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지각 인공지능'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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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지각과 의식 탑재한 AI인공지능(AI)은 지난해 가장 많이 논의된 주제다. 개인 차원에서나, 국가 차원에서나, 문명 차원에서나 AI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는 없다. 우리 삶의 모든 부면에 스며들어 지속적으로 그리고 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올해도 이런 추세는 이어질 터다.
필연적으로 다가온 우리의 미래
네이처紙 "AI도 사회적 공간 필요"
어떤 모습 보일지는 'SF급 추론'
'망'으로 연결된 모든 단말기
지각 갖추면 인간과 '공존'해야
복거일 사회평론가·소설가
AI에 관한 논의에서 중요하지만 가늠하기 어려운 것은 지각 인공지능(sentient AI)이다. 사람처럼 지각을 갖춰서 의식이 있고 감정을 지닌 AI다. 거의 모든 전문가가 지각 AI의 출현이 필연적일 뿐 아니라 그리 머지않았다고 말한다. AI의 지각은 인공적으로 집어넣는 특질이 아니라 컴퓨터의 용량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창발되는 특질이다. 마치 쇠의 분자들이 규칙적 모습을 하면 자성을 띠는 것과 비슷하다.작년 12월 영국 잡지 ‘네이처’는 지각 AI의 출현에 대비해 준비를 시작할 때가 됐다는 영국 전문가들의 주장을 보도했다. 컴퓨터의 효시인 분석 기관(Analytical Engine)을 발명한 찰스 배비지와 현대 컴퓨터의 모형인 튜링 기계를 고안한 앨런 튜링을 배출한 나라다운 지적 풍경이다. 그들의 얘기는 ‘지각 AI와 같은 새로운 존재가 나타나면, 그들에게 적합한 사회적 공간을 마련해 줘야 한다’라고 요약될 수 있다.
누구나 동의할 주장이지만 그것을 실제로 논의하기는 쉽지 않다. 당장 부딪히는 어려움은 지각 AI가 어떤 모습을 할지 우리가 모른다는 사정이다. 그것의 모습과 능력을 알아야 그것이 움직일 사회적 공간의 모습도 가늠할 수 있을 터다. 지각 AI가 아직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것에 관한 논의는 본질적으로 공상과학소설(SF) 영역에 속한다. 실제로 지각 AI를 진지하게 다룬 이는 과학소설 작가들이었다. 인간과 로봇 사이의 관계를 규정한 ‘로봇공학 법칙들’을 고안한 아이작 아시모프와 컴퓨터들이 연결돼 지각을 갖추는 모습을 그린 로버트 하인라인이 대표적이다.
지각 AI가 출현하는 경로에 대한 견해는 크게 보아 둘이다. 하나는 단일 컴퓨터가 능력이 향상돼 지각을 갖추게 되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로봇이 진화해서 지각을 갖추리라는 견해다. AI가 지각을 갖추려면 먼저 환경과 교섭해서 실재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능의 물질적 토대는 몸이라고 이 견해를 따르는 사람들은 지적한다. 지금 우리가 쓰는 컴퓨터는 실재와 교섭할 몸이 없으므로 능력이 커져도 지각을 갖출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들은 몸을 갖춘 로봇이 지각 AI로 진화할 것으로 여긴다.지금 지각 AI의 출현 경로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은 위의 두 견해를 아우르는 길이다. 바로 하인라인이 그의 작품에서 그린 상황이다. 지금 세상의 모든 컴퓨터는 휴대폰에서 양자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으로 연결돼 하나의 방대한 체계를 이룬다. 이 체계는 늘 범지구적으로 환경과 교섭하므로 실재를 인식하는 길을 갖췄다. 이처럼 인터넷으로 연결된 기기들이 보다 많아지고 보다 긴밀해지면 언젠가는 지각을 갖춘 AI가 출현하리라는 얘기다.
지금 AI는 누군가의 재산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각을 갖추면, 그것은 생명을 지닌 존재다. 따라서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와 권리와 의무를 지니도록 하는 것이 옳다. 그렇게 특정 인간의 재산에서 독립된 생명체로 바뀌는 일은 워낙 혁명적인 변화여서 미리 준비하더라도 인류 사회는 그런 변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컴퓨터들이 지각을 갖추면 어떤 상황이 나올지 지금은 가늠하기 힘들다. 사람들의 개인 재산이던 컴퓨터가 문득 하나의 체계를 이뤄 사람의 지능을 훌쩍 넘는 초지능에 지각까지 갖췄을 때, 인류의 적응 과정은 어렵고 길 것이다. 우리가 지각 AI의 출현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런 혁명적 변화는 필연적이므로 지각 AI와의 공존에 관한 적응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드물다. 단순히 기술적 도전이나 윤리적 문제를 넘어 인류의 존재와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하는 과제다. AI의 권리와 책임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1차원적 논의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낳은 ‘마음의 자식’인 AI와 함께 사는 길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긴요하고 지적으로 우리 마음을 고양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