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 노선 갈아타는 유럽 극우정당…이미지 세탁인가, 유연한 진화인가

포퓰리즘 변화 어디까지 왔나

佛 르펜의 RN, 농촌 공략해 지지도↑
伊 멜로니, 건전재정·EU와 보조 맞춰
"주류 정당, 포퓰리즘과 교류·거래해야"
마린 르펜이 이끄는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은 지난해 6월 조기 총선 1차 투표에서 33.1% 득표율로 전체 정당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과반을 획득하지 못해 2차 투표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RN의 약진은 극우 포퓰리즘의 성장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평가됐다.

주목할 만한 것은 RN의 성공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다. 다른 극우 정당과 비슷하게 반이민 정서에 기대 ‘나치즘’을 연상시킨 과거와 달리 RN이 좌우 기성 정당보다 오히려 정당 본연의 역할에 더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는 것이다. 핵심은 ‘풀뿌리 민주주의’다. RN은 초기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중앙이 아니라 지방으로 눈을 돌렸다. 르펜 등 핵심 인사들은 지방 소도시와 농촌을 집중 공략하면서 ‘잊힌 국민’의 대변자이자 엘리트주의에 맞서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자를 자처했다.이탈리아 역시 극우 포퓰리즘의 변형을 보여준 사례로 언급된다. 극우 정당인 이탈리아형제당(FdI) 출신인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2022년 10월 집권한 이후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정치적 안정성을 획득하면서 실용주의 정부로 거듭나고 있다. 극우의 캐치프레이즈나 다름없던 반(反)유럽연합(EU) 정책에서 유연성을 발휘해 극우 포퓰리즘의 진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EU의 코로나 회복기금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인프라 투자와 디지털 전환에 투자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팬데믹 이후 이탈리아 관광업이 부활하면서 멜로니 정부는 올해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6%로 줄이고, 2026년에는 3%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울 정도로 건전 재정을 구축하고 있다. 기후 정책과 관련해서도 이탈리아 정부는 급진적인 환경 규제를 자제하되 EU의 탈탄소 기조를 따르면서 현실적인 기후 정책을 강조하는 실용주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헝가리의 극우 정부가 사법부 독립성을 약화시키는 등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해 EU 지원금을 중단당한 것과 대조적이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극우 정당들도 연립정부에 참여하거나 연립정부를 지지하기로 합의한 이후 실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 극우 정당이 과거와 달리 통치를 책임져야 할 때가 다가오면 자신들의 견해를 완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포퓰리즘이 좌우 극단으로 치닫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중도주의(centralism)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중도주의가 포퓰리즘과 극단주의의 지나친 단순화에 해독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포퓰리즘 정당을 완전히 배제하려고 하기보다 주류 정당이 그들과 교류하고 거래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책”이라고 조언했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