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연의 경영 오지랖] '비상 경영의 시대'를 맞이하며

새해가 밝았지만 많은 기업의 리더와 구성원 마음이 밝지만은 않다. ‘트럼프 2.0 시대’라는 거대한 불확실성에 지난 20여 년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온 한국 대기업의 전반적 위기, 산업구조의 위기가 더해졌다. 이뿐 아니라 지난해 말부터 국내 정치의 불안정성도 극심해졌다. 모든 것이 위태하다.

아니나 다를까, 여러 기업, 특히 그동안 매우 탄탄하게만 보였던 10대 대기업 다수가 ‘비상 경영 체제’를 대내외적으로 선포하고 나섰다. 충분히 이해가 갈 만한 상황이다.
Getty Images Bank
그런데 이러한 기업의 리더 다수는 ‘비상 경영 체제’를 ‘선언’하거나 ‘선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경영진이 자신들만의 회의를 통해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식이다. 그런 탓인지 비상 경영이라는 어투가 주는 메시지가 다수 구성원에게 잘 와닿지 않는다.

구성원들도 바보가 아니다. 사적으로 글로벌 금융 시장에 투자하는 사람도 많고, 국내외 자산 시장 상황, 각국 환율 변화에 민감한 이들이 다수다. 이들이 현재 글로벌 경제 상황과 자신의 회사가 처한 위기 상황 등에 대한 감각이 없을 리 없다. 어쩌면 엄청난 양의 사내 보고서에만 매몰돼 있는 경영진보다 국내외 경제 환경과 기업 위기 상황에 더 민감할지도 모른다. 이런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늘 그래왔듯 ‘경영진이 위기의 심각성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비상 경영을 발표하고 이에 따르도록 하는 방식은 ‘말의 성찬’에 그칠 확률이 높다.무조건 어려운 시기이니 임원진부터 연봉을 깎거나 성과급을 반납하라는 구태의연한 방식의 조언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각 회사 경영진이 알아서 할 일이다. 비록 이 칼럼의 목적이 약간의 ‘경영 오지랖’이라고 해도 그건 진짜 오지랖일 것이다. 중요한 건 정보의 투명한 공유, 어려운 상황에 대한 솔직한 공개와 구성원과의 교감 그리고 토론일 것이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몇 가지 지침을 만들어서 내리는 방식으로 비상 경영이 성공할 수 없다. 다수 구성원이 경영진에 준하거나 그 이상으로 대내외 위기 상황에 민감한 현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더군다나 오래된 습관대로 ‘주말 출근’, ‘새벽 출근’ 등 퇴행적이고 말 그대로 보여주기식인 비상 경영 지침이라면 어떨까. 다수 구성원은 “위기 상황이라더니 겨우 이런 발상이나 하나”라는 볼멘소리를 하고 의욕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현재의 대내외적 위기 상황뿐 아니라 공개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투명하게 회사의 형편을 설명하고 알리며, 이를 돌파하기 위한 경영진의 아이디어와 비전을 말하라. 그리고 회사에 대해 애정을 조금이라도 가진 많은 구성원의 의견을 듣고 함께 돌파구를 만들라. 그렇게 돌파해낸 위기, 그렇게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함께 지나온 비상 경영의 시대는 그 기업에도, 남은 리더와 구성원들에게도 더없이 훌륭한 ‘성공의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고승연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