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 괴롭힘 신고 접수했는데 녹취가 없다면…

한경 CHO Insight
행복한일 노무법인의 '직장내 괴롭힘 AtoZ'
기업에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A대리는 최근 까다로운 사건을 맡아 고민에 빠졌습니다. 신고인이 부서장으로부터 인격 모독성 폭언을 들었다며 고통을 호소해 정식 조사를 진행 중인데, 조사과정에서 신고인은 부서장의 폭언을 반복해서 주장할 뿐 녹음자료 등 객관적 증빙자료를 전혀 제출하지 않았고, 행위자로 지목된 부서장은 그러한 폭언을 한 적이 없다며 극구 부인하는 태도로 일관했습니다.신고인이 주장하는 부서장의 폭언은 일대일 면담 중에 일어난 일이기에 다른 목격자도 전혀 없는 상황에서, A대리는 조사를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곤혹스러웠습니다. 행위사실의 존재여부가 먼저 확정되어야 그 행위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 성립요건을 적용해 판단할 수 있을 텐데, 부서장의 폭언을 증명하는 직접적 증거가 없으니 행위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인지, 그게 아니면 무엇을 더 조사하여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사용자의 조치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그 사실 확인을 위해 ‘객관적으로 조사’를 하여야 합니다. 일반적인 조사방법이나 절차에 대해서는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을 참고할 수 있으며, ‘객관적인 조사’가 법상 의무인 만큼 외부 전문가 활용이 어려운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내부 직원이 직접 조사를 담당하는 경우라면 조사기법 등 전문 역량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5주년을 맞아 실시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 실태조사'에서 인사담당자들이 응답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1년간 각 사업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사건을 조사하여 최종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성립’으로 인정한 비율은 평균 50%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신고 사건 2건 중 1건은 직장 내 괴롭힘 불성립으로 결론을 지었다는 것인데, 그 주요 이유는 직장 내 괴롭힘 성립요건(특히 ‘업무상 적정범위 초과’)에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긴 했지만, ‘(신고인이) 주장하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상당히 높았습니다. 앞선 사례와 같이 사건 당사자 외에 직접 괴롭힘 행위를 목격한 사람이 없고 달리 객관적인 증빙자료도 없는 상황에서 피신고인이 그 행위사실을 부인하는 경우, 보다 면밀한 증거조사 없이 사실인정 불가로 단정하고 마는 것은 아닌지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직장 내 괴롭힘 조사 시 사실인정 기준으로는 민사소송의 사실인정에 대한 대법원 판례 법리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민사소송이나 행정소송에서 사실의 증명은 추호의 의혹도 없어야 한다는 자연과학적 증명이 아니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험칙에 비추어 모든 증거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볼 때 어떤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시인할 수 있는 고도의 개연성을 증명하는 것이면 충분하다”고 하였습니다(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따라서, 신고한 행위에 대한 녹취록 등 직접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신고인의 진술이 매우 구체적·일관적이고 진술의 동기·이유·경위, 진술의 태도·뉘앙스나 피신고인과의 이해관계 유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되고, 행위 당시의 정황을 뒷받침하는 간접 증거를 토대로 객관적·합리적으로 볼 때 그 신고내용이 경험칙상 해당 사업장에서 발생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고도의 개연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사실로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신고인의 주장에 의심할 만한 부분이 있거나 반증이 있는 경우에는 사실로 인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요컨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조사하는 조사자는 신고 행위를 증명하는 직접 증거가 없음만을 이유로 성급하게 행위사실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신고인 진술의 신빙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다양한 간접 증거를 종합하여 ‘고도의 개연성’ 증명에 이를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하겠습니다.또한, 회사가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된다고 판단하여 행위자에 대해 징계처분을 하는 경우, 행위자가 불복해 노동위원회에 부당징계 구제신청을 하는 등 쟁송절차로 이어지게 되면 징계의 정당성에 관한 입증책임은 회사가 부담하는 점에도 유의하여야 합니다. 쟁송 과정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인해 부당징계로 판정되는 사례도 발견되는 만큼,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 조사자는 조사과정에서 행위 당시의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신고인의 일기 등 수기 작성 기록 등을 요구하여 참작하거나 동료 등 참고인 조사, 필요한 경우 현장방문 조사를 실시하는 등 더욱 적극적인 태도로 증거 수집에 임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사가 직장 내 괴롭힘에 대응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사건 당사자뿐만 아니라 조직 구성원들은 회사가 구성원 인격권 보호에 어느 정도로 관심이 있는지, 회사가 실제로 구체적·전문적인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구성원들의 조직 신뢰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조직은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을 위해 적극적이고도 신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차상미 행복한일연구소/노무법인 공인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