인을 추모하기 위해 피아노 트리오 작곡을 결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이 작품은 차이콥스키가 남긴 유일한 피아노 트리오로 남아있다. 절규하는 듯한 바이올린의 강렬한 악상 표현과 짙은 우수를 쏟아내는 묵직한 첼로의 울림, 죽음에 대한 애절한 감정을 담담히 속삭이는 피아노의 조화가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1901년 심각한 장 출혈로 목숨을 잃을 뻔했던 구스타브 말러가 이듬해 병마와의 싸움을 이겨내고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 바로 교향곡 5번이다. 이 교향곡의 4악장 '아다지에토'엔 투병 생활 중 만난 연인 알마 신틀러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생(生)과 사(死)의 경계를 경험한 직후인 만큼 삶에 대한 회한을 드러내는 듯한 묘한 서정도 담겨있다. 이러한 독특한 색채 때문에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2022)’ 등 여러 영화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1968년 로버트 케네디 미 상원의원 장례식에서 세계적 명장 레너드 번스타인의 지휘로 연주된 이후부턴 추모곡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박찬욱 영화 '헤어질 결심'에는 지휘자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쓰였다.]
[조수미가 2006년 파리서 부른 프란츠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이날 공연 직전 조수미는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에드워드 엘가가 작곡한 ‘수수께끼 변주곡’ 가운데 아홉 번째 변주다. ‘수수께끼 변주곡’은 주제 선율과 더불어 엘가가 평소 가깝게 지낸 지인들의 캐릭터를 묘사한 14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님로드’는 평소 엘가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던 절친한 친구 오거스터스 예거를 형상화한 음악이다. 풍성한 관현악 음향과 따뜻한 주선율 덕에 공동체 간 화합을 염원하고 인간의 슬픔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자주 연주된다. 지휘 명장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끄는 서동(西東)시집 오케스트라가 팔레스타인 라말라에서 평화를 위한 공연을 열었을 때 마지막으로 연주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빈의 장례식에 쓰인 작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구출 작전을 그린 영화 ‘덩케르크(2017)’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에 등장해 깊은 감동을 선사한 음악으로도 친숙하다.
김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