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와 산책하다 반 고흐의 그림 앞에…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대자연 속의 미술관 1부]

내부와 야외 모두 작품을 즐기는 곳
자연과 조화를 이룬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세계에서 고흐 작품이 두 번째로 많은 미술관
네덜란드 숲에 둘러싸인 '크뢸러 뮐러 뮤지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루이지애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이라는 수식어는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워야 붙을 수 있는 것인가, 궁금했다.덴마크 코펜하겐 시내에서 기차로 40여 분 거리에 있는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은 이 수식어가 아깝지 않았다. 공간 자체가 주는 감동과 자연 경관과의 조화, 그 소장품에 이르기까지 부족한 게 없었다, 심지어 레스토랑의 식사까지도. 아쉬운 게 있었다면 반나절이라는 짧은 시간뿐이었다.
사진. ⓒLouisiana Musesum of Modern Art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적어도 반나절, 넉넉하게는 하루를 잡고 다녀와야 하므로 접근성은 떨어진다. 훔레베크역에서 내려 15분, 여유 있게는 20분가량 걸어가야 한다는 것도 멈칫하게 하는 요소다. 그럼에도 루이지애나 미술관까지 걸어가는 길의 나무와 잔디, 햇살과 고즈넉한 주택들은 산책의 동반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

덴마크와 스웨덴을 가르는 외레순 해협을 내려다보는 언덕배기, 이곳에 자리한 루이지애나는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건물 입구부터 비밀의 공간 느낌이 물씬 난다. 티켓을 받고 입장하면 곧장 미술관 전체 지도와 기념품숍이 등장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생각보다 미술관이 작다’는 느낌이 들지만 고개를 돌려 통유리창을 바라보면 푸르른 잔디와 숲이 두 눈 가득 펼쳐진다.
사진. ⓒLouisiana Musesum of Modern Art
건물 내부부터 감상할 수도 있지만 창밖 풍경에 이끌려 야외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루이지애나를 떠올릴 때 모두가 1번으로 꼽는 조각 공원은 탁 트인 외레순 해협 바다를 발아래 두고 있다. 온통 초록색뿐인 풍경 속에서 관람객들이 잔디 위에 누워 풀 냄새와 바닷바람을 만끽하는 모습을 쉽사리 볼 수 있다.

리처드 세라, 헨리 무어, 호안 미로 등 대가들의 조각품들이 자리 잡은 공원 숲길을 거닐다 보면 과거와 현재, 자연과 건축물, 예술가와 나 사이를 이어주는 묘한 연결고리가 있다는 생각에 젖어 든다. 일상의 고민과 스트레스 따위는 저 바다에 던져버리게 되고, 그저 풀냄새와 새소리, 파도 소리와 조각작품이 주는 고요함에 빠져든다.
사진. ⓒLouisiana Musesum of Modern Art
이곳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또 다른 이유는 한 사람이 평생 열정을 쏟은 공간이라는 점이다. 미술 애호가였던 크누드 옌센(Knud W. Jensen)이 42세였던 1958년부터 1995년 은퇴할 때까지 37년의 세월 동안 온갖 정성을 쏟아부었다. 1870년대에 지은 오래된 빌라를 토대로 건축가들의 자문을 받아 미술관을 지으면서 그가 가장 중시한 것은 주변 자연과의 조화였다. 1958년 개관 이래 7번에 걸쳐 공간을 확장했고 전 세계에서 예술 작품을 수집해 왔다. 풍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자연에 스며드는 미술관, 관람객들이 온전히 작품과 자연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그리면서.루이지애나 미술관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작품 3,5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덴마크 작품들로 시작해 소장품은 전 세계로 확장됐다. 그림과 조각들로 꾸며진 내부 전시실, 전시실 사이의 복도, 복도 창밖의 잔디밭까지 모든 곳이 전시 공간이었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에는 다양한 현대 미술품들도 전시돼 있다. / 사진. ⓒ민지혜
그리고 대망의 ‘자코메티 홀’. ‘걷는 사람’ 시리즈로 유명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품들을 만날 수 있는 이곳은 입구인 2층에 들어서자마자 '헉' 하는 소리가 나온다. 마치 클로드 모네의 그림 같은 풍경이 배경으로 깔려있고,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한 공간에 커다란 ‘거미’ 조각품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유리창의 검은색 프레임이 일정한 간격으로 공간을 나눈 것조차 연작 같은 느낌이 든다. 1, 2층으로 나뉜 이곳에서 층마다 오래 머물며 창밖을 바라보는 관람객이 많은 것은 시야에 따라 밀려드는 고요함, 평온함의 색이 달라서일 테다.
[위] 루이지애나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거미> 조각품 / 사진. ⓒ민지혜 [아래] 자코메티 홀
현대미술관답게 유럽의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들도 여럿 전시하고 있었다. 건물들 사이를 오갈 때, 복도를 거닐 때 곳곳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수 있게 구성한 것도 배려심이 돋보였다. 내부에서 관람하다 보면 마치 작품같이 느껴지는 야외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솟구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막스 에른스트 작품 등이 야외 곳곳에 전시돼 있어 문을 열고 드나들게 된다.
Alex Da Corte의 <As Long As the Sun Last> 조형물 / 사진. ⓒLouisiana Musesum of Modern Art
저녁 시간이 되자 레스토랑은 이미 만석. 식사를 해결할 곳이 여기밖에 없어 그러려니 했지만, 플레이팅이 아름다운 메인 메뉴와 식전 빵과 크림, 커피를 시켜보니 맛이 훌륭했다. 창밖의 풍경은 덤. 검붉은 노을이 미술관 건물을 뒤덮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가 일렁이는 모습을 보자니 돌아가는 발걸음엔 아쉬움이 잔뜩 묻어났다. ‘평생 꼭 한 번 가봐야 할 미술관’이라는 수식어에 바로 수긍이 되는 순간이었다.

노루, 다람쥐 뛰어노는 네덜란드 숲속에 '크뢸러 뮐러'

숲길을 거닐며 새소리를 듣고, 다람쥐나 노루, 토끼가 오물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산책, 생각만 해도 힐링이다. 네덜란드 오뗄로 시에 있는 호게 벨루에 국립공원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넓은(55㎢) 자연보호 구역으로서 공원만으로도 이미 주민들에겐 유명하지만, 무엇보다 800여 점의 유명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크뢸러 뮐러 뮤지엄을 품고 있어 연간 50만 명 이상이 찾아오는 명소다.
오뗼로 국립공원 내에 있는 크뢸러 뮐러 미술관. 마크 디 수베로의 <K-Piece>(1972)가 있다. / 사진. ⓒ민지혜
미술 수집가였던 헬레네 크뢸러 뮐러가 1935년에 네덜란드 정부에 모든 수집품을 기증해 이 작품들로 1938년 개관한 미술관이 바로 크뢸러 뮐러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기차로 1시간 10분 거리의 아른헴 중앙역으로 간 뒤 105번 버스를 타고 오뗄로 로톤데 정류장까지 30여 분을 가야 호게 벨루에 국립공원이 나온다. 이 국립공원 입구에서 입장권을 끊은 뒤 무료로 탈 수 있는 흰색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크뢸러 뮐러 뮤지엄이 나오기 때문에 이동에만 왕복 네 시간은 걸린다.

체류시간이 짧은 관광객이 하루를 내서 다녀오기엔 부담스럽지만, 그럼에도 꼭 한 번 가봐야 할 미술관으로 추천하는 건 ‘숲속 미술관’이 주는 위로와 동·식물에 둘러싸인 산책길, 그 안에 보물처럼 감춰진 대가들의 작품이 보석처럼 빛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크뢸러뮐러 미술관의 조각 정원 파빌리온 / 사진. ©Kröller Müller Museum
오래 걸려 도착한 노력 덕분일까, 공원 입구에 다다르자 설렘이 몰려왔다. 흰색 자전거를 타고 숲속의 초원, 모래 언덕 등을 돌아다니다 보면, 망원경을 들고 동물을 관찰하는 가족 단위 방문객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 숲속에는 황조롱이, 흰등할미새, 숲울새 등 다양한 소리를 내는 새들과 다람쥐, 붉은 사슴, 멧돼지, 노루, 여우, 담비, 토끼, 양, 도롱뇽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고.

특히 빈센트 반 고흐의 팬이라면 ‘세계에서 고흐 작품이 두 번째로 많은 미술관’인 크뢸러 뮐러를 꼭 가봐야 한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뮤지엄이 가장 소장품이 많고, 그다음이 크뢸러 뮐러다. 밤의 카페 테라스, 감자 먹는 사람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노란 집, 해바라기, 밀밭과 까마귀, 밤하늘과 사이프러스 나무, 올리브 나무, 슬픔에 빠진 남자, 밤의 프로방스 시골길, 아를의 다리 등 유명한 그의 작품 100여 점이 여기 모여 있다.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반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1888), <밤의 프로방스 시골길>(1890), <아를의 랑글루아 다리>(1888) / 사진. ⓒ민지혜
또 폴 고갱, 폴 시냑, 카미유 피사로, 폴 세잔, 클로드 모네, 루카스 크라나흐, 피에트 몬드리안, 조르주 쇠라 등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 80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야외에 있는 장 뒤뷔페의 조각공원, 미술관 주변에 숨어 있는 조각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 장 뒤뷔페 <이메일 정원>(1974) / 사진. ©Kröller Müller Museum
프레덴스보르, 오뗄로=민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