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재난 앞에 '오락가락' 국토부, 철저한 조사로 불안 없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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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번복에 국민 신뢰 잃어“20년 전 자료까지 뒤져가며 정확한 사실 관계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고 원인이 무엇인지 예단할 수 없어 답답합니다.”
안전 첫걸음은 원인 규명부터
유오상 건설부동산부 기자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원인 규명을 놓고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관계자가 전한 말이다. 사고 원인부터 조사 상황까지 대규모 참사에 조사당국도 ‘패닉’에 빠졌다는 호소였다. 하지만 사고를 접한 국민은 정부 탓에 더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무안국제공항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 콘크리트 둔덕을 두고 국토부의 해명이 오락가락했기 때문이다.로컬라이저는 항공기가 활주로에 착륙할 때 정확한 방향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 안테나다. 문제는 안테나가 2m 높이의 콘크리트 둔덕에 설치돼 활주로 끝을 가로막고 있었다는 점이다. 여객기가 둔덕과 충돌하며 폭발이 일어나 사고가 커진 원인으로 지목된다.
애초 국토부는 콘크리트 둔덕이 관련 규정에 맞게 설치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둔덕이 활주로 종단 안전구역 밖에 있어 항공 장애물 관리 세부 지침을 따를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과 스페인 테네리페 공항도 비슷하다며 보도 참고 자료까지 배포했다.
그러나 국토부 발표 직후 학계와 전문가 사이에서 반박이 쏟아졌다. 정부가 직접 만든 ‘공항시설 이착륙장 설치 기준’에서도 안전구역은 방위각 시설 지점까지 연장돼야 한다고 적시돼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가 예로 든 해외 사례 역시 사실과 달랐다. 오히려 국내 공항 대다수가 국제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규격 미달’ 공항이라는 사실만 확인하게 됐다.결국 국민 입장에선 국토부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사고 닷새 만에 “설계 업체가 콘크리트 보강을 제안했다”는 해명 역시 발주와 인허가 책임 언급이 빠져 공분을 사고 있다. 국토부가 변명에 급급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토부는 유가족 지원부터 원인 파악, 재발 방지 대책까지 여러 과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법적 문제가 없으니 정부 책임은 없다고 선언하기보다 문제의 원인을 찾고 관련 규정을 개선하려는 노력부터 보여야 한다. 국토부는 둔덕 문제가 제기된 지 나흘 만인 지난 2일에서야 전국 공항 항행 안전시설을 전수 조사했다. 필요하다면 다른 공항에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도 바로 제거해야 한다.
“무엇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국토부가 올해 신년사에서 강조한 말이다. 정부의 신년 포부가 공허한 외침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한 줌의 의심 없이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