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디 포스터가 알려줬어, 늙지 않는 약은 보톡스가 아니라 교양이라고

[arte] 오동진의 여배우 열전

HBO 맥스 '트루 디텍티브4' 주연으로 만나는
영화 '양들의 침묵' FBI 요원, 조디 포스터

마틴 스콜세이지 영화 '택시 드라이버'로
14살에 스타덤에 올라
그 후 예일대 입학하여 흑인문학 전공

영화 '피고인', '브레이브 원' 등
여배우로서 성평등 문제에 앞장서

오랜 시간 스토킹한 정신이상자가
美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저격하며
큰 충격 입었으나,
영화 '피고인' 촬영하며 회복해

'트루 디텍티브4'에서 형사 역으로 주연
아직 한국에서는 볼 수 없어
조디 포스터가 보고 싶다. 물론 직접 면대 면으로 보고 싶긴 하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한국에서 유명한(?) 평론가라 하더라도(우웩) 그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얘기이다. 사실 내가 보고 싶은 건 조디 포스터의 새 드라마 ‘트루 디텍티브4’이다. 이 드라마의 이전 시즌들은 워낙 마니아 팬들이 많다. 특히 매튜 매커너이와 우디 해럴슨이 맡은, 두 형사의 활약을 그린 시즌1과 콜린 파렐과 레이첼 맥아담스, 켈리 라일리 등이 나왔던 시즌2는 정말 최고의 하드 보일드·누아르 수사물이었다. 시즌3은 좀 별로였다.

어쨌든 시즌4에는 조디 포스터가 메인 롤이고 난 그 시즌4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 시즌4는 현재 애플에서(애플TV가 아니고 그냥 애플에서) 돈을 내고 다운받을 수 있는데 누군가 내게 (당신처럼) 리스닝이 딸리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고 했다. 그만큼 내용이 복잡하고 하이브로우(highbrow)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젠장이다. ‘트루 디텍티브4’는 HBO맥스의 작품이고 이 OTT는 현재 한국에 들어오지 않는다.
조디 포스터의 새 드라마 '트루 드텍티브4'. 바싹 마른 나뭇가지와 같은 이미지로 등장한다. / 사진출처. IMDb
솔직히 조디 포스터는 젊었을 때보다 마흔 이후가 훨씬 더 매력적이고 세련됐으며 오히려 섹시하다. 그녀의 출세작으로 마틴 스콜세이지의 그 유명한 전설의 영화 ‘택시 드라이버’(1976)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조디 포스터는 10대 창녀 역을 맡았다. 그녀 나이 14살 때였다. 그때의 조디 포스터를 좋다고 말하는 자 경계할지어다. 그런 사람 중 자칫 페도필(소아성애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조디 포스터는 ‘택시 드라이버’의 아역으로서의 명성 아닌 명성을 발판으로 스타덤을 이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배우들 대부분이 중간에 약물 파동과 이성 혹은 동성 스캔들을 겪는다. 드류 배리모어는 간신히 그 늪에서 벗어났으며(제작자로 변신하면서) ‘나 홀로 집에’의 매컬리 컬킨은..그냥 망가졌다. 이런 배우들에 비해 조디 포스터는 공부를 택했다. 그녀는 결국 예일을 갔다.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잘난 그 학교를 나왔다. 게다가 그녀의 전공은 흑인문학이다.

여배우로서 조디 포스터가 인종차별 문제에 민감하고 성평등 문제에 앞장서는 것, 사회적 이슈에 발언을 아끼지 않는 것 등등은 그녀가 끊임없이 공부하는 여성상을 선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디 포스터가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탄 것은 윤간 피해자 역을 맡은 ‘피고인’(1988)’이었다. 비슷한 맥락의 영화는 2007년의 ‘브레이브 원’이었는데 일종의 여성 자경단 영화로 그녀는 기획과 주연을 맡았다. 그 오래전 찰슨 브론슨이 했던 ‘데드 위시’의 여성판으로 여기에 아벨 페라라의 파격의 영화 ‘복수의 립스틱’을 합친 버전이다. 흥행에는 실패했다.
마틴 스콜세지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조디 포스터. 아역때 출연했던 영화로 그녀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다.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조디 포스터는 영화 '피고인'(1988)으로 처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사진출처. IMDb
조디 포스터의 인생을 바꾼 영화와 사건은 아주 두드러진다. 영화는 뭐니 뭐니 해도 ‘양들의 침묵’(1991)이겠다. 미국 AP통신의 사회부 기자 출신 토마스 해리스는 세편의 연작물을 썼는데 <레드 드래곤>, <양들의 침묵>, <한니발> 순이다. 토마스 해리스의 수사관 캐릭터는 처음엔 남자였다. 영화 ‘레드 드래곤’에서는 윌 그레이엄(에드워드 노튼)이었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는 신참 FBI 요원 클라리스 스탈링이 주인공이고 그 여성성이야말로 작품의 흥행을 폭발시킨 ‘절대 반지’였다. 조디 포스터는 이 역으로 다시 한번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탄다. 두 번째 수상이었다.

‘레드 드래곤’을 안 본 분들을 위해, 잠깐 옆길 삼천포로 빠지면 이 영화는 동일 원작으로 할리우드에서 두 번 영화화됐다. 소설과 동명의 영화가 ‘레드 드래곤’(2002)이고 브렛 래트너(성룡의 ‘러시 아워’ 시리즈를 만든 감독. 원래는 연출보다 기획과 제작이 본업에 가깝다)가 만들었다. 같은 소설로 만든 영화가 한 편 더 있는데 그게 ‘맨 헌터’이다. 파워풀한 연출의 대가로 알려진 마이클 만이 만들었고 여기서 윌 그레이엄 역을 맡은 배우가 바로 윌리엄 피터슨이다. 맞다. CSI 라스베이거스의 길 그리섬 반장, 그 배우이다. ‘맨 헌터’는 1986년 작이다. ‘맨 헌터’가 ‘레드 드래곤’보다 ‘쬐금’ 더 낫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조디 포스터는 신참 FBI 요원으로 분해 안소니 홉킨스와 열연을 펼친다.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조디 포스터의 인생에 굵은 획을 그은 사건은 1981년의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을 저격 사건이다. 범인은 존 힝클리 Jr.라는 남자였는데 암살 미수의 목적이 오로지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였다는 것이었다. 힝클리는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 니로 흉내를 낸 셈이다. 그렇게 하면 조디 포스터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질 거라고 봤다고 한다. 그는 포스터가 예일을 다닐 때부터 줄곧 스토킹해 온 정신이상자였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조디 포스터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걸 딛고 일어선 것이 바로 영화 ‘피고인’이었다.
1981년 존 힝클리 Jr.가 로널드 레이건 암살 시도에 사용한 총과 총상으로 훼손된 리무진 창.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조디 포스터가 의외로 대규모 흥행작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40줄에 들어서서 출연한 ‘패닉 룸’(2002)에서 강철 방의 엄마 역이었다. 이 작품 이후 그녀는 개성 있는 연기를 펼치는 쪽으로 배우 인생의 길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주연보다는 조연급 주연으로 나온 영화가 많다. 얼굴도 좀 더 각이 지기 시작했고 탄탄한 근육질의 미끈한 나잇살이 들어가는 모습이 보다 매력적이었다. ‘플라이트 플랜’, ‘인사이드 맨’, ‘대학살의 신’, ‘엘리시움’, ‘모리타니안’ 등이 그랬다.

그녀의 최근작은 아네트 베닝과 동성 커플로 나왔던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였다. 조디 포스터는 동성애자이고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며 산다. 현재의 동성 파트너는 두 번째이다. 조디 포스터는 예쁘고 섹시한 여배우가 아니고 멋있고 쿨한, 그냥 사람이다. 그게 진짜 매력이다. 매우 독립적이고 진보적이며 여전히 영화와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게 해주는 개념 배우이다. 조디 포스터의 매력은 교양미이다. 같이 사는 건 다소 까다롭고 피곤할 수도 있는 성격일 것이다.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대학살의 신'(2012)에서 조디 포스터.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트루 디텍티브4’에서 조디 포스터는 바싹 마른 나뭇가지 같은 이미지와 캐릭터로 나온다. 얼굴이 어쩜 저렇게 여위었을까 싶은 모습이다. 1962년생, 63세인 여성 그대로 늙고 주름이 죽죽 가 있는데 오히려 그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보일 수가 없다. 조디 포스터는 여기서 당연히 형사로 나온다. 배경은 알래스카이다. 북극연구원 8명이 실종됐다. 당연히 살인의 기운이 감돈다. 그 음습하고 춥고, 음산하며 어두운 사건의 흑막이 보는 사람들의 신경을 잔뜩 잡아당길 것이다…라고 먼저 본 사람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조디 포스터가 ‘트루 디텍티브4’의 주연이어서 좋다.세상이 시끄러울 때 조디 포스터처럼 살짝 찌푸린 눈초리로 바깥을 내다 볼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니들 뭐 하는지 내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세상은 종종 교양의 미와 덕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조디 포스터가 바로 그런 여배우이다.
HBO 맥스 드라마 '트루 디텍티브4'에서 조디 포스터는 형사 역으로 주연을 맡았다.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