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으로 멍든 도시에…평화의 선율을 선물한, 필라델피아의 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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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동민의 뉴욕의 동네 음악가미국 맨해튼 북부 할렘은 사건과 사고로 악명 높은 곳이다. 영화에서도 마약과 폭력이 난무하는 지역으로 그려진다. 할렘 북쪽으로 흐르는 강 건너에는 뉴욕시 다섯 개 자치구 중 하나인 브롱크스가 있는데,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많이 사는 곳이다. 1960년대에는 빈곤과 높은 범죄율로 부정적 이미지가 있었지만 힙합 음악이 탄생했으며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 홈구장이 있는 동네다.
그래미상을 받고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비올리스트 킴 카슈카시안과 몇 년 전 브롱크스의 한 대학 초청으로 연주회를 열었다. 음악회가 끝나자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아프리카계 소녀가 다가왔다. 작은 손에 들고 있던 프로그램 책자를 수줍게 내밀며 내게 사인을 부탁했다. “오늘 생애 처음으로 클래식 음악 콘서트를 봤다”고 말하는 소녀의 상기된 눈빛이 아직도 가슴 한쪽에 남아 있다.
필라델피아 도심에 있는 템플대 인근 노스센트럴은 미국 내에서도 총기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마치 생명이 다해버린 듯 많은 집이 비어 있고 주거민 대부분은 극빈층이다. 주민의 70% 이상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고, 경찰의 주요 업무는 살인, 마약, 강도 같은 중범죄와 관련돼 있다.
어둠이 내리면 거리는 조용하고, 길을 걷는 사람도 드물다. 창가에 비치는 희미한 불빛이 그나마 위로를 건네는 위험한 동네에 20년 동안 거주하는 지인이 있다.한국에서 미학을 전공한 후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됐다. ‘왜 굳이 그런 위험한 곳에 사느냐?’는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매일 경찰의 도움을 받으며 살얼음판을 걷는 듯 위험천만한 일상을 살 것 같지만, 어려움을 당한 이웃의 법정 대리인이 돼주며 동네 친구들의 장례를 돕는 일에 나선다.
그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단골 관객이자 실내악 공연 마니아다. 임윤찬의 연주를 보기 위해 500㎞ 북쪽에 있는 보스턴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목사로서 노스센트럴을 터전으로 삼은 분명한 목적이 있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과 교류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향유하며 일상의 괴리를 채워나간다.
이웃에게 빵과 성경뿐만 아니라 새로운 선물을 하고 싶다는 이 목사의 제안으로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는 2017년부터 연말마다 노스센트럴을 찾고 있다. 지난해 12월의 어느 주말에도 테이블과 의자가 가득 찬 비좁은 농구 코트에 주민 200여 명이 모였다. 행사에서 연주자 17명으로 구성된 앙상블이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어김없이 장내는 어수선했고 몇몇 아이는 신나게 뛰어다녔다. 공연할 만한 환경도 아니고 클래식 음악 경험이 전무한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연주는 많은 걸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모든 순서가 끝나고 목사는 말했다. “작년에 비해 귀 기울여 음악을 듣는 주민이 훨씬 많았다.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다”고.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잿밥에만 관심 있을 것 같던 나이 지긋한 한 아주머니는 상기된 얼굴을 한 채 테이블 사이를 빠져나가는 나를 붙들고 말했다. “정말 좋았어요. 내년에도 꼭 와주세요(It was REALLY good! Come back next year!).”
음악은 힘이 있다. 그 힘은 때때로 상황과 현실을 뛰어넘는다.
뉴욕= 김동민 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