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깜짝투자' 발표한 정의선 "기업역할은 국가 돕는 것"

현대차그룹, 올해 국내서만 24조 '역대급 투자'

정 회장, 국내투자로 내수진작
자동차 R&D·공장건설 확대
신재생에너지 등 신사업 발굴

보유 달러 풀어 환율안정 기여
美제철소 등 '트럼프 2기' 대응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현대자동차그룹은 그동안 3월말에 3년 단위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작년에는 3월27일에 내놨다. 2026년까지 국내에 68조원을 투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올해는 달랐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올해 투자계획만 따로 때어내 발표한 것. 투자금액도 작년보다 19%나 높게 잡았다.

현대차그룹이 국내 투자 발표 시점이나 방식, 내용을 바꾼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많은 기업들이 올해 경영여건이 나쁘다는 이유로 ‘축소경영’에 나선 탓에 안그래도 쪼그라든 내수 경기가 한층 더 위축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내수 경기가 방향을 트는 데 현대차그룹이 앞장서 도움이 되겠다는 의미다.

○“국내 경제에 자신감 넣어야”

현대차그룹의 이례적인 국내 투자계획 발표를 이끈 건 정의선 회장이다. 정 회장은 작년말 사장단 회의에서 “원·달러 환율 상승과 정치 불안으로 내수 경기가 위축된데다 주요 산업 업황도 부진한 상황”이라며 “현대차그룹이 국가 경제를 위해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 지 점검해달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전 계열사가 올해 투자계획을 재검토하고 투자시점을 가능한 앞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발표한 주요 투자 계획이 산업 활력 제고와 내수 진작에 포커스가 맞춰진 이유다. 대표적인 분야가 연구개발(R&D)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와 수소차,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등 미래 모빌리티 연구 등에 지난해보다 2조원 가까이 늘어난 11조5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생산시설 확충 등 경상투자에도 1조원 안팎 늘어난 12조원을 배정했다. 울산에 전기차 전용공장과 하이퍼캐스팅(차체를 통째로 제조하는 공법) 공장을 짓고, 경기 화성에 PBV(목적기반차량) 전용 공장을 짓는 계획이 담겼다. 산업계 관계자는 “R&D와 공장 건설 투자가 늘어나면 유관 산업이 활성화되는 등 낙수효과가 생긴다”고 했다.분야별로는 현대차와 기아가 16조3000억원을 투자하고, 나머지 부품·철강·건설·금융·물류·방산 계열이 8조원을 쓴다. 철강 분야는 액화천연가스(LNG) 자가 발전소 건설, 친환경 소화설비 신설 등을 진행하고, 건설 분야는 수전해 수소 생산 실증사업, 소형모듈원전(SMR), 신재생 에너지 등 신사업 발굴을 추진한다. 금융 부문은 IT 시스템 및 인프라 개선을, 물류 부문은 친환경 자동차 용선 확대 등을 추진한다.

○환율 안정·트럼프 대응도

산업계에선 ”현대차그룹이 재계의 리더 역할을 맡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 배터리 등 다른 그룹들의 주력 산업이 부진한 반면 현대차그룹은 최근 2년간 사상 최대 실적을 낸 덕분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한국 주력산업 가운데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는 건 자동차 뿐”이라며 “현대차그룹이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외국인 CEO(최고경영자)를 임명하는 등 기업문화를 바꾸는 등 재계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말 원·달러 환율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던 지난달 27일,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외환시장에 내놓으면서 환율 안정에 도움을 준 것도 현대차의 위상을 높여준 사례로 꼽힌다. 당시 1달러당 1486원까지 치솟던 환율은 현대차,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등이 11억달러를 외환시장에 내놓은 뒤 하락 반전했다. 이날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의 매도 규모는 이날 거래된 전체 달러 거래량(83억달러)의 13%가 넘었다.현대제철이 미국에 제철소 건립을 검토한 것도 ‘트럼프 2.0 시대’ 출범을 앞두고 대한민국이 건네는 선물을 현대차그룹이 마련해준 측면이 있다고 산업계는 설명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가장 원하는 게 해외기업의 대규모 미국 투자란 이유에서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