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한 듯 화려한 듯… 금속으로 만든 '혹뿌리 도시'의 단면

조각가 김병호 개인전 '탐닉의 정원'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서 2월 8일까지

세속적인 소재를 아름다움으로 승화
현대사회 향한 찬미와 냉소가 공존
불쑥 돋아난 '혹'이 환영받는 경우는 드물다. 주로 외부의 충격이나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종양은 의학적 관점에서 치료의 대상이다. 접합 부위에 볼록한 둔덕이 발생한 제품은 불량품 취급을 받는다. '혹부리 영감' 설화에서도 심술궂은 영감은 혹을 주렁주렁 달게 되는 결말을 맞는다.

금속을 주로 다루는 조각가 김병호(50)는 이런 혹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길게 뻗은 철사의 끝에는 의도적으로 만든 혹이 달려 있다. 면봉처럼 끝이 둥근 수백개의 철사가 빛을 사방으로 발산한다. 표면이 매끈했다면 기대하기 힘들었을 화려한 난반사가 보는 이를 현혹한다.
김병호, '수평 정원'(2018). ⓒ KIM Byoungho. Courtesy of the Artist and ARARIO GALLERY.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탐닉의 정원'은 혹의 미학에 집중한 전시다. 전시장 3개 층에 걸쳐 대표작 '수평 정원'(2018)을 비롯한 크고 작은 조각 15점을 선보인다. 최근 5년간 중국 등 해외 무대에서 주로 활동해온 작가가 모처럼 마련한 국내 전시다.

작가는 본인의 조각을 '문명의 혹'이라고 부른다. 주요 사용하는 소재는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 스틸이다. 현대 문명의 뼈대를 구성하는 제조업의 부산물이다. 산업화 자체와 대립각을 세우진 않는다. 대량생산과 소비를 풍자했던 일군의 팝아트 작가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작가는 "대량생산체제를 거부하기보단 그 안에서 구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아름다움을 찾았다"고 말했다.
탐닉의 정원이란 전시 제목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원은 얼핏 보면 자연을 그대로 옮긴 것 같지만, 사실 건축과 조경 등의 요소가 반영된 인위적인 공간이다. 작가의 작업도 자연과 거리가 멀다. 철저하게 사전 계획된 도면과 분업화된 공정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존재란 사실을 알면서도 현혹될 수밖에 없는 효과를 노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지하 1층 전시장에는 약 7m 길이의 '수평 정원'이 놓여 있다. 가로로 길게 뻗은 직선 끝에 돌기가 맺힌 철사 185개가 꽂혀있다. 제목은 정원이지만, 고층빌딩이 밀집한 도심부 전경에 보다 가까운 모습이다. 작가는 제한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철사를 꽂기 위한 도면을 고안했다고 한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 공학을 연구한 이력이 있기에 가능했던 발상이다.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욕망'이다. 황동으로 도색한 조각은 부와 명예, 권력을 향한 현대인의 욕망을 투영한다. 욕심은 때로 도덕적인 '혹'을 낳지만, 반대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중요한 동인이기도 하다. 천장에 끈으로 고정된 작품은 지상에서 50㎝가량 떠 있다. 그만큼 그림자도 짙다.
김병호, '두 개의 충돌'(2024). ⓒ KIM Byoungho. Courtesy of the Artist and ARARIO GALLERY.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이처럼 그의 작업에선 현대사회를 향한 찬미와 냉소가 동시에 느껴진다. 전시장 1층에 놓인 기계작업 '두 개의 충돌'(2024)이 단적인 예다. 각각 은색과 검은색으로 칠한 두 개의 조각이 서로 맞물려 회전하고 있다. 닿을 듯 닿지 않는다. 문명의 질서에 대한 순응과 저항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룬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도 해석된다.이번에 전시된 신작들은 전문가와 협업 끝에 완성됐다. 작가가 아이디어를 도면으로 옮기면 각 소재의 전문가가 조각을 만들어 보낸다. 이러한 부품들을 모아 작가가 조립하면서 작품이 완성된다. 일반 공산품의 생산 방식과 유사하다. 작가는 완성된 작업을 '제품'이라고 부른다.

대량 생산되는 공산품과 마찬가지로 그의 작업도 증식하고 있다. 최근 3년간은 특히 숨 가빴다. 중국 선양과 우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오가며 전시를 열었다. 올해 홍콩과 중국 선전에서의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의 전시는 2월 8일까지다.
김병호 작가 '탐닉의 정원' 전시 전경. ⓒ KIM Byoungho. Courtesy of the Artist and ARARIO GALLERY.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김병호 작가 프로필 이미지.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