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불만이 낳은 분노의 정치…세계는 '포퓰리즘 사이클' 진입

민주주의 뒤흔드는 포퓰리즘

키르케고르 브뤼겔연구소 선임연구원
생산성·저출산 해결 위한 AI와 이민 확대가
되레 역효과…'포퓰리즘 득세' 판 깔아줘
"유권자들의 '진정한 불만'과 '정당한 공포'
중도파가 들여다보고 대응 방안 제시해야"

잭 마이어스 유럽개혁센터 부소장
포퓰리즘 정당, 녹색정책 반발은 '자해행위'
유럽, 풍력터빈 등 친환경제품 기술적 우위
당장 일자리 때문에 성장잠재력 포기하는 셈
지난해 세계 주요 선진국의 민주주의는 심한 몸살을 앓았다. 2024년 전국 단위의 선거가 치러진 12개 서방 선진국에서 집권당이 한 곳도 빠짐없이 정권을 내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서양 민주주의 120년 역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며 “젊은 피를 수혈한 우파 포퓰리즘의 약진”을 바이러스의 진원지로 꼽았다. 중남미나 아프리카 등 후진국 특유의 정치 풍조로 치부되던 포퓰리즘이 왜 오랜 민주주의 역사를 지닌 나라를 흔들고 있는 것일까.
유럽 대표 싱크탱크인 유럽개혁센터의 잭 마이어스 부소장은 “중도파(cetralist)가 ‘진정한 불만’과 ‘정당한 공포’에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야코브 키르케고르 브뤼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포퓰리즘은 기존 정치체제에 참여하지 못하던 이들의 정서를 민주주의에 주입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중도주의가 특히 감정적 측면에서 이들을 어떻게 수용할지 대응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각각의 서면 인터뷰를 가상 대담 형식으로 꾸몄다.
▷포퓰리즘 확산 속도가 빠른 것 같습니다.

키르케고르 = SNS가 파괴적인 힘을 갖게 된 것이 근본 원인이에요. (미국, 중국의 공세로 토종 SNS가 설 자리를 잃은 유럽에선) SNS가 경제적 불안을 더욱 확산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문제군요.마이어스 = 맞습니다. 포퓰리즘은 경제적 불안감의 결과죠. 영국을 포함해 유럽은 장기적인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정치인들도 이 문제를 잘 알지 않나요.

키르케고르 = 선진국 대부분이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AI) 등 기술 혁신을 꾀하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민 확대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역효과를 내기 시작했어요.▷어떤 역효과입니까.

키르케고르 = AI가 일자리를 뺏을 것이란 두려움, 통제되지 않은 이민으로 국가 정체성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죠. 게다가 대다수 유권자는 자신을 위해 일하지 않는 정치에 지쳐버렸습니다.

▷왜 포퓰리즘에 끌리는 건가요.키르케고르 = 단순하기 때문이죠. 포퓰리스트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단순한 ‘정치적’ 해결책을 앞세웁니다. 반이민 정서와 친환경 정책 반대가 대표적인 사례예요.

▷경제 문제를 정치로 해결할 수 있나요.

키르케고르 = 그게 가장 큰 모순입니다. 반이민 정서로 유럽에 이민자가 급감하면 유럽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인구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친환경 문제도 마찬가지겠네요.

마이어스 = 그린래시(녹색정책에 대한 반발)는 유럽 경제의 미래에 매우 위협적일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의 강점 중 하나는 풍력 터빈 등 친환경 제품에서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거예요. 유럽은 그동안 명확하고 장기적인 기후 목표와 예측 가능한 규제 체제로 녹색 기술에 대한 투자를 장려해 입지를 확보했습니다. 포퓰리스트들은 당장의 일자리 때문에 가장 강력한 성장 잠재력을 포기하자고 말하는 겁니다.

▷복잡성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겠네요.

마이어스 = 그래서 포퓰리즘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겁니다. 단일 이슈의 포퓰리즘은 광범위한 경제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아요. 재정 적자를 무시하고, (무차별적인) 세금 인하를 주장합니다. 게다가 타협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결국엔 경제에 해가 될 텐데요.

키르케고르 = 포퓰리즘 정당은 핵심 유권자 집단(저숙련 및 고령 유권자)이 선호하는 ‘재정이 많이 드는 정책’을 시행하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포퓰리즘 정책은 광범위한 경제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추진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포퓰리즘도 전염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키르케고르 = 나라별로 포퓰리즘의 사이클이 있어요. 유럽에선 SNS의 영향으로 당분간 포퓰리즘이 득세할 가능성이 큽니다. 포퓰리즘이 정치적 극단주의, 폭력, 지속 불가능한 경제 정책과 위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질환이 전 세계로 퍼질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키르케고르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보편관세와 이민자 추방 등이 초기엔 미국에 성장을 가져오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비용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달러 가치가 상승해 애초에 의도한 수출이 제대로 안 되면 결국 엄청난 재정적자의 거품이 터질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 침체는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민주주의에 타격을 줄 겁니다.

▷돌파구는 없을까요.

마이어스 = 인구 통계학적 변화, 비즈니스 역동성 부족, 낮은 혁신 역량,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첨단 제조업의 위기 등으로 인해 포퓰리즘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폴란드와 헝가리만 해도 공영 방송과 사법부의 독립성을 통제하면서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말았죠. 포퓰리즘은 음모론의 수용을 확대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저널리즘에 대한 믿음을 약화합니다.

▷정치가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마이어스 = 대중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의 근원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세계화와 자유 무역이 성장에 도움이 되긴 했지만 그 성장의 혜택이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았어요. 근로자가 쇠퇴하는 산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재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등 과도기적 지원책을 제공해야 합니다.

▷중도의 포용능력이 중요하겠네요.키르케고르 = 전통적인 지도자들은 유권자 다수를 포퓰리즘 정당으로 몰아가는 경제적, 사회적 불만을 자세히 분석해야 합니다. 기성 정치인들은 이런 정치적 정서를 그들의 정치 플랫폼에 통합할 수 있어야 해요. 가능한 한 많은 시민에게 민주주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