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시장 냉각기…요즘 극장가는 '아는 맛'으로 버티기

최근 국내 극장가에 익숙한 영화들이 잇따라 걸리고 있다. 이렇다 할 대작들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소설원작 영화, 리메이크 및 리부트(영화의 기존 설정을 가지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영화 등 기존 IP를 활용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 분위기다. 아예 예전 영화를 재개봉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이 줄어들면서 제작자도, 관객도 안전한 길을 택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베스트셀러·시리즈물이 대세이달 22일 개봉하는 '언데드 다루는 법'은 스웨덴 작가 욘 A. 린드크비스트가 쓴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욘 A. 린드크비스트는 영화 '렛미인'(2008), '경계선'(2019) 두 작품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로 스웨덴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렛미인에서는 뱀파이어와 인간의 우정을, 경계선에서는 북유럽 신화 속 '트롤'을 현대 사회로 데려오며 초자연적 소재를 세련되게 풀어냈다.

'언데드 다루는 법'은 세상을 떠난 가족, 연인이 대규모 정전 이후 살아있는 시체로 되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일반적인 좀비물과 달리 죽음과 삶의 경계, 그 안에서의 심도깊은 질문을 던지는 휴먼 영화인 셈.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 ‘노르웨이의 오스카상’이 불리는 아만다상 시상식에서 4관왕을 수상하며 일찍부터 시네필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작가가 직접 각본에 참여해 원작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검은수녀들 스틸컷.
이달 24일 개봉하는 '검은 수녀들'은 '검은사제들'(2015)의 두 번째 이야기다. 검은 사제들은 당시 544만여 명의 관객수를 모으며 오컬트 영화 중 드물게 흥행한 사례다. 지난해 '파묘'가 한국 오컬트의 흥행을 이어간 만큼 검은 수녀들이 그 바톤을 이어갈 수 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해운대'(2009)의 권혁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배우 송혜교, 전여빈, 이진욱 등이 출연한다. 황영미 영화평론가는 "영화에서 핵심이 서사인데 잘 알려진 문학을 영화로 만들면 이미 보장된 서사에 연출적 시각만 덧붙이면 된다. 시리즈나 프리퀄도 마찬가지"라며 "감독 입장에서도 작업이 수월하고, 무엇보다도 관객들의 관심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어서 투자에 안정적인 포션을 획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청춘 멜로와 사운드 트랙의 결합으로 성공을 거둔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2008)이 한국판으로 28일 공개된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높은 완성도와 아련한 첫사랑 감성, 피아노 배틀 장면 등으로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6월 일본 리메이크에 이어 올해 한국에서 리메이크 된다. 국내판은 ‘덕혜옹주’의 각본을 맡은 서유민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도경수, 원진아, 신예은 등 20~30대 젊은 배우들이 출연해 첫사랑의 감성을 섬세하게 담아낼 예정이다.

'안전제일주의' 속 의외의 흥행도'익숙한 영화' 현상은 지난해부터 지속된 재개봉 영화 열풍과도 결을 같이한다. 지난 9월 재개봉한 음악영화 '비긴 어게인은' 관객수 20만 명을 넘으며 흥행했다. 뒤를 이어 '노트북'은 역시 비슷한 규모로 성공을 거뒀다. 최근에 재개봉한 '더 폴 : 디렉터스 컷'은 예술 영화임에도 입소문을 타 개봉 3주 만에 4만 관객을 모으며 작지만 의미있는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달만 해도 '렛미인', '도어즈' 등이 재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주요 영화관들도 '색계'(CGV),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롯데시네마) 등 명작을 재개봉하는 등 이에 가세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냉각된 영화 시장으로 인한 고육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영화관 관객수는 1억 2312명으로 2023년(1억 2513명)에 비해 소폭 줄어들었다. 개봉작과 상영편수 마찬가지로 소폭 하락세였다.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새로운 IP를 개발하려면 개발·홍보비가 많이 드는데 있던 작품을 하면 이 모든 비용이 대폭 감소된다"며 "시장이 불안하다보니 투자에 소극적이게 되면서 배급사들이 경쟁적으로 재개봉 판권을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