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입부터 괴상한 코, 가면까지… 뮤지컬 '특수분장'의 세계
입력
수정
출중한 미모 아닌 흉측한 외모로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선 출중한 외모와 착한 마음씨,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기캐(사기를 치는 것처럼 너무 좋은 캐릭터)’를 등장시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지만, 뮤지컬에선 다르다. 눈 뜨고는 도저히 보기 힘든 흉측한 외모나 말이 통하지 않는 괴팍한 성격의 캐릭터가 오히려 관객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고, 거대한 팬덤을 몰고 다닌다.
주목받는 뮤지컬 속 독보적 캐릭터
특수분장 덕분에 현실감, 몰입감 상승
‘시라노’ 거대하고 못생긴 코 콤플렉스
어린시절 흉터로 고통받는 '웃는 남자'
오페라의 유령 '팬텀', 가면 통해 감정 표현
겉모습만 보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일 것 같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열등감, 수치심 등 여린 감정에 아파하는 보통의 인간 모습과 다르지 않아서다. 이런 반전 매력을 극대화하는 데엔 특수분장의 힘이 필수적이다. ‘시라노’ ‘웃는 남자’ ‘팬텀’…. 이색 캐릭터로 주목받는 뮤지컬 속 특수분장의 비밀을 들여다봤다.지난달 개막한 뮤지컬 ‘시라노’는 17세기 프랑스에서 용맹한 가스콘 부대를 이끈 영웅이자 뛰어난 작가이지만, 거대하고 괴상하게 생긴 코가 콤플렉스라 사랑하는 여인 앞에 당당히 설 수 없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줄거리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작품의 핵심 소재는 바로 주인공의 코다. 평균 길이는 6㎝ 정도로 제작되지만, 각 배우의 얼굴에 어울리도록 모두 ‘맞춤형’으로 제작되기에 하나의 코를 완성하는 데 보름가량이 소요된다. 고유의 피부색은 물론 배우 각각의 해석도 최대한 반영하기에 코끝의 모양, 콧대의 라인 등 형태가 천차만별이다.모양도 중요하지만 일단 한번 얼굴에 붙이면 공연이 진행되는 3시간 동안 배우의 땀, 속사포 같은 대사에도 버텨야 하기에 단단히 접착하는 것이 관건이다. 코 모형과 직접 맞닿는 피부 안쪽엔 실리콘 재질의 접착제를 바르고, 그 위 이음새를 프로세이드 같은 특수분장 전용 접착제를 이용해 한 번 더 마감한다. 코 모형은 3~4회 재사용이 가능하다. 총 100회 공연(프리뷰 포함)되는 이번 작품을 위해선 코 소품만 60개가 제작됐다.9일 막을 여는 뮤지컬 ‘웃는 남자’도 특수분장을 빼놓고선 말할 수 없는 작품이다.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어린 시절 인신매매단에 의해 납치돼 입이 찢어지고 귀족들의 조롱감이 된 주인공 그윈플렌의 비극적 삶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뮤지컬에서 기괴한 입은 그윈플렌의 상처이자 아픔, 인간의 추악한 민낯을 의미한다. 멀리서 보면 그저 배우의 뺨 위에 붉은색 입을 그려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흉터의 입체감을 생생하게 살려야 하는 만큼 공연마다 배우의 얼굴 위에 직접 실리콘 재질의 물질을 발라 조각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작업에만 40분가량 걸린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가장 많이 움직이는 입 위에 칠하는 분장이기에 고정력이 생명이다. 실리콘 물질의 흉터를 만들기 전과 후 배우의 하관에 접착제를 두 번 덮어주고, 당장이라도 피가 흐르는 듯한 벌건 색깔의 입술이 땀이나 침에 지워지지 않도록 특수분장용 스프레이를 뿌리면 완성이다.오는 5월 돌아오는 대형 뮤지컬 ‘팬텀’은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흉측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 주인공 팬텀이 공연 내내 쓰고 나오는 가면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 된 명작이다.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인 ‘오페라의 유령’에선 가면이 팬텀의 콤플렉스를 가리는 의미에서 주로 사용되지만, ‘팬텀’에선 가면이 캐릭터의 심경을 대변하는 도구로까지 쓰임이 확대되기에 한 배우당 총 6개의 가면이 대거 제작된다. 사랑, 슬픔, 분노 등 감정의 변화를 반영하기에 색깔부터 얼굴을 가리는 형태까지 전부 다르다.
또 배우가 무대 위에서 직접 가면을 바꿔 껴야 하는 장면이 더러 있어 피부에 접착하지 않고 머리 뒤쪽을 감싸는 형태의 와이어를 통해 쉽게 탈부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공연을 위해선 여분을 포함해 총 23~24개의 가면이 제작될 예정이다.
뮤지컬 ‘시라노’ ‘웃는 남자’ ‘팬텀’에 모두 참여한 이무일 특수분장 감독은 "특수분장은 작품 속 캐릭터에 현실감을 불어넣고, 청중의 몰입감을 높이는 데 필요한 매우 까다롭고도 섬세한 작업"이라며 "특히, 뮤지컬에선 화면이 아닌 사람의 눈을 통해 이미지가 직접 전달되는 만큼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