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의무 불이행과 중대재해 인과관계 없으면 무죄" 첫 판결 나왔다

한경 CHO Insight
법원은 최근 제조업 협력업체 근로자가 작업 중 날아온 공구에 맞아 사망한 사건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이 없다면서 무죄판결을 선고하였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안전보건 확보의무 불이행과 사고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판단이었다(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 2024. 12. 19. 선고 2023고단510 판결).이 판결 전에도 중대재해처벌법 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례는 있으나(대구지방법원 영덕지원 2024. 10. 16. 선고 2023고단226 판결), 해당 판결은 관급자재비는 공사대금 산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사대금을 50억 원 미만으로 판단하여, 사고가 발생한 공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유예되는 공사에 해당하므로(2024. 1. 27. 이전에는 건설업의 경우에는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공사에 대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피고인들에게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이므로, 중대재해처벌법의 법리와 실질적인 심리를 거쳐 무죄를 선고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려웠다. 그와 달리 이번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의무와 중대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상 형사처벌을 하기 위해서는 법 제4조, 제5조에서 규정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의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과 제2조에서 규정한 중대재해의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한다. 법원과 검찰의 해석도 동일하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선고된 총 31건의 중대재해처벌법위반 판결 중 상당수는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특별한 설시 없이 유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이번 무죄판결에서는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의무를 이행하였다면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 인정되어야 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구체적으로 이번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안전보건 업무를 총괄하는 전담 조직 구성의무와 관련하여 적어도 회사가 외부에 공시하는 조직도나 인사발령 등을 통하여 조직의 설치나 변경내용이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러야 할 것이지 단지 내부 회의에서 전담조직을 두기로 하고 그 구성원을 정한 것에 그치는 정도라면 중대재해 전담조직이 구성되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면서도, 회사 내부적으로 공장 순회점검이 이루어진 점 등을 종합하면 전담조직을 두지 않은 것과 사고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하였다.또한 이번 판결은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절차 마련 의무와 관련해서도 의미 있는 판시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 수사 과정에서는 해당 중대재해가 발생한 원인에 대한 유해·위험요인 확인과 그에 따른 개선 내용이 서류상 확인되지 아니하면 해당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고, 사고와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는 회사에서 위험성평가 실시 규정을 제정하여 정기 및 수시 위험성평가를 실시하였고, 협력업체에 대해서도 위험성평가를 하도록 하였으며, 수공구가 기계에 끼어들어가 튕겨 나오는 경우를 예견할 수 없어 미래의 위험에 대한 항목에 포함시키지 않은 사안에 대해, 피고인으로서는 사업장 특성에 따른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하여 개선하는 업무절차를 마련하고 이를 이행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였다.

만약 사고가 예견 가능한 것이었다면 사업장 특성에 따른 유해, 위험요인을 확인하여 개선하는 업무절차를 마련함에 미흡함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하였으나, 예견할 수 없는 사고에 대해서까지 위해·위험요인을 확인하여 개선하는 업무절차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하였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큰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판결내용은 너무나 당연한 법리를 제시한 것이지만, 기존 수사나 판결 과정에서 사건 당사자들이 예견할 수 없는 사고까지도 위험성을 사전에 확인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수사 또는 재판을 받는다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례들도 종종 있었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의무위반으로 인한 사상이라는 중한 결과발생에 대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등의 예견가능성이 인정되어야 하고(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재판 실무상 쟁점), 통상 예견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 이례적인 사태의 발생까지 예견하고 대비할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대법원 2021. 1. 11. 선고 2021도11948 판결). 이번 판결에서는 피해자의 작업 및 관련 공정의 내용, 기계의 작동방식, 공구의 제조 목적, 평상시 작업방식 및 교육 내용, 공구의 재질 및 특성 등을 고려하여 사고에 대해 ‘예견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였다.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상당인과관계와 예견가능성 등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학계나 실무를 담당하는 기관에서 이견이 없음에도, 실제 판결 과정에서는 이에 대한 아무런 설시없이 유죄가 선고된 사례가 상당수 있다. 인과관계와 예견 가능성에 대한 인정 여부에 대해 제대로 심리하지 않는 경우 경영책임자의 형사책임이 무제한 확대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판결은 인과관계와 예견 가능성에 대한 설시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그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판결을 시작으로 단순히 안전보건 확보의무 불이행과 피해자 사상이라는 결과만으로 쉽게 유죄를 인정하지 않고,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인과관계와 예견 가능성에 대한 충실한 검토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진현일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