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AI시대 부모의 지혜

이숙희 한국아동보육복지협회 대표
“헤이 OOO, 불 켜!” 하루를 시작하며 거실에 울려 퍼지는 아이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귀여운 모습에 미소가 번진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살짝 걱정이 든다. 어린이집에서도 혹시 이런 명령조 말투가 나오지 않을까 해서다. 어린이집 선생님께도 “이거 해주세요!”가 아니라 “이거 해!”라고 말해버리면 어떻게 하나. 주변 친구들에게도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다.

맞벌이 부부로서 처음 재택근무를 시작했을 때, ‘출퇴근 시간을 아낄 수 있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겠지’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화상회의 준비로 정신이 없으면, 아이는 옆에서 “엄마(아빠)가 집에 있는데 왜 안 놀아주냐”고 묻는다. 회사가 아니라 집에서 일하지만 정작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예전보다 줄어드는 아이러니를 맞게 된다.인공지능(AI) 기술이 우리의 일상을 효율적으로 바꾸는 듯 보이지만, 그만큼 새로운 고민도 안겨준다. 얼마 전 회사 워크숍에서 만난 한 동료는 “아이 유치원에서 코딩 수업을 하는데 로봇을 활용해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과정을 지켜보니 창의력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고 자랑했다. 분명 코딩 교육은 미래 디지털 시대의 핵심 역량을 미리 익힐 기회가 된다. 그러나 “너무 이른 시기에 코드 문법부터 배워서 아이가 오히려 흥미를 잃지는 않을까?”라는 우려도 따라온다. 기초 학습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아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코딩을 접하면 수학 능력이나 문해력 등 다른 학습 요소가 뒷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가 먼저 할 일은 디지털 리터러시를 갖추고 교육기관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이다. 아이가 사용하는 앱이나 교재가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는지 미리 확인하고 문제가 생길 여지는 없는지 점검해보는 식이다. “쓰지 마!”라는 일방적 제지 대신 “위험 요소가 이러이러하니 이런 식으로 주의해가며 써보자”라고 설명해주면 아이도 부모가 자신과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고 느껴 안도감을 얻는다.

무엇보다 사람이 전할 수 있는 따뜻함은 절대로 대체되지 않는다. 로봇청소기가 방을 잘 치워주고 AI가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해도 아이에게 “잘했어!”라고 눈을 맞추며 칭찬해주고 신나게 뛰어놀아 줄 수 있는 존재는 결국 부모와 주변 사람들이다.

결국, ‘AI 시대에 아이에게 필요한 힘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부모에게 숙제로 남는다. 디지털 기기가 제공하는 편리함과 코딩 교육이 열어주는 가능성은 최대한 누리되 우리 아이가 ‘인간만의 감성과 유대’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일. 바로 이 균형을 잡는 것이 맞벌이 부모가 함께 고민하며 만들어가야 할 중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