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생태계는 침체된 유럽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긱스]

이은서의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 다이어리

2024년 유럽 스타트업 결산, 2025년 전망
지난 3년간은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의 여파로 전 세계 인플레이션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유럽은 주변국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비용 상승, 해상 운송 비용을 상승시키며 직격탄을 맞았다. 높은 물가와 지정학적 불확실성으로 가계 소비는 위축됐고, 투자 업계도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는 등 전반적으로 침체한 분위기였다. 2024년 하반기에 들어서 경기는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각국 정부는 지속적으로 물가 안정을 위한 정책을 지속할 예정이다.

2024년 유럽의 이런 경제 상황은 스타트업계에도 다채로운 변화와 도전 과제를 안긴 해였다. 2024년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를 결산해보고, 2025년 전망을 살펴보자.Keyword 1: 유명 스타트업의 파산 위기
지난 11월 유럽 최대의 배터리 스타트업인 ‘노스볼트(Northvolt)’가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노스볼트는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파나소닉, CATL 등 한·중·일 배터리 기업들의 강세에 맞서는 유럽 배터리 부문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2016년 설립되어 폭스바겐, BMW, 골드만삭스, 블랙록, 독일 및 캐나다 정부 등으로부터 총 150억 달러(약 22조 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유럽 내 배터리 공급망 구축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배터리 품질 문제로 BMW가 약 20억 달러(약 2조 8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해지했고, 숙련 인력 부족,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스웨덴의 공장 확장이 중단되고 건설 자회사는 파산했다.
볼로콥터(위), 릴리움(아래)의 파산 신청으로 eVOLT업계가 들썩였다. 사진=WELT
독일의 에어택시 스타트업 릴리움(Lilium)는 지난 10월 28일 파산 절차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2015년 설립되어 수직 이착륙(VTOL)이 가능한 소형 전기 항공기 개발에 주력했고, 회사 설립 후 지금까지 약 15억 달러(약 2조 2500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파산 절차가 진행되면서 나스닥 상장 폐지가 됐고, 12월 20일에는 직원 약 1000명을 해고했다. 그러나 극적으로 12월 24일 릴리움 투자사 컨소시엄인 모바일 업리프트 코퍼레이션(Mobile Uplift Corporation)이 릴리움의 운영 자산을 매수하고, 해고된 직원들을 재고용할 계획이다.

릴리움과 함께 에어택시 부문의 쌍두마차였던 볼로콥터(Volocopter)도 지난 12월 30일에 파산 절차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11월부터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발표가 난 터라 예견된 절차였지만, VTOL 분야의 거대 스타트업인 릴리움과 볼로콥터의 연이은 파산 절차 돌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볼로콥터는 파산신청에도 사업은 계속 진행하고, 파산 수당을 통해 직원의 급여를 주면서 고용도 계속 유지하면서 새로운 투자자를 찾을 예정이다.Keyword 2: 유럽 3대 테크 허브 영국, 프랑스 독일의 굳건한 입지
2024년에도 유럽의 상위 3대 테크 허브인 영국, 프랑스, 독일은 여전히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를 주도했다. 스타트업 전문 매체인 시프티드(Sifted)에 따르면 유럽 스타트업 연평균 성장률(CAGR)을 기반으로 한 250개의 스타트업 목록 이 세 나라 출신의 '스타트업이 상위 20'의 20개의 목록에서 15개의 자리를 차지하며 그 영향력을 증명했다. 반면, 스위스, 오스트리아, 폴란드 등의 중부 유럽과 베네룩스 지역의 성과는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예를 들어, 베네룩스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스타트업인 오픈 업(OpenUp, 암스테르담, 심리 상담사 매칭 플랫폼) 은 46위에 그쳤으며, 스위스 핀테크 스타트업 요코이(Yokoy)는 48위에 머물렀다.
독일에서는 베를린이 뮌헨에 밀리며, 상위 50위 내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점이 흥미롭다. 더욱 놀라운 점은 250위 내 베를린 기반 스타트업의 수가 스톡홀름보다 적었다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 베를린’이라는 모토가 무색하게, 치솟는 임대료, 높아진 인건비 등으로 위축한 경제 상황과 더불어 독일에서 투자사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베를린의 상황을 다시 한번 면밀히 들여다봐야 할 대목이다.
독일은 지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매우 골고루 성장하고 있다. 사진=독일스타트업협회
다만 베를린이 위축되고 있는 것과 대조로 독일 전체 스타트업 생태계를 살펴보았을 때는 균형 있는 발전을 보인다는 점이 특징이다.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쾰른, 뒤셀도르프와 같은 독일의 도시들이 랭킹에 이름을 올리며 독일의 지역창업생태계가 매우 고른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Keyword 3: 다시 활력을 되찾고 있는 핀테크
핀테크는 유럽 테크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 중 하나다. 2023년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였지만 2024년 연평균 성장률 기준 상위 10위 중 4개의 기업이 핀테크 기업일 정도로 활력을 되찾은 모습을 보여줬다. 시프티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시드 펀딩을 받은 핀테크 스타트업 중 17%가 6라운드 이상의 펀딩에 성공했으며 이는 유럽 내 모든 산업군 중 최고 비율이다.2025년에는 핀테크의 대규모 인수·합병(M&A) 거래 가능성이 주목된다. 2024년에도 작은 거래 등이 있었지만 레볼루트(Revolut)와 같은 네오뱅크의 성장으로 큰 규모의 M&A 거래를 기대해 볼 만하다. 올 초에 보다 큰 거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스웨덴 BNPL 스타트업 클라르나(Klarna)가 상반기 미국에서 IPO를 진행할 예정이어서 유럽 핀테크 업계의 기대감이 한층 커지고 있다.

Keyword 4: B2C 부문의 부상
유럽에서 투자자에게 소비자 대상(B2C) 기술 기업들은 한동안 ‘믿고 걸러야 할’ 부문으로 여겨졌다. 위험 부담이 크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던 근 5년간의 B2C 부문 스타트업들이 상당히 투자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2024년 연평균 성장률 기준 상위 20위 중 6개의 자리를 소비자 테크 스타트업이 차지하며 모든 산업군 중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오히려 경기 침체로 인해 경쟁력이 없는 B2C 기업들이 도태되고 제품과 기술이 훌륭한 소비자 테크 기업만 살아남아 경쟁이 줄어든 시장에서 더 큰 성장 가능성을 갖게 됐다.

따라서 2025년에는 유럽 최초의 '슈퍼 앱' 탄생 가능성도 주목된다. 핀테크 기업 레볼루트(Revolut), 유럽의 우버라고 불리는 볼트(Bolt), 음식 배달 앱 볼트 (Wolt)와 같은 기업들이 기존에 금융, 물류, 전자상거래 등 분야를 넘나들며 다양한 서비스를 통합하면서 슈퍼 앱이 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Keyword 5: AI 열풍, 실제로는 존재감 미약
2024년은 그야말로 ‘AI 열풍’ 이 휩쓸고 지나갔다. 많은 기업이 'AI 기반' 또는 'AI 지원' 제품을 출시하며 시장을 주도했고 투자자도 AI 기업에 많은 투자를 진행했다. 그러나 2024년 연평균 성장률 기반으로 본 유럽의 250대 스타트업 랭킹에서 상위 50위 안에 든 AI 스타트업은 런던 출신의 V7이 유일했다. V7은 업무 자동화를 위한 도구인 'V7 Go'를 출시하며 주목받았다. 그 밖에 134위에 오른 런던의 클레오(Cleo)가 있다. 이 스타트업은 재무 관리를 돕는 AI 비서 솔루션을 제공한다. 2016년 런던에서 설립해 현재까지 1억 40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유럽의 양자 컴퓨팅 스타트업은 2025년에도 기록적인 자금 조달을 이어갈 전망이다. 2024년 양자 컴퓨팅 스타트업들은 전 세계적으로 24억 달러를 조달했으며 유럽에서는 6억 6900만 달러를 조달했다. 이러한 투자 열풍은 기술 개발과 정부 지원 증가에 힘입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클레오는 연간 반복 매출(ARR) 1억 달러를 초과하며 빠른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사용자와 소통하며 자산을 재미있게 관리할 수 있는 도구로 자리 잡으며 젊은 세대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보인다. 현재 전 세계 1500만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고 이 중 60만명이 유료 서비스를 이용 중이다.
영국과 미국의 Gen Z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클레오 앱, 사진=Cleo
Keyword 6: 딥테크, 유럽의 가능성과 한계
딥테크 분야는 여전히 유럽에서 성장 잠재력을 시험받고 있는 영역이다. 2024년 연간 성장률 기반 상위 250위 스타트업 목록에 딥테크 스타트업이 단 11개만 있다는 것이 딥테크 분야가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중 2개만 상위 50위권 안에 들었다. 딥테크 기업은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보다 개발 속도와 수익화가 느리기 때문에 크게 놀랍지 않은 결과다.

딥테크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유럽은 늘 미국과 중국에 비해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에 비해 부족한 자본, 중국에 비해 열악한 공급망은 늘 얘기된 주제다. 이를 극복해보기 위해 유럽연합(EU) 차원에서 많은 지원이 있어 왔고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유럽 딥테크 스타트업에만 544억 달러(약 70조 원)를 조달했다. 하지만 이는 같은 기간 미국의 1738억 달러(약 225조 원)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앞서 기술한 것처럼 2024년에는 노스볼트(배터리), 릴리움(플라잉 택시), 어라이벌(Arrival, 전기 밴) 등 여러 딥테크 기업들이 파산하거나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유럽의 딥테크 생태계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 2024년의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는 도전과 가능성, 그리고 혁신이 공존한 한 해였다. 2025년에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각국의 정책 변화와 기술 발전이 유럽 스타트업의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은서 123 팩토리 대표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에코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123 팩토리의 대표다. 독일 베를린에 기반을 두고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스타트업, 글로벌 기업, 투자자, 엑셀러레이터, 인큐베이터, 글로벌기업, 정부 기관 등 다양한 플레이어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