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위치 1㎝까지 챙긴 두 '금손'…비엔나1900展 10만 관객 줄세웠다

인터뷰
양승미 학예연구사
홍예나 디자이너

비행기 13시간 오스트리아 왕복
빈 분리파 예술가들 연구 몰두

'한국 관객 맞춤형'으로 설계
실레 드로잉 전시된 원형공간
개막 전날까지 밤새워 디자인
배경 무늬·글씨체까지 직접제작
1900년대 빈 밤거리 느꼈으면
양승미 학예연구사(왼쪽)와 홍예나 디자이너가 리하르트 게르스틀의 대표작 ‘반신 누드의 자화상’을 설명하고 있다.
10만 명.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를 찾은 관람객 수(9일 기준)다. 지난해 11월 30일 개막 이후 41일 만의 10만 관객 돌파로, 하루평균 2400여 명을 불러 모으며 매일 전시장을 꽉 채운 결과다. 관람 만족도도 최고 수준이다. 포털사이트 전시 평점은 4.46점으로 지금 열리고 있는 비슷한 규모의 다른 거장전(3.64점)보다 20% 이상 높다. 레오폴트미술관에서 가져온 최고 수준의 걸작들, 탁월한 전시 구성과 스토리텔링, 관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낳은 차이다.

포털사이트에는 “작은 드로잉마저도 설명 글을 빠짐없이 적었다는 점에서 감명받았다. 엄청난 텍스트 양에서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의 눈물을 함께 마시는 듯했다”(비비드클리어), “작품 수준이야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꼼꼼한 도깨비) 등의 후기가 쏟아졌다.

화려한 성과 뒤에는 지난 1년간 쉬지 않고 전시를 준비한 수많은 사람의 노고가 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전시 준비를 총괄한 양승미 학예연구사와 전시 디자인을 맡은 홍예나 디자이너. 이들은 비행기로 열세 시간 거리인 오스트리아를 오가며 전시 주인공인 빈 분리파 화가들을 철저히 조사했고, 개막 직전에는 거의 매일 밤을 새우며 작품 위치를 마지막 1㎝까지 완벽하게 조율했다. 두 사람을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서 만나 ‘올겨울 최고 전시’를 만든 막전막후를 들었다.

개막 전날까지 ‘전쟁 같은 전시 준비’

이번 전시에 나온 레오폴트미술관 소장품은 191점. 에곤 실레의 대표작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등 미술관을 대표하는 걸작이 다수 포함돼 있다. ‘자식 같은’ 귀한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인 만큼 최고 전시를 만들겠다는 레오폴트미술관의 열정은 대단했다. 양 학예사는 “올해 초 한스 페터 비플링거 관장이 전시 협의를 위해 방한했을 때 전시 도면을 직접 그려왔다”며 “막스 오펜하이머의 작품을 오스카 코코슈카와 함께 두자는 아이디어도 비플링거 관장이 냈다”고 말했다.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 관람객이 10만 명을 넘어섰다. 전시를 찾은 시민들이 오스카 코코슈카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레오폴트미술관이 가져온 전시 계획은 대폭 수정됐다. 한국 관객이 아니라 자국의 역사와 출신 화가들을 잘 알고 있는 오스트리아 관객 눈높이에 맞춘 구성이었기 때문이다. 양 학예사는 “애초 계획은 화가 한 명 한 명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짜여 있었다”며 “한국인이 당시 빈의 시대상과 분위기를 낯설지 않게 느낄 수 있도록 ‘한국 맞춤형’ 구성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고 했다.가장 작업하기 까다로웠던 곳을 묻자 양 학예사와 홍 디자이너는 실레의 드로잉이 전시된 마지막 부분의 원형 공간을 꼽았다. 애초 두 사람의 계획은 실레의 드로잉 작품을 두 줄로 배치하는 것이었다. 홍 디자이너는 “드로잉 수량이 워낙 많은 데다 한국 관람객이 드로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점을 감안했다”며 “하지만 레오폴트미술관 측이 ‘실레의 드로잉은 그 자체로 위대한 걸작들인데 어떻게 이렇게 홀대할 수 있느냐’고 강력하게 주장해 작품 하나하나를 집중적으로 볼 수 있도록 완전히 새롭게 공간을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개막 전날 밤까지 새워 가며 전시 구성과 디자인의 디테일을 철저히 챙긴 덕분에 관람객의 만족도는 최고 수준이다. 비플링거 관장도 전시장을 둘러본 후 엄지를 세워보이며 만족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실레의 드로잉 전시장은 관람객이 가장 오래 머무르는 공간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비엔나 총체 예술을 느껴보세요

양 학예사와 홍 디자이너의 목표는 관람객이 1900년대 빈 예술계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이를 위해 전시 초입인 1부 공간은 1900년 빈의 밤거리처럼 꾸몄다. 당시 빈의 골목길 곳곳에 붙어 있던 빈 분리파의 포스터가 행인들의 시선을 잡아끈 것처럼, 관람객은 다소 어두운 전시장을 거닐며 조명을 받아 빛나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초상화 작품들과 포스터를 보게 된다. 양 학예사는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빈 분리파의 ‘총체예술’ 개념을 직접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전시 3부의 공예품 전시 공간은 홍 디자이너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곳 중 하나다. 가구 뒤편 배경에 새긴 무늬, 글씨체 등을 모두 새롭게 제작해 배치했다. 빈에 있는 분리파 전시관의 벽화 ‘베토벤 프리즈’를 소개하는 영상은 가로세로 비율까지 실제 작품과 똑같이 맞췄다.

전시장 곳곳에 숨은 세세한 배려에서 국립중앙박물관다운 국내 최고 수준의 전시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주제의 전시장 안에서도 전시장 벽 색깔을 미묘하게 달리 한 게 대표적인 예다. 홍 디자이너는 “클림트의 ‘수풀 속의 여인’, 콜로만 모저의 ‘메리골드’ 등 좀 더 중요한 작품이 걸린 벽은 색을 조금 다르게 칠했다”며 “관람객이 무의식적으로 이들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이번 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실레의 그림을 꼽았다. 홍 디자이너는 어두운 강변을 따라 색색의 건물들이 그려진 ‘작은 마을 3’. 양 학예사의 선택은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 나무’(겨울나무)였다. 양 학예사는 “가을에 심은 나무가 겨울을 맞아 혹독한 시련을 겪는 상황을 묘사한 그림”이라며 “그럼에도 나뭇가지는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요동치는 생명체처럼 역동적인 힘과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전시는 3월 3일까지. 수요일, 토요일 오후 9시까지 열리는 야간개장 시간에 방문하면 좀 더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성수영/안시욱 기자/사진=이솔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