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우 "로보틱스 SW에 집중해야 한국식 AI주권 확보"

박종우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

AI라는 배 이미 놓쳐
대학은 10년前 공대수업
과목 코드만 바꿔
AI 커리큘럼으로 둔갑

한국 제조 하드웨어 강점
로보틱스에 집중해야 승산
“인공지능(AI)이란 배는 한국이 이미 놓친 것 같습니다.”

로봇과 AI 분야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인 박종우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사진)는 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 교수는 “일부 대기업이 AI 파운데이션모델(기반모델)을 개발하고 있지만 전부 국내용”이라며 “국제 무대에서 리더십을 하나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박 교수는 미분기하학을 로봇 행동 제어와 최적화 설계에 적용하는 소프트웨어(SW)를 처음 개발한 학자다. 지난해 말 각각 이공계, 과학기술계 명예의 전당으로 불리는 한국공학한림원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에 동시 선정됐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전기공학·컴퓨터과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응용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딴 융합형 학자이자 ‘아기 유니콘 기업’으로 선정된 AI 스타트업 세이지를 창업한 기업인이다.

박 교수는 수십 년 전부터 AI 기술을 다져 온 미국 등과 AI가 등장한 후 부랴부랴 쫓아온 한국이 경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1995년 서울대에 처음 부임했을 때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당시 미국 대학 컴퓨터공학과에서는 AI의 근간인 인공신경망(ANN)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었는데 서울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뭔가 ‘세팅’이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국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는 AI대학원에 대해서도 “10여 년 전 공대 수업 과목을 코드만 바꿔서 최신 AI 수업이라고 내놓은 사례가 부지기수”라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빅테크의 영역인 AI 원천기술을 어설프게 연구하고 개발할 것이 아니라 AI의 하위 응용 분야인 로보틱스 SW에 집중하는 것이 ‘한국식 AI 주권’을 확보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로보틱스는 AI를 기본으로 통신과 신호처리, 비전 센서, 전기전자 제어, 역학 등이 모이는 산업”이라며 “독일, 일본과 함께 3대 제조업 강국이라는 한국의 하드웨어적 장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분야”라고 설명했다.박 교수는 딥러닝 기반 AI 비전 소프트웨어 기업 세이지를 2017년 창업했다.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에 검사장비를 납품하고 있다. 박 교수는 “AI를 공장에서 어떻게 최적화해야 이익이 나고 생산성을 높일지 기업들이 계속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며 “누구나 AI를 말하지만 AI를 제대로 쓰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했다. 오랜 시간 공들여 데이터를 전처리하고 AI 모델을 완성해도 실제 현장에 적용하면 며칠 뒤에는 크고 작은 오류가 생기고, 이를 보완하는 일도 결국 AI가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국내 주 52시간 근로 체제에선 이런 연속 업무를 할 연구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국제전기전자공학자협회(IEEE) 석학회원이자 IEEE 로보틱스 분야 회장을 지낸 박 교수는 일상 하나하나의 도메인(영역)마다 ‘챔피언’ 자리에 오르는 로봇 기업이 속속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닭을 제일 잘 튀기는 로봇, 딸기를 제일 잘 따는 로봇, 페트병 분리수거와 압축을 가장 잘하는 로봇 등이다. 박 교수는 “도메인별 로봇 스타트업을 선별해 육성해야 한다”며 “로봇은 한국이 반드시 리더십을 가져가야 할 분야”라고 강조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