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균 "생존법? 美서 AI두뇌 모아 韓 '몸통' 변화시키는게 최선"

차상균 서울대 빅데이터융합대학원 초대원장

AI시대는 '네오 팍스 아메리카나'
돈·사람·기업 모두 미국으로 몰려
AI 경쟁력, 中·日·대만에도 뒤처져
日은 손정의, 대만은 모리스창
테크 거물들이 기술 생태계 주도

'대개조'밖에 답이 없다
근본적인 건 '자유로운 창의 정신'
AI 교과서 만드는 것으론 턱없이 부족
인재 키워야 하는데 뭘 가르칠지 몰라

美·中 갈등서 생존기회 찾고
국적 가리지 말고 美서 인재 모아야
“‘네오(neo) 팍스 아메리카나.’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의 이름입니다.”

차상균 서울대 빅데이터융합대학원 초대원장(교수·사진)은 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인공지능(AI) 주권을 지킬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돈과 사람이 모두 미국으로 쏠리는데 한국이 미국의 AI 경쟁력을 따라잡을 수 있겠냐”는 반문이다. 그는 “기업, 금융, 대학 등 AI산업과 관련된 곳들이라면 미국에서 ‘두뇌’를 모으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에 있는 ‘몸통’을 변화시키는 게 최선의 방책”이라고 말했다.차 교수는 AI와 데이터베이스 융합 등에 관한 글로벌 권위자다. 2000년대 초반 스타트업을 창업해 ‘HANA’라는 실시간 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개발했다. 글로벌 기업용 솔루션 기업인 SAP가 HANA를 채택해 차 교수는 SAP에서 기업 경험을 쌓았다. 현재 그가 몰두하는 건 AI 인재 네트워크 구축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미국에 프리덤오브이노베이션벤처스라는 벤처캐피털을 창업했다. 미국 중국 일본 대만 등을 오가며 ‘디지털 노마드’를 자처하는 차 교수는 “미국은 고사하고 한국은 AI산업에서 중국 일본 대만보다도 몇 발짝 뒤에 있다”고 지적했다.

▷정말 일본이 한국보다 앞서 있나요?

“일본에는 손정의(소프트뱅크그룹 회장)라는 ‘아웃라이어’가 있잖아요. 일본 기업 문화에서 비주류였던 그가 2016년 비전펀드를 조성해 세계 첨단 기술에 꾸준히 투자했습니다. 지금은 AI와 반도체에 집중하고 있고요.”▷손 회장이 그 정도로 중요한가요?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다릅니다. 얼마 전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도 만났죠. 비전펀드를 통해 획득한 ‘레버리지의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대형 벤처캐피털과도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손 회장이에요.”

▷금융의 문제네요.“그렇습니다. 돈이 흐르게 해야 그 속에서 수많은 정보도 얻을 수 있는 겁니다. 챗GPT를 개발한 오픈AI가 지난해 상반기 임직원들에게 나눠 준 주식 보상액이 얼마인지 아세요? 자그마치 15억달러에요.”

▷인재가 몰릴 수밖에 없겠군요.

“오픈AI에 취업한 미국 스탠퍼드대 출신 엔지니어가 있어요. 연봉이 수백만달러입니다. 얼마 전에 만났는데 웃으면서 하는 얘기가 ‘코피 터지게 일해야 해 집을 실리콘밸리 교외에서 샌프란시스코 중심가로 옮긴다’고 하더군요.”▷중국은 어떤가요?

“챗GPT의 중국 버전인 키미 서비스를 제공하는 문샷AI 창업자가 1992년생입니다. 칭화대를 나와 미국 카네기멜런대(CMU)에서 박사를 마친 양즈린이 2023년 3월에 창업했는데 설립 1년 만에 알리바바, 텐센트 등이 투자해 회사 가치가 30억달러를 넘었어요.”

▷중국은 관제 금융 아닌가요?

“다른 산업은 그럴지 몰라도 적어도 AI 분야에선 민간 자본이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문샷AI 외에도 칭화대에서 창업한 주푸AI 등 중국의 수많은 스타트업이 미국의 견제를 뚫고 중국 자체 AI 기술을 개발하고 있어요.”

▷대만은 어떻던가요.

“TSMC가 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는 타이중에 최근 다녀왔어요. 자신감이 넘치더군요. 연평균 20%씩 성장을 예상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겠죠. AI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에요. AI산업과 관련한 전 세계 가장 최신 정보가 돌아다니는 곳이 대만입니다.”

▷왜 그런 거죠?

“모리스 창이 대만 정부 지원을 받아 TSMC를 창업하고 사업을 키워가면서 대만의 전기·전자 등 기업들이 다 같이 살 수 있도록 생태계를 구축했어요. 엔비디아가 TSMC를 통해서 AI 칩을 만드니 미국과 대만은 적어도 AI에 관한 한 하나의 생태계로 묶이고 있다고 봐야 해요.”

▷우리 상황은 어떻다고 보시나요.

“지난해 9월 국가인공지능위원회가 출범한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위원장이 대통령이에요. 사실상 위원회의 정상적인 활동이 멈춘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요?”

▷대기업은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요?

“각 기업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는 있겠지요. 하지만 삼성조차 내부 역량만 가지고 하려고 해요. 벤처에 투자도 하죠. 하지만 그 돈에도 꼬리표가 달려 있습니다.”

▷문제가 심각하군요.

“최근에 AI 3대 석학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앤드루 응 스탠퍼드대 교수를 불러 한국이 3대 AI 강국이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어요. 세계 무대에서 바라보는 한국 AI산업의 위상과는 괴리가 너무 커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대개조해야 합니다. 교육을 예로 들어볼까요? AI 교과서를 만드는 걸로는 안 됩니다. AI 인재를 키우려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저조차도 정확히 몰라요. 아무도 모를 겁니다. 중요한 건 자유로운 창의 정신을 키우는 거예요.”

▷너무 근본적인 얘기 같기도 한데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힘이 무엇인가요? 그건 자유로운 창의에요. 정부가 나서서 첨단산업을 키우는 방식은 중국에 도저히 안 됩니다. 중국이 절대 따라오지 못하는 게 바로 자유로운 창의 정신입니다.”

▷미국 모델을 따라야 한다는 얘기인가요?“똑같이 할 수는 없겠죠. 가진 역량과 자원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박 터지게 싸우면서 우리에게 기회가 생기고 있어요. 중국계 미국인 중 전도유망한 AI 전문가가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남아 있는 사례가 많아요. 국적을 가리지 말고 미국에서 AI 인재를 모아야 합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