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부터 일자리 지켜냈다"…美동부 항만노조의 승리

사진=REUTERS
미국 동부 항만 노동자들이 자동화 기술로 인한 인력 감축을 막는 노사합의에 극적 타결했다. 일자리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인공지능(AI) 기술을 산업 현장에 도입하는 것을 사실상 방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대서양과 걸프 해안의 항만 노조에 가입한 미국 부두 노동자들은 고용주 측으로부터 향후 6년간 약 62%의 임금 인상안과 자동화 기술 사용에 의한 고용 안전 장치를 보장받는 노사합의를 이뤘다. 이로써 기존 39달러였던 미 동부 항만 노조원들의 시간당 임금은 63달러로 오르게 된다.임금 인상 부분은 작년 10월 동부 항만 노조가 47년 만에 첫 대규모 파업을 벌였을 당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중재로 3일 만에 잠정 합의를 이뤘던 사항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번에 새롭게 타결을 이룬 부분은 AI 도입에 의한 고용 안전장치다. 지난해 첫 파업에서 임금 인상안에서 잠정 합의를 본 이후 노사는 AI 도입 문제에 초점을 맞춰 오는 15일을 마감 시한으로 협상을 벌여왔다.

새 협약에 따르면 동부 항구에서 여러 대의 기계를 한 명의 부두 노동자가 동시에 관리하는 반자율 크레인 사용은 계속 허용된다. 하지만 새로운 반자율 장비를 추가하는 회사는 추가된 크레인 한 대당 한 명의 부두 노동자를 고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반자율 크레인 116대를 운영하는 버지니아 항구의 경우 향후 몇 년에 걸쳐 반자율 크레인 36대를 새로 도입할 계획인데, 36대마다 한 명의 부두 노동자를 추가로 채용해야 한다.

부두 노동자의 일자리 보호는 국제항만노동자협회(ILA)의 주된 관심사였다. 이번 합의로 인해 자동화 관련 새 기술을 도입하려는 해운회사들의 비용 부담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업계 관계자들도 "꽤 의미 있는 성과"라며 이를 반기는 분위기다. 항만 운영 기술의 업그레이드를 추진하는 해운업계도 자동화 기술 도입 조건을 명확히 규정할 것을 요구해왔기 때문이다.합의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고용주가 신기술을 도입하고자 할 때 기존 절차를 세분화하고 더 명확한 시간표와 안전장치를 추가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인력 감축 없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자동화 기술을 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사 간에 '윈윈' 합의가 됐다는 분석이다. 다른 항만 노조의 관할 아래 있는 미 서부 해안의 항구 몇 곳은 이미 완전 자동화된 크레인과 차량을 사용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타결로 정치적 압박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해 대선 기간 내내 부두 노동자의 대폭적인 임금 인상을 지지하고, 이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AI 기술 사용에 반대했었다. WSJ는 "수에즈 운하 등지의 물류 차질과 트럼프 당선인의 수입품 관세 인상 공약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미국 소매업체, 제조업체들이 이번 극적 합의 덕분에 한시름 놓게 됐다"고 전했다.

이날 금융권에서는 AI가 인간의 업무를 잠식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산하 연구기관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 보고서를 인용해 "전 세계 은행의 최고 정보·기술 책임자들은 평균적으로 인력의 3%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고 보도했다. 응답자 93명 가운데 약 4분의 1은 5~10% 감축 가능성을 점쳤다.이에 따라 전 세계 은행들이 향후 3~5년 안에 최대 20만 개의 일자리를 줄일 것이란 관측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토마시 노에첼 BI 선임 분석가는 "(고객을 직접 상대하지 않는) 백 오피스와 미들 오피스, 운영 부문이 가장 큰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작업이 포함된 모든 직업은 위험에 처해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조사 응답자 10명 중 8명은 생성형 AI가 향후 3~5년 안에 은행의 생산성과 수익 창출을 최소 5% 증가시킬 것으로 봤다. 오는 2027년에는 AI로 생산성이 높아져 은행들의 세전 이익이 12~17% 증가해 순이익 합계가 최대 1800억 달러(약 262조원)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