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잔디보면 가슴이 뛰어…올해도 내년도 핀 향해 계속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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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제2 전성기' 최경주‘탱크’ 최경주(55·사진)가 걸어온 길은 그 자체로 한국 골프의 역사다. 전남 완도에서 골프를 시작해 한국인 최초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진출, PGA투어 한국인 첫 승에 최다승(8승)까지. 그리고 지난해에는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최고령 우승에 한국인 최초로 시니어투어 메이저 ‘더 시니어 오픈’까지 제패했다. 늘 아무도 걷지 않은 길에 도전해온 시간, 두렵고 외롭지 않았냐는 질문에 최경주는 “골프를 사랑하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가끔 지칠 때도 있지만 지금도 잔디밭만 봐도 빨리 공을 치러 가고 싶어 가슴이 뛴다”고 빙긋 웃었다.
韓 골프 역사된 55세의 '탱크'
"드라이버 거리 10야드 늘리고
PGA투어 500대회 출전 달성"
"스폰서가 없으면 골퍼도 없어
후원사에 해줄 것들 고민해야"
55세에도 최경주는 여전히 더 멀리, 더 강한 골프를 꿈꾸고 있다. 그는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올해 드라이버 비거리 10야드를 늘리고, PGA투어 500대회 출전을 달성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 자기 관리로 만든 ‘제2의 전성기’
2024년은 최경주에게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해였다. 지난해 5월 19일, 자신의 54번째 생일날 SK텔레콤오픈에서 연장전 끝에 극적인 우승을 차지하며 KPGA투어 최고령 우승 기록을 새로 썼다. 첫 번째 연장전에서 그린 옆 물가에 떠 있는 섬에 떨어진 두 번째 샷으로 천금 같은 파세이브를 만들어낸 장면은 지난해 한국 골프 최고의 순간으로 꼽힌다. 그는 “인간이 아무리 공략을 하려고 해도 만들 수 없는 플레이였다”며 “평탄한 듯하지만 매 순간 치열하게 앞으로 나아가려던 제 지난 삶처럼, 앞으로도 개척해 나가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라고 느꼈다”고 말했다.‘제2의 전성기’를 알린 장면, 행운의 결과물인 듯 보이지만 그 뒤에는 최경주의 지독한 자기 관리와 연습량이 녹아 있다. 그는 2018년 갑상샘 수술 이후 술은 물론 탄산음료, 커피를 모두 끊었다. 매일 30분 이상의 러닝과 스쾃 120회, 푸시업과 악력기로 몸을 만들고 그립과 스윙 궤도 등 샷의 기본도 매일 점검한다. 그는 “매일 꼬박꼬박 해온 훈련이 없었다면 그 순간 완벽한 어프로치샷을 해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최경주가 후배들에게 ‘인내’를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다. 그는 “스윙, 기술, 태도는 한방에 완성되는 게 아니라 골퍼의 매 순간이 녹아든 결과물”이라며 “현역으로 뛰려면 좋은 음식과 잠, 충분한 연습을 갖춰야 한다. 하나라도 하지 않으면 바로 도태된다”고 강조했다.
○ “55세에도 핀만 보며 전진할 것”
현역 활동과 함께 최경주가 공을 들이는 것이 ‘최경주 재단’이다. 2008년 설립해 골프 꿈나무들의 훈련과 해외 대회 경험을 지원해왔다. 지금 미국 현지에서 15회 장학생들이 최경주로부터 생생한 교육을 받고 있다. 그는 “꿈나무들에게 예의, 매너 등 기본을 강조한다”며 “학생들에게 바른 선수가 되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제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재단을 통해 저도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골프계에서 최경주는 스폰서와 프로선수 관계의 ‘교과서’라고 불린다. 메인 후원사인 SK텔레콤과 16년째 동행해 온 그는 장학사업과 ESG 활동에서도 발걸음을 맞추고 있다. 그는 “스폰서가 없으면 선수도 없다”며 “요즘 선수들이 후원사로부터 후원받는 것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후원사는 누구보다 저의 성공을 기도해주는 분들이죠. 후원사에 해줄 수 있는 것을 먼저 고민하고, 먼저 제안하는 것이 프로의 기본입니다.”화려한 2024년을 뒤로 하고 맞는 시즌, 최경주는 다시 한번 ‘전진’을 다짐하고 있다. PGA투어에서 498경기를 출전한 최경주는 앞으로 2경기를 채우면 500경기 출전 기록을 세운다. 지난해 더시니어오픈 우승으로 올해 디오픈 출전권을 따낸 데 이어 자신이 우승한 대회에 역대 챔피언 자격 출전권을 요청하고 있다. 최경주는 “500경기 출전은 25년간 20경기를 뛰어야 달성 가능한 대기록”이라며 “꾸준한 자기 관리와 경기력을 보여주는 지표인 만큼 꼭 해내고 싶다”고 강한 의욕을 보였다.
“산과 들, 바다가 하나가 된 완도에서 자라며 배운 것이 있습니다. 산에서 길을 잃으면 아래로 향하는 경사로 가면 된다는 거죠. 중간에 덤불, 정글이 나오더라도 저 아래에는 마을이 나올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계속 나아가면 결국엔 길을 찾게 됩니다. 골프는 더 간단해요. 저 멀리 보이는 핀을 향해 전진하는 거죠. 55세, 56세에도 더 발전하는 골퍼가 되도록 계속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