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에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키스 재럿이 그리운 순간들

[arte] 이봉호의 원픽! 재즈 앨범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재럿(Keith Jarrett)의 앨범들

최악의 상황에서 만들어낸 최적의 즉흥 연주
독자적인 스타일의 앨범
키스 재럿 앨범 <My Song> / 사진출처. ⓒECM records 홈페이지
키스 재럿 앨범 <My Song> / 사진출처. ⓒECM records 홈페이지
2025년 새해가 밝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육신은 무거움을 더해간다. 누구에게나 닥치는 현상이라고 서먹한 자기 위안을 하고 싶지는 않다. 어설픈 동작으로 비탈길을 올라가는 방랑자처럼 걷고 또 걸을 뿐이다. 그렇게 가다 보면 멀리서 나를 향해 손짓하는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올지도 모르겠다. 만약 음악이 없었다면 남은 생은 무척이나 공허했을 것이다. 형체는 없지만 체취는 영원한 음악에게 고맙다는 새해 인사를 올린다.

재즈 피아니스트의 세계에서 키스 재럿(Keith Jarrett)은 어떤 의미를 가진 아티스트일까. 음악 레이블을 넘어 일종의 장르로 자리를 굳힌 ECM의 대표주자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Bill Evans)의 뒤를 잇는 연주자라는 해석만으로도 아쉬운 감이 적지 않다. 20세기와 21세기를 이어주는 즉흥 연주의 대가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인물이라는 문장을 추가해 본다. 그렇게 키스 재럿은 현대 재즈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불세출의 마에스트로다.▶▶[관련 칼럼] 전설의 재즈음악가 빌 에반스는 끝내 우물 속으로 빨려들었지
사진출처. ⓒECM records 홈페이지
사진출처. ⓒECM records 홈페이지
1945년 미국에서 태어난 키스 재럿은 독일과 슬로베니아 출신의 부모 아래서 성장했다. 7살 무렵부터 유명 클래식 작곡가의 작품을 소화해 냈던 그는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원의 스승들로부터 다양한 클래식 연주법을 전수받았다. 1964년에는 버클리 음대에 진학해 본격적인 재즈 아티스트로의 길을 택했다. 아트 블레이키 재즈 메신저스에서 실력을 연마했던 그는 임펄스, 어틀랜틱, 컬럼비아 레이블에서 음반을 내놓았다. 그의 천재성을 눈여겨보았던 ECM의 설립자인 만프레드 아이허(Manfred Eicher)는 삼고초려 끝에 1973년 키스 재럿의 <Facing You> 앨범을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 <Facing You>에 수록된 'Lalenel']
키스 재럿의 디스코그래피를 말할 때 가장 먼저 꼽는 음반이 바로 <The Köln Concert>다. 이는 악보없이 연주를 즐기는 키스 재럿의 즉흥 연주를 말할 때 늘 언급되는 앨범이다. 2장의 엘피에 수록한 트랙은 4개가 전부다. 곡명은 Part l, Part ll A, Part ll B, Part ll C로 구성되어 있다. 직접 감상하기 전에는 의미 부여가 모호한 명칭들이다. <The Köln Concert>는 최악의 상황에서 최적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 <The Köln Concert>에 수록된 'Köln, January 24, 1975, Pt. II C' (Live)]


당시 주최 측의 실수로 키스 재럿이 원하는 뵈젠도르퍼 290 임페리얼 콘서트 그랜드 피아노를 준비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참다못한 키스 재럿은 자신이 요청했던 피아노가 없다면 연주할 수 없다고 담당자에게 전했다. 이 상황에서 18세의 공연기획자였던 베라 브란데스(Vera Brandes)는 키스 재럿에게 마지막으로 연주를 간청했다. 키스 재럿은 그녀에게 이번 연주는 오직 당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공연장으로 향했다.관객의 기침 소리만 들려도 공연을 중단할 정도로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였던 키스 재럿은 건강 문제까지 겹쳐 정상적인 연주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여기서 음악의 의외성이 드러난다. 노력만큼의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기대 이상의 반응이 터지기도 하는 것이 음악의 특성이다. 올해 50주년을 맞이하는 <The Köln Concert>는 1975년 발매 당시 빌보드 재즈 앨범 차트 9위에 오르면서 ECM을 포함한 키스 재럿 최고의 음반으로 인정받았다.

키스 재럿의 음악은 <The Köln Concert>, <Sun Bear Concerts> 등을 축으로 한 즉흥 연주와 <Standards, Vol.1>, <Standards, Vol.2> 등으로 이어지는 스탠다드 연주로 구분이 가능하다. 필자는 20~30대에는 그의 즉흥 연주에, 40대 이후에는 스탠다드 연주 음반에 손이 자주 가는 편이다. 지금까지 수집한 키스 재럿의 음반이 40여 장에 달하는 관계로 원픽 앨범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러 매체에서 언급했던 <The Köln Concert>를 다시 포스팅하기에는 부담이 있었다.

[♪ <Sun Bear Concerts>에 수록된 'Kyoto, November 5, 1976 (Part 1)']
[♪ <Standards Vol.1>에 수록된 'God Bless The Child']


[♪ <Standards, Vol. 2>에 수록된 'Moon And Sand']


그 때문에 다른 형태로 만들어진 그의 초기 음반을 골라 보았다. ECM에서 보여준 키스 재럿의 연주는 독주와 트리오 형태가 일반적이다. 솔로 콘서트에서는 주로 즉흥 연주를 즐기며, 트리오 콘서트에서는 스탠다드 연주에 도전하는 그의 성향을 감안할 때 추천작인 <My Song>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스타일의 앨범이다. 멤버 구성도 전성기 트리오 시절의 베이시스트 게리 피콕(Gary Peacock)과 드러머 잭 디조네트(Jack DeJohnette)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왼쪽부터) 게리 피콕, 키스 재럿, 잭 디조네트 / 사진. ⓒSven Thielmann, ECM Records
600만 장의 판매고를 자랑했던 <The Köln Concert> 이후 3년 만인 1978년에 스튜디오 앨범으로 제작한 <My Song>은 재즈 초심자가 접근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트랙이 수록된 작품이다. 그렇다고 앨범 전체가 난해한 연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키스 재럿의 음악을 몰랐던 청자일지라도 타이틀곡 ‘My Song’과 ‘Country’에 마음을 놓았던 기억이 있다. 1980년대 말 당시 팝 음악 위주로 운영했던 라디오 방송에서도 ‘My Song’이 울려 퍼질 정도였다.

<My Song>에서는 키스 재럿을 필두로 색소포니스트 얀 가바렉(Jan Garbarek), 베이시스트 폴 대니엘슨(Palle Danielsson), 드러머 존 크리스텐슨(Jon Christensen )이 참여했다. 키스 재럿을 제외한 3명의 멤버 중에서 두각을 보인 연주자는 얀 가바렉이었다. 특히 ‘My Song’에서 들려주었던 멜로딕한 사운드는 평소 실험적인 즉흥 연주에 몰두했던 얀 가바렉의 색 다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곡의 시작을 알리는 키스 재럿의 내향적인 건반 터치는 얀 가바렉의 존재감을 돋보이게 해준다.

[♪ <My Song>에 수록된 'My Song']


[♪ <My Song>에 수록된 'Country']


이제 키스 재럿은 더 이상 라이브 무대를 펼칠 수가 없다. 무대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그의 열정적인 연주를 다시는 만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그가 빚어낸 모든 연주가 작은 이별의 시그널로 다가온다. 거침없이 산화하는 시간이라는 전차 앞에서 인간은 먼지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이번에는 1999년에 발표했던 키스 재럿의 음반 <The Melody At Night, With You>를 듣고 있다. 그가 건반 위에서 만들어낸 수많은 눈물 앞에서 작은 염원을 빌어본다. 부디, 병환을 이겨내고 기적처럼 다시 일어나기를.
사진제공. 이봉호
[♪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이봉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