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교육열 아닌 성적열…천재 원하면 천재 기르는 교육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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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카이스트 AI대학원 초빙 석학 교수“천재를 원하면 천재를 기르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대답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인재를 길러야 합니다.”
미래는 시간이 열지 못해…인재가 열어줘
추격국가형 '평균 인재' 양성 이젠 한계
선도국가형 교육으로 시스템 싹 바꿔야
머스크 같은 창의 인재가 나오려면
넓고 높은 시선과 모험심 길러줘야
질문 하는 인재가 필요하다
공교육, 싼 것 빼곤 사교육에 모두 뒤처져
다양한 학교 있어야 목적과 교육 달라져
영재양성 프로그램 잘 돌아간다고 안봐
혁신 하지 않으면 '새로운 포식자'에 위태
4차 산업혁명으로 패러다임 깨지고 있어
선진국 될 절호의 찬스 왔는데 뭐하고 있나
최진석 KAIST AI대학원 초빙 석학교수(사진)는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는 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같은 인재가 나오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미래형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그가 2020년 설립한 전남 함평 새말새몸짓 기본학교에서 이뤄진 이번 인터뷰에서 최 교수는 “한국은 그동안 추격 국가형 교육을 했지만 이제는 선도 국가형 교육을 해야 한다”며 “탐험심과 모험심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는 절대 시간이 열어주지 않는다”며 “미래는 인재만 열 수 있다”고 강조했다.▷머스크 같은 인재 한 명이 세상을 바꾸고 엄청난 부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현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는 어떤 유형일까요.
“머무르는 시선이 다른 사람이죠. 시선이 높은 사람은 넓게 볼 수 있고 탐험심과 모험심이 있습니다. 예컨대 머스크는 자기 발걸음이 닿는 곳을 화성까지 생각합니다. 한국 교육은 아이들에게 이런 넓고 높은 시선과 모험심을 길러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가르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그간 평균적인 인재를 기르려 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평균적인 인재가 할 일이 있고, 머스크 같은 천재가 할 일이 있습니다. 천재를 원하면 천재를 기르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육을 하루빨리 바꿔야 합니다. 미래는 절대 시간이 열어주지 않습니다. 인재만 열 수 있습니다.”▷바꿀 게 한두 개는 아닐 텐데요. 그래도 가장 시급한 건 무얼까요.
“우선 학교 형태가 다양해야 합니다. 학교마다 목적과 교육 방법을 달리해 여러 인재를 양성해야 합니다. 동시에 영재를 발굴해서 길러내는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금도 영재원, 영재고등학교 등 영재 양성 프로그램은 있습니다.“목적대로 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당장 우리가 생각하는 영재가 어떤 학생인지에 대한 합의도 없습니다. 지금은 모난 데 없이 평균적인 영재를 키웁니다. 이런 분위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크고 굵은 사람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한국 교육의 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시나요.
“한계에 갇힌 상황입니다. 한국은 그동안 추격 국가형 교육을 했습니다. 추격 국가를 이루는 데까지는 효율적이었죠. 하지만 이제 우리는 추격 국가로서 정점에 달했고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선도 국가형 교육으로 바꿔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인지요.
“핵심은 대답보다 질문을 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입니다. 문명 세계 안에서 존재하는 물건, 제도, 생각은 모두 질문의 결과입니다. 대답의 결과로 나온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신에게만 있는 궁금증과 호기심을 밖으로 꺼낼 수 있어야 합니다.”
▷공교육의 위기라고 합니다.
“현재 한국 공교육과 사교육의 차이는 운영 주체가 정부인지, 민간인지뿐입니다. 가격이 싸다는 것 말고 공교육이 사교육보다 나은 점이 없습니다. 공교육이 사교육과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공교육이 어느 지경까지 추락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공교육은 어떤 차이를 가져야 하나요.
“한국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정하고, 거기에는 어떤 유형의 인재가 필요한지 판단한 후 그런 유형의 인재를 키우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공교육에서 창의성을 죽이는 교육을 하면서 이를 발휘하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한국은 그래도 교육열이 높습니다.
“한국은 교육열이 아니라 성적열, 성공열이 높습니다. 입신양명에 관심이 많지, 교육열은 오히려 낮습니다. 한국에서 발생하는 교육에 대한 모든 왜곡이 바로 거기에서 시작됩니다.”
▷교육열과 성공열은 어떻게 다른가요.
“교육이란 사람을 만드는 일입니다. 제대로 된 사람을 만들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이 ‘덕과 지식’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오직 지식 교육에만 빠져 있습니다.”
▷한국 사회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국 사회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라 해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에 와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 단계 넘어서려면 자신만의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평가도 많습니다.
“한계에 이르러 추락하는 나라에는 네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정치 갈등, 사회 갈등, 포퓰리즘, 부패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일대 교육 혁신이 필요합니다. 혁신하지 않으면 새로운 포식자에 의해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새로운 포식자는 누구인가요.
“동양에 등장한 1800년대 중후반 제국주의, 조선에 대한 일본 같은 침략국, 4차 산업혁명 같은 새로운 문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새로운 문명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면 나라의 존망이 위태롭게 되는 건 이치상 당연합니다.”
▷지역, 세대, 남녀, 계층 등 갈등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갈등은 그 구조보다 높은 수준에서 바라보면 많이 줄어듭니다. 지금 우리는 그 시선을 장착하는 일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다들 자기가 하는 생각, 관점이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갈등이 증폭되는 것입니다. 이는 한국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방증합니다.”
▷덕이란 무엇인가요.
“덕은 내가 멈춰 서지 않고 진보, 진화하고 싶어하는 힘입니다. 단순히 도덕적 덕목이 아니라 살아 있는 주체의 힘이라는 뜻입니다.”
▷덕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질문을 통해 우리는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건너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힘이 필요하죠. 질문을 하지 못하는 것은 창의적이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선도 국가로 갈 수 없고 추격 국가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지금 한국에 가능성이 남아 있을까요.
“시선의 높이를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아르헨티나, 필리핀 같은 나라가 중진국 함정에 빠져 추락한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 운이 좋은가요.
“문명의 패러다임이 깨지지 않으면 선도국이 후진국으로 추락하거나, 후진국이 선도국으로 올라서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으로 패러다임 자체가 깨지고 있습니다. 후진국이 선도국이 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함평=강영연 기자
▶ 최진석 교수는 누구인가최진석 KAIST AI대학원 초빙석학교수는 전남 신안 작은 섬 장병도에서 태어나 함평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서강대 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마치고 베이징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강대 철학과 교수로 일했다. ‘21세기 융복합 인재 양성소’를 표방한 건명원의 초대 원장을 지냈다. 지금은 고향 함평에 본인이 설립한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으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최 교수는 개개인이 사유의 시선을 높여 한국이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행동하는 철학자’로 불린다. 그는 우리가 처한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일이 생각의 시선을 높이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인문학적, 철학적, 문화적, 예술적 시선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이 선진국 수준의 사유를 하지 않으면 아무리 경제가 발전해도 추격자 이상으로 성장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