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서 무대로…연극으로 만나는 명작 영화들

연극 무대 오르는 명작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벰파이어 소녀와 왕따 소년의 사랑 그린
아카데미 8관왕
한국 초연 무대 오르는
지난해 연극계 키워드는 '영화 배우'였다. 뮤지컬과 영화를 오가며 활동했던 조승우, 전도연, 황정민, 박성웅, 유승호 등 우리에게 영화로 얼굴을 알린 배우들이 연극 무대에 올랐다.

올해의 테마는 '명작 영화'다. 연극으로 재탄생한 명작 영화들이 공연장에서 관객을 맞는다. 잔잔한 일본 '힐링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연극 버전이 2년 만에 돌아왔다.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호러·로맨스 영화 <렛미인>과 아카데미 7관왕 <셰익스피어 인 러브> 모두 오는 7월 무대에 오른다. 원작 소설은 부커상, 영화는 오스카상, 연극은 로렌스 올리비에상과 토니상을 휩쓴 화제작 <라이프 오브 파이>가 올 겨울 처음 한국 관객을 만난다.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을 꼽으라면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빠질 수 없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 <원더풀 라이프>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가장 최근 개봉작 <괴물>로는 칸 영화제 각본상까지 가져갔다.

히로카즈 감독의 2015년 개봉작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요시다 아키미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주인공은 세 자매 사치, 요시노, 치카. 이들은 한적한 바다 마을에서 아버지의 외도로 부모님이 모두 떠난 집에 함께 산다.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이들은 장례식장에 향한다. 그곳에서 이복 여동생 스즈를 만난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모두 잃고 새엄마와 살아야 하는 이복동생이 가여운 세 자매는 스즈에게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네 자매가 추억과 일상을 공유하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로 잔잔하고 담백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일본 만화 원작 영화로는 처음으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일본 영화지만 국내 창작 연극으로 2023년 초연했다. 일본에서도 연극이 제작됐지만, 한국 공연과는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초연 당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작품을 보기 위해 내한해 직접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2년 만에 열리는 재연에 친숙한 얼굴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한혜진, 박하선, 임수향 등 초연 멤버 대부분이 돌아온다. 이번 시즌에는 홍은희, 유이, 소주연까지 가세했다. 아이돌그룹 '애프터스쿨' 출신 유이는 연극 데뷔작이다. 공연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3월 23일까지 열린다.흡혈귀 소녀와 사랑에 빠진 왕따 소년…<렛미인>
<렛미인>은 벰파이어 공포·로맨스 영화다. 스웨덴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소설 '렛 더 라이트 원 인 (Let the Right One In)'이 원작이다. 작가의 이력이 꽤 특이한데, 10대 때부터 길거리 마술사로 활동해 북유럽 카드 트릭 대회에서 2등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에도 스탠드업 코미디언, 시나리오 작가 등으로 활동한 독특한 인물이다.
주인공은 10대 소년 '오스카'다. 친구도 없고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왕따다. 그의 옆집에 비밀스러운 소녀 '일라이'가 이사를 오고, 둘은 우정을 싹틔운다. 공교롭게도 일라이가 이사 온 이후로 마을에는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오스카는 그 배후에는 뱀파이어인 일라이가 있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사랑하는 소녀가 흡혈귀라는 사실에 어린 소년은 고통스러워한다.두 개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2008년 개봉한 스웨덴 영화와 2010년 개봉한 미국 할리우드 버전이다. 미국판에서는 당시 가장 떠오르는 아역 배우였던 클로이 모레츠가 뱀파이어 소녀 애비(원작에서 일라이)를 연기했다. 두 영화 모두 높은 완성도로 호평받았다. 호러 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이 미국판 작품을 보고 "지난 20년간 개봉한 최고의 미국 호러 영화'라고 극찬했다.
연극으로 재탄생한 <렛미인>은 토니상과 로렌스 올리비에상을 모두 받은 세계적인 연출가 존 티파니와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의 합작품이다. 한국에는 라이선스 공연으로 2016년 초연했다. 당시 '괴물 신인'으로 불렸던 박소담이 일라이역을 맡았다. 원래 2020년에 재연이 예정됐었는데 안타깝게 코로나19로 공연이 취소됐다. 우여곡절 끝에 9년 만에 돌아온 연극 '렛미인'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7월 3일부터 8월 16일까지 열린다.

물음표가 잔뜩 붙은 아카데미 7관왕 <셰익스피어 인 러브>
1998년 개봉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작품은 아니고, 셰익스피어의 젊은 시절을 상상한 로맨스 영화다. 젊은 작가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비극적이지만 낭만 가득한 사랑을 겪으면서 위대한 극작가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아카데미상에서 무려 13개 부문에 후보에 올라 7개 부문을 휩쓸었다. <타이타닉>이 보유한 역대 아카데미 최다 후보 지명 기록인 14개와 고작 1개 차이다.

수작으로 호평받긴 했지만 수상 당시 엄청난 논란이 일었다. 특히 구설수가 많았던 부문은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게 경쟁작들이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포함해 <인생은 아름다워>, <씬 레드 라인> 등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영화사에서 손꼽는 역작으로 불리는 작품들이다.
여우주연상 부문도 많은 의문을 낳았다. 무난하게 좋은 연기를 펼쳤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던 기네스 팰트로가 케이트 블란쳇과 메릴 스트립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을 제치고 수상했다. 극본상 부문에서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인생은 아름다워>와 <트루먼 쇼>까지 이겼다.

할리우드에서는 배후에 영화계 거물 하비 와인스타인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자신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아카데미를 휩쓸도록 벌인 공격적인 인맥 동원과 로비의 결과라는 비판이었다. 참고로 하비 와인스타인은 '미투 운동'에 도화선이 된 장본인이다. 수십년간 영화 제작자로서 자신의 지위를 활용해 100명이 넘는 피해자들을 성추행한 죄목으로 징역 39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작들이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바람에 표가 분산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많은 의문이 남았지만 어찌 됐든 아카데미 7관왕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달성한 이 작품은 인기에 힘입어 연극으로 재탄생했다. 디즈니 스튜디오의 공연 제작사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과 <빌리 엘리어트>를 쓴 영국 작가 '리 홀'(Lee Hall)이 합작해 2014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첫 선을 보였다.

한국 초연은 2023년 열렸다. 셰익스피어의 연인 '비올라 드 레셉스' 역에 정소민, 채수빈, 김유정에 이르는 화려한 캐스팅으로 주목받았다. VIP 티켓이 11만원으로 책정돼 처음으로 연극으로는 처음으로 10만원 선을 넘은 점도 화제를 모았다. 2년 만에 열리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두 번째 시즌은 7월 25일부터 9월 14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열린다.

드디어 한국 관객 만나는 <라이프 오브 파이>
소설 <라이프 오브 파이>는 2002년 맨부커상(현 부커상)을 받은 세계적인 화제작이다. 이야기는 화자인 작가가 인도인 '파이'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파이가 화자에게 어린 시절 배가 침몰한 후 구명보트에서 벵갈 호랑이와 함께 227일간 생존한 표류기를 이야기해주는 액자식 구성으로 펼쳐진다. 언뜻 보기에 아주 평범한 이야기에 예상치 못한 반전이 밝혀지며 작가는 이 이야기의 진위를 고민한다.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대만 영화감독 이안의 손을 거쳐 2012년 영화로 태어났다. 이안 감독은 <와호장룡>(2000), <브로크백 마운틴>(2005), <색, 계>(2007) 등의 명작을 탄생시킨 세계적인 감독이다. 무협영화부터 짙은 드라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까지 필모그래피가 아주 다양하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골든 글로브 최우수 작품상 등 수상 내력도 어마어마하다. 2006년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동양인 감독으로 처음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이안 감독에게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겨준 수작이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높은 수준의 CG가 호평받았다. CG의 대가 제임스 캐머런 감독조차 "3D 기술은 항상 화려하고 스케일 큰 액션 판타지, 히어로 영화에만 쓰여야 한다는 편견을 바꾼 작품"이라며 "그래픽이라는 사실을 잊고 여정에 빠져들게 했다"며 극찬을 남겼다. 이 영화는 2012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1개 부문에 후보에 올라 4관왕에 올랐다.2019년 초연한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는 영화 못지 않는 극찬 세례가 이어졌다. 2021년에는 영국 웨스트엔드 무대에 데뷔해 영국 최고 공연상인 로렌스 올리비에상 5관왕에 올랐다. 2023년 브로드웨이 공연으로는 토니상 3관왕을 휩쓸었다. 한국 초연은 오는 11월부터 2026년 3월까지 열릴 계획이다.

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