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자금 회수 길이 막혔다는 VC들의 토로

韓서는 답이 없다는 스타트업
28조 벤처펀드 탈출구 찾아야

고은이 테크&사이언스부 기자
“벤처 회수 시장이 붕괴하고 있습니다. 기업공개(IPO) 시장이 경색되니 국내에선 출구를 못 찾는 기업이 많습니다.”

한 벤처캐피털(VC) 대표에게 올해 벤처투자 시장 전망을 묻자 돌아온 답이다. 이 대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을 때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며 “중후기 전문 VC들은 (투자에) 들어가서 마이너스, 또 마이너스”라고 말했다. 상장 시장이 침체하면서 스타트업들이 IPO를 포기하거나 상장 후에도 성적이 좋지 않은 상황을 언급한 것이다.다른 VC 대표에게 올해 기대되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묻자 그는 IPO를 준비 중인 기업들을 소개했다. 이 중 상당수는 해외 상장을 추진 중이다. 그는 “지금 코스닥시장에선 상대 가치 평가가 안 나온다”며 “의미 있는 IPO 시장이 되려면 코스닥지수가 850~1000 사이에서 굴러가면서 공모 수요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지금은 그게 안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스타트업이 국내 상장을 포기하고 해외로 눈길을 돌렸다. 국내 벤처업계의 최대어인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는 미국 증시로 방향을 틀었다. 케이뱅크가 기관투자가 수요 예측에서 흥행에 실패해 상장을 연기한 게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 여행 플랫폼 야놀자 등 주요 유니콘 기업도 모두 해외 상장을 저울질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국내 증시가 플랫폼의 기술적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고 토로한다. 한 유니콘 기업 관계자는 “기업 가치를 평가받을 때 전통 기업들과 비교산업으로 묶이는데 국내 증시에서 상당히 저평가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플랫폼 기업들은 인공지능(AI) 역량을 강조하는 등 테크 기업 이미지를 씌우는 데 여념이 없다.문제는 국내 회수 시장 경색이 당장 엑시트를 준비 중인 기업뿐만 아니라 초기 벤처투자 시장까지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회수 과정이 만만치 않으니 VC들은 초기 투자부터 망설인다. 잭팟을 터뜨린 창업자가 안 나오니 주요 인재도 창업을 꺼린다. 한 초기투자사 관계자는 “회수가 확실한 기업에만 투자금이 쏠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당장 지수를 확 끌어올릴 수는 없어도 다양한 회수 경로를 뚫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앞으로 4년간 만기가 도래하는 벤처펀드 규모만 28조원이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이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인수합병(M&A)에 역할을 하거나 다양한 세컨더리펀드가 나와 중간 회수 시장을 키울 수도 있다. CVC 외부 출자 규제를 풀거나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를 제도화하는 게 물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