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땀한땀 장인의 손길, 샤넬 트위드 숨은 공신…르사주 공방의 모든 것

'르사주, 패션과 리빙의 100년'

100년 내공 르사주 공방, 세계서 가장 큰 자수 샘플 보유
카를 라거펠트와 협업…가장 샤넬다운 아름다움 만들어
생로랑 등 오트쿠튀르 하우스 위한 작품들도 선보여
장인들의 창작 보물창고 'Le19M 갤러리'서 전시
Le19M의 프랑스 전통공예 공방에서 한 장인이 샤넬의 시그니처 원단인 트위드 직물을 직조하고 있다. ⓒLucie Khahoutian, Le19M
프랑스 파리 북동쪽 오베르빌리에와 파리 경계 지역에 있는 Le19M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이 오랜 기간 협업하고 있는 프랑스 전통공예 공방들을 한곳에 모아놓은 건물이다. 2022년 1월 문을 열었다.

수백 마리의 철새 무리를 수작업으로 새긴 자수 ‘Murmuration’. ⓒJulie Cohen Mucem
단추와 같은 작은 장신구를 만드는 데뤼, 모자 공방 메종미셸, 깃털 공방 르마리에, 수제화 공방 마사로 그리고 자수와 직조 공방인 르사주 등 700여 명의 장인이 프랑스 전통공예 기술을 지켜나가고 그들의 ‘사부아르-페르’(노하우)를 후손에게 전수하는 것을 목적으로 탄생했다.

그 이름에도 의미가 있다. Le19M의 19는 파리19구라는 의미 외에 가브리엘 샤넬 탄생일인 8월 19일을 기념한다. 그리고 패션(mode), 전통공예(mtier d’art)를 포함해 장인의 수작업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손(main)에서 온 첫 글자 M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Le19M에는 장인들의 창작 공간 이외에도 일반 관객에게 공개되는 곳이 있다. 원데이클래스 같은 워크숍, 카페와 레스토랑, 갤러리가 입주해 있고 매년 흥미로운 테마로 전시와 행사를 기획한다. 현재 Le19M 갤러리에서는 프랑스 자수와 직조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성을 자랑하는 르사주공방의 100년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르사주, 패션과 리빙의 100년’ 전시가 열리고 있다.

샤넬 트위드재킷 뒤에 숨은 장인 르사주

르사주자수학교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Camille Brasselet, Le19M
르사주공방은 샤넬의 DNA 원단인 트위드와 오트쿠튀르의 섬세하고 화려한 자수를 제작하는, 소중한 숨은 공신이다. Le19M에 입주한 르사주공방은 100년간 누적된, 세계에서 가장 큰 자수 샘플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신세대 장인을 육성하는 르사주자수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르사주공방은 지난 100년간 프랑스 패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조형 예술, 장식, 공간 및 오브제 디자인 등에서도 최고 권위를 갖춘 작가 그리고 리빙 디자인하우스들과 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르사주는 1924년 알베르 르사주와 마리 루이즈 르사주 부부가 설립했다. 1930년대 초 이탈리아 출신 디자이너 스키아파렐리와의 협업을 시작으로 화려한 자수 모티브를 만들어 냈다. 르사주의 독특한 자수 기법은 1950년대 미국 할리우드 디자이너들의 의뢰로 아방가르드한 드레스를 탄생시켰다.

1960년대에는 설립자의 아들 프랑수아 르사주가 디올, 발망, 생로랑, 지방시 등의 럭셔리 브랜드들과 협업을 시작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장 폴 고티에, 테리 뮈글러 등 프랑스 오트쿠튀르 컬렉션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르사주공방과 샤넬의 만남은 1983년 샤넬 수석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와 협업하며 시작됐다. 프랑수아 르사주는 1990년 직물공방을 추가 설립해 1998년 샤넬 기성복 라인에 사용되는 트위드 원단을 생산했다. 샤넬은 2002년 르사주공방을 인수하고 2008년부터 샤넬 오트쿠튀르에도 르사주 트위드를 사용했다. 전시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가브리엘 샤넬 이후 카를 라거펠트 그리고 버지니 비아르는 르사주 공방 장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서로 영감을 받으며 가장 샤넬다운 아름다움을 찾고자 노력해 왔다.”

1924~2024, 르사주 100년의 모든 것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엘자 스키아파렐리의 오트쿠튀르 컬렉션 드레스. ⓒ정연아
이번 전시에는 르사주공방의 아카이브부터 발렌시아가, 샤넬, 자크뮈스, 생로랑, 스키아파렐리, 마들렌비오네, 루이비통과 같은 오트쿠튀르 하우스를 위해 르사주공방에서 탄생한 예술적인 장인정신이 담긴 작품들을 선보였다.

르사주 창립 100주년을 맞아 Le19M은 2024년 1년간 자수 장인, 직물 디자이너들의 재능과 창의성에 감사하고 다가올 100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프랑스에서 인도까지, 마르세유에서 베네치아까지 그리고 툴롱에서 다카르까지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했다.

그중 뮈르뮈라시옹 프로젝트는 르사주공방 아트디렉터인 유버르 바레르와 자수공방 장인들 그리고 예술가 아리스티드와 협업해 수백 마리의 철새 무리 작품을 만들어 냈다. 이는 점점 더 파편화하는 인간사회에 상반되는, 매년 겨울 대륙을 이동하고 집단 공생하는 철새들의 자연 현상을 표현한 것이다.

뮈르뮈라시옹 설치 작품은 마르세유, 파리, 다카르, 베네치아로 이동하며 자수공방에서 각 지역 자수 장인들이 새 한 마리 한 마리를 수놓아 완성했고 9월 말부터 시작된 Le19M의 ‘르사주, 패션과 리빙의 100년’ 전시에 설치됐다.

르사주가 보유한 7만5000개 샘플 컬렉션 중 일부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르사주공방의 소장 샘플을 3D로 스캔한 영상을 몰입형 전시, 미디어아트로 제작해 관람객을 자수와 직조물의 새로운 세계로 초대한다.르사주공방에서는 패션 외에 조형예술, 장식, 공간 및 오브제 디자인 작품도 선보였다. 르사주 인테리어는 1993년 설립돼 대부분 인도에서 제작되고 있다. 100년간 지속된 르사주의 창작은 디자이너들 영감의 원천이 됐다. 전시장을 나오며 샤넬의 프랑스 전통 공예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과 투자로 Le19M에 입주한 모든 전통공예 공방의 노하우가 오래 유지되고 전수되기를 바랐다.

파리=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