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글로벌 인재 경쟁 속 한국의 초상

거세지는 첨단 인재 확보 경쟁
근로시간·교육제도 개선 시급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최근 건국대를 시작으로 서울시립대, 경북대, 부산대 등 국내 대학에서 채용설명회를 열었다. 그동안 해외 반도체 기업의 인재 스카우트 대상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서 잔뼈가 굵은 경력직 엔지니어였다. 고액 연봉과 자녀 학비, 거주 자금 지원 등 최고 대우를 약속하며 기술 인재를 영입했다. 하지만 이제는 국내 대학 학부생까지 채용하고 나섰다.

한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향하는 석·박사급 고학력 기술 인재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정부의 고급 인력 취업 이민 비자인 ‘EB-1·2’를 받은 한국인은 모두 5684명으로 인구 10만 명당으로 환산하면 인도, 중국을 10배가량 앞지른다. 반도체뿐만이 아니다. 미국 시카고대 폴슨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인공지능(AI) 인재의 40%가 해외로 떠났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출신 10년 차급 AI 인재의 절반이 해외로 이직했다.이처럼 미래 핵심 산업의 주역이 돼야 할 기술 인재들이 너도나도 해외로 빠져나가 한국 첨단산업의 경쟁력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한국 첨단산업은 이미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2031년이면 국내 반도체 산업 현장에서 기술 인력이 약 5만6000명가량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나노 등 4개 주요 신기술 분야 역시 5년간(2024~2027년) 약 6만 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된다.

첨단 분야 인재 부족의 원인으로는 저출생, 의대 선호 현상, 해외에 비해 낮은 보상 수준, 권위적인 직장문화 등이 거론된다. 그 가운데에서도 뿌리 깊은 연공형 임금체계 등 경직된 노동법·제도가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연공형 임금체계로는 인재 유치가 불가능하다.

현행 근로기준법이 ‘노조 또는 근로자 과반수’ 동의 없는 임금체계 개편을 금지하는 현실에서 많은 기업이 추진한 임금체계 개편이 노조의 반대로 무산됐다. 미국 유럽 등 대부분 선진국이 직무와 성과에 기반한 임금체계를 운영하는 만큼 적어도 일본처럼 사회 통념상 합리적인 임금체계 개편은 노사 협의만으로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인력 부족 속에 경직된 근로시간 제도도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하고 있다. 첨단 분야 인재가 세계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주요 선진국은 근로시간 규제 적용을 면제하는 제도를 통해 부족한 인적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우리도 이를 개선하기 위해 최근 국회에서 반도체 연구개발(R&D) 업무 종사자에게는 근로시간 규제 적용을 제외하는 ‘반도체특별법’이 발의됐으나 통과가 요원하다.

교육제도의 전면적 개편도 필수적이다. 대학생의 전공 선택과 변경에 유연성을 부여해 교육제도와 노동시장 간 불일치를 줄여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대학이 신산업 관련 학과 정원을 확대해 시장 수요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계 각국 정부와 글로벌 기업은 우수 인력 확보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첨단 분야 인력 양성과 활용상 문제는 한국 경제의 명운과 직결되기에 지체할 시간이 없다. 첨단 인력에 대한 처우와 연구 환경을 대폭 개선하고 국내 인력을 붙잡는 것뿐 아니라 해외 우수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비자제도 개선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하루빨리 노동법 제도와 교육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편해 첨단산업의 경쟁력을 지킬 마지막 기회를 잡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