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순록이 뛰어노는 이곳…난로 하나로 노르웨이 산맥 끌어안은 파빌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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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배세연의 스페이스 오디세이평년에 비해 따뜻한 겨울이다. 11월 말 흰 눈이 펑펑 내린 그날이 먼 옛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날 세상은 온통 새하얗게 변했고, 캠퍼스 여기저기에는 학생들이 만들어놓은 눈사람들이 겨울 풍경을 귀엽게 장식했다. 이제는 눈이 내리는 원리를 알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하늘에서 눈이 떨어지는 모습은 늘 신기하다. 이렇게 겨울을 아름답게 만드는 눈 내리는 풍경이 언젠가부터 마냥 좋지 않았던 때는 출퇴근, 그리고 그 사이의 이동이 일상의 우선순위가 되면서부터일 것이다.
도브레피엘 산맥의 '파빌리온'
물결이 휘감아 도는 듯한 나무의자
추위는 막고 그림같은 풍경은 보이는 유리벽
그리고 난로가 이 파빌리온의 전부지만
실내서 무언가 '보는' 경험하기엔 최고의 장소
원래는 야생 순록 관찰하기 위해 지어져
그때마다 든 생각은 ‘실내에서 보는 건 좋지만 나가려니 참 난감하구나’다. 이런 생각을 할 때 우리가 머무는 실내는 우리 몸이 바깥의 매서운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보호막이 된다. 동시에 바깥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제3자적 조망의 공간이 된다. 바깥에 펼쳐지는 풍경은 마치 움직이는 그림과 같아 더 아름다운 이미지로 남는다.노르웨이 도브레피엘산맥 외곽에 있는 도브레피엘순달스피엘라 국립공원에는 그곳에 펼쳐진 광활한 풍광을 잘 ‘보게’ 해주는 파빌리온이 설치돼 있다. 도브레피엘산맥엔 야생 동식물이 아직 남아 있다. 그곳만의 독특한 지형이 형성하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노르웨이 야생 순록 재단’에서 교육과 관찰을 목적으로 의뢰해 지어진 것이 이 파빌리온이다.이 파빌리온이 서 있는 모습을 주변 환경과 함께 보면 당황스러운 면이 있다. 끝없이 펼쳐진 자연 풍경 속에 직육면체 박스가 하나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모노리스(검은색의 긴 육면체 기둥)가 등장한 장면을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든다. 더구나 이런 파빌리온이 혹독한 환경에 버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외관은 강철로 제작돼 그 견고함이 더욱더 강하게 전달된다.
이 박스 내부에는 물결이 휘감아 도는 듯한 곡면이 벽체와 좌석을 일체형으로 형성하며 바깥에 펼쳐지는 자연 형상을 그대로 이어가는 반전이 펼쳐진다. 목재로 제작된 이 형상은 3차원(3D) 프로그램을 활용해 형태를 디자인한 후 노르웨이의 전통 선박 제조 기술을 보유한 사람들이 소나무를 직접 다듬어 완성한 것으로, 최신 기술과 전통 기법의 합작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실내 공간에만 한정되지 않고 파빌리온 뒤편 외벽까지 연장돼 자연과의 연계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긴 하이킹 트레일을 따라 이곳에 도달한 사람은 자연을 닮은 곡면 어딘가에 앉아 바깥에 펼쳐지는 끝없는 자연 풍광을 어쩐지 안심하는 마음으로 조망할 것이다.직육면체 박스와 자연의 경계를 형성하는 파빌리온 파사드로는 유리가 선택됐다. 이 유리에 반사되는 산지 풍경은 파빌리온과 도브레피엘산맥 간 경계를 흐려놓아 직선으로 만들어진 박스가 자연에 어우러지도록 돕는다. 이처럼 명확한 기본 조형이 형성하는 외부 형태, 그 안에 녹여낸 자연의 선, 건물과 자연의 경계를 흐리는 반사하는 유리라는 명쾌한 접근을 지닌 파빌리온에서 운이 좋으면 야생 순록도 볼 수 있다.그런데 이쯤 되면 이 파빌리온을 순록 입장에서도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평화롭게 자연을 영위하던 순록의 장소에 어느 날 갑자기 네모난 상자 하나가 등장하더니 여름만 되면 낯선 사람들이 그곳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순록에게는 꽤 당황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파빌리온은 순록에게도 오가는 사람을 관찰할 수 있는 하나의 조망 포인트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밖에 나가기 꺼려지고, 안에서 밖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럴 때면 순간 이동을 해서 노르웨이의 한 산맥에 있는 파빌리온 ‘안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곳에는 공간을 따듯하게 덥혀주는 난로도 있으니까 무언가를 보는 경험을 하기에는 최고의 장소가 돼줄 테다.
이처럼 작은 공간에서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밖을 보고, 생각하며, 상상 속에서 물리적 경계를 뛰어넘어 보는 일을 하기에 겨울만큼 좋은 계절이 없다. 올겨울 각자가 영위하고 있는 다양한 실내 공간이 자신만의 온기와 즐거움으로 가득한 곳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