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심포니가 연주한 하얼빈 OST, 조영욱이 조율한 시대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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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의 조영욱 음악감독 인터뷰함경북도 산아산에 펼쳐지는 일본군과 독립군의 전투, 권총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쏴 죽이는 안중근…. 우민호 감독의 신작 '하얼빈'에는 익숙한 역사적 사건이 등장한다. 특별히 새로울게 없는 서사임에도 영화는 소리치거나 내달리지 않고 묵직하게 나아간다.
영화에 대한 대중과 평단의 반응을 종합해 보면 하얼빈은 정적인 작품이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격정으로 웅변하지 않고 옷깃을 여민 채 쉰 목소리로 굳게 다짐한다"라는 평을 남겼다. 이같은 영화적 분위기를 지탱하는 건 음악이다.지난 7일 온라인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공개된 하얼빈의 사운드 트랙은 'Sympathy', 'A Long Journey', 'Train to Harbin'를 비롯해 18개의 트랙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 작품의 음악을 맡은 이는 조영욱 음악감독. 그는 박찬욱 감독의 오랜 파트너이자 한국 영화음악의 대부다. 그는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하얼빈은 전반적인 템포가 느리고 다소 정적이라는 점을 감안해 음악은 반대로 오히려 늘어지지 않고 긴장감이 지속될 수 있도록 신경썼다"고 밝혔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는 안중근이 꽁꽁 언 두만강을 건너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 장면은 몽골 북부 홉스골 호수에서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초반부에는 눈보라치는 설산에서의 지옥같은 전투가 펼쳐지고 중반부에는 대륙을 횡당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이 눈을 사로잡는다. 조 감독은 이같은 영화의 다채로운 자연에 어우러지도록 클래식한 스타일로 곡을 작업했다고. "영화에는 원초적이고, 거대한, 그 자체만으로 드라마틱한 대자연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기계음은 지양하고 오케스트라의 어쿠스틱한 사운드로 작업했습니다."영화의 분위기는 정적이지만 서사적으로는 긴장과 대립이 지속된다. 독립군 내부의 이견으로 인물 간 갈등이 벌어지고, 밀정이 등장하면서 가까운 동지를 의심해야 한다. 후반부 안중근이 하얼빈 역에 내려 거사를 치룰 때는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다소 정적인 영화적 분위기 속에서 긴장감을 더하기 위해 조 감독이 택한 방식은 기타. 저음역대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기타의 선율이 어우러지면서 웅장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표현했다. "어떻게 긴장감을 더해야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오케스트라에 기타를 더해 인물의 심리와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섬세하게 담아내려고 했죠." 하얼빈의 사운드트랙은 최정상급 오케스트라 런덤심포니가 연주했다. "최고의 오케스트라라고 생각해 먼저 작업을 제안했고, 마침 스케줄이 잘 맞아서 함께 하게 됐어요. 작업에는 꽤 시간이 걸렸어요. 재작년 여름부터 작년 1월까지 준비해 그때쯤 레코딩을 할 수 있도록 했죠."조영욱 음악감독은 우 감독과 '내부자들'(2015) '마약왕'(2018) '남산의 부장들'(2020) 등 다수의 영화를 함께 해왔다. 우 감독과의 호흡에 대해 그는 "우민호 감독은 처음부터 어떤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않고 일단 믿고 맡긴 다음 완성된 후에 피드백을 주는 스타일"이라"내게 오롯이 맡기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조감독은 오는 3월 영화 '승부'를 비롯해 디즈니플러스 '나인퍼즐'의 막바지 작업 중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 없다'도 작업에 착수했다.
최다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