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보다 낫네"…45초 만에 병 찾아내는 '능력자'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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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25지금 이 순간, 갑작스러운 가슴 통증이 느껴질 때 대처법은 둘 중 하나다. 병원에 가거나 참거나. 앞으로는 달라진다. 스마트폰으로 ‘얼굴 셀카’만 찍으면 45초 만에 심박수, 혈압, 호흡수, 산소포화도, 혈류 등을 측정해 통증의 원인을 분석하고 치료법을 알려주는 앱이 개발돼서다.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심장에 이상이 있으면 얼굴 색과 피부 질감이 미세하게 변한다’는 것을 학습한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낸 헬스케어 혁신 사례 중 하나다.
'인류 난제 풀 AI' 개막
(1) 120세 무병장수 시대로
수많은 데이터로 질병 분석
신약개발 비용도 10분의 1로
대만 헬스케어 기업 페이스하트가 개발한 ‘카디오미러’의 데뷔 무대는 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하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5’다. 올해 CES의 가장 큰 특징은 AI가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인류가 수천년간 풀지 못한 난제(難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수준까지 올라섰다는 것이다.헬스케어가 그런 분야다. 혀에 미세한 전류를 흘려 소금 없이도 짠맛을 느끼게 해주는 ‘전자스푼’과 소변이 닿으면 당뇨 등 각종 질환을 체크해주는 ‘양변기 로봇’ 등이 상용화하면 헬스케어의 패러다임은 치료에서 예방과 진단으로 바뀐다. AI가 내놓는 원격진료 시스템은 의료 사각지대를 없애줄 뿐 아니라 신약 개발 비용도 10분의 1로 줄여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AI가 평균수명 120세 시대를 열어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올해 CES에서는 3D(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업종의 노동력 부족 문제와 갈수록 심해지는 환경오염 등 인류의 난제를 AI가 어떻게 풀어낼지에 관한 힌트도 엿볼 수 있다. AI를 머리에 단 로봇이 고된 농사일과 위험한 공장 일을 척척 해내고, 음식물쓰레기를 종류별로 알아서 친환경적으로 처리해주는 기술이 공개된다. 사회적 문제인 고독을 달래주는 ‘AI 친구’도 여럿 등판한다.
'AI거울' 쳐다봤더니…45초만에 "당신은 협심증이 의심됩니다"
의료혁명 핵심은 '예방·관리'
세계 10억 명이 앓고 있는 당뇨는 ‘만병의 근원’이자 ‘돈 먹는 하마’로 불린다. 한 번 걸리면 평생 약을 달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 약을 끊거나 관리를 소홀히 했다간 뇌졸중, 심장마비 같은 큰 병으로 이어진다. 치료가 아니라 진단과 예방이 당뇨 관리의 핵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하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5’에는 헬스케어 패러다임의 변화를 예고하는 진단·예방 기술이 대거 공개된다. 과거와 달라진 건 하나같이 인공지능(AI)을 장착해 예방 및 진단·관리가 훨씬 간편해지고 똑똑해졌다는 점이다.
치료에서 진단·예방으로
중국 스타트업 산무는 당뇨를 매일 추적 관찰할 수 있는 AI 로봇 ‘S1’을 CES 2025에 내놓는다. 양변기에 부착한 S1에 소변이 닿으면 10분 안에 신장 질환과 관련한 10개 지표가 스마트폰에 뜬다. AI를 기반으로 개발한 디지털 마이크로 유체 기술이 소변 성분을 순식간에 분석해낸다. 미국 덱스콤은 연속혈당측정기(CGM)에 AI를 결합해 단순한 혈당 측정을 넘어 그때그때 생활습관을 관리해주는 솔루션을 공개한다. ‘혈당이 갑자기 높아졌으니 음식 섭취를 중단하고 산책을 하라’는 식이다.폴란드 스타트업 스테토미는 아이의 가슴 부위에 갖다 대면 호흡기 질환을 진단해주는 기기를 들고나온다. 심박수, 호흡, 심장 소리 등을 훈련된 AI가 분석해 원인과 치료법을 알려준다. 사람 귀로는 듣기 힘든 천명음 등 미세한 소리도 놓치지 않는 만큼 정확도는 의사 뺨친다. 캐서린 반 데어 스트레이트텐 겐트대 교수는 “만성 폐 질환 환자가 상시 폐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평가했다.AI를 활용해 정신 질환을 예방하는 솔루션도 나왔다. LG전자가 육성해 스핀아웃한 릴리프AI는 플랫폼에 일기 같은 글을 쓰면 AI 알고리즘이 감정 상태 등을 분석해 조언하거나 전문 테라피스트를 추천해주는 플랫폼을 내놓는다.
신약개발비 낮추고 의료불평등 해소
AI는 신약 개발에서도 ‘마법의 손’이 되고 있다. 신약 개발은 수천억~수조원을 들여 10년 넘게 매진해도 대부분 실패하는 탓에 그 과정을 ‘죽음의 계곡’으로 부른다.이런 전통적 신약 개발 프로세스를 바꾸는 것도 AI다. 만성 폐 질환인 특발성 폐섬유화증 치료제 ‘INS018-055’를 개발한 미국 인실리코메디슨은 AI를 활용해 후보 물질을 단 46일 만에 찾아낸 데 이어 임상 2상에서 효과를 인정받았다. AI 덕분에 관련 비용은 10분의 1(4억달러→4000만달러)로 줄었고, 개발 기간은 3분의 1(6년→2년)로 단축됐다. 엔비디아가 투자한 리커전파마슈티컬스가 신경섬유종증 치료제, 유전성 대장암 치료제 등 여러 신약 후보 물질을 보유한 배경에도 AI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AI 덕분에 앞으로 약효가 좋은 신약이 더 빨리, 더 많이 나올 것”이라며 “예방·진단 효율화와 치료제 혁신이 함께 이뤄지면 ‘평균 연령 120세 시대’는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AI를 활용한 신약 개발은 대세가 될 전망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AI를 활용한 신약개발 시장 규모가 2023년 9억270만달러(약 1조3300억원)에서 2028년 48억9360만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AI는 의료 사각지대 해소에도 활용되고 있다. AI를 활용하면 치료비용을 낮출 뿐 아니라 원격진료도 보편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CES에서 무인 의료시스템을 선보이는 미국 기업 온메드가 대표적이다. ‘클리닉인어박스(Clinic-in-a-Box)’ 특허 기술을 활용해 개발한 ‘온메드 케어스테이션’은 가상의 의사가 환자의 건강 상태를 파악해 원격으로 실시간 상담하고 약도 처방한다. 노숙자 쉼터 등에 설치하면 의료 취약계층도 소외되지 않을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한다. 국내 기업인 메디코스바이오텍은 상처 사진을 앱에 올리면 상처를 1기에서 4기까지 분류해 치료법을 제시하는 앱을 공개한다.
라스베이거스=김채연/박의명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