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아닌 것으로부터 시를 찾아내는 시인, 윤지양

2017년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
두번째 시집 발간
일상에서 시를 찾아내는 '비시각각' 프로젝트로 주목
ⓒ곽예인
ⓒ곽예인
"일상의 실마리를 포착해 시적인 상황으로 확장하는 능력이 탁월한 시인"
2017년 일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윤지양(33)은 '시가 아닌 것'으로부터 시를 찾아내는 데 탁월한 시인이다. 간판이나 광고지 등 시 아닌 것에서 시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비시각각'(非詩刻刻) 프로젝트는 그의 시작 경향의 일부다. 한 웹진에 연재되며 큰 화제를 모은 이 프로젝트는 독자로 하여금 비시(非詩)에서 자발적으로 시를 읽어내도록 했고, 이를 통해 비시와 시의 위계를 허물었다. 윤지양의 시는 독자를 통해 완성된다. 동시에 독자는 그의 시를 통해 시의 잠재성을 감지하는 눈을 갖게 된다.
윤지양의 시적 실험은 첫 시집 <스키드>(2021)를 통해 성공적으로 구현됐고, 최근 발간한 두번째 시집 <기대 없는 토요일>에서 한층 날카롭게 현실과 조응하고 있다. 이 시집은 제4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이기도 하다.
이번 시집에서 비시는 포스기 화면, 영어로 나눈 메신저 대화 등 형식을 넘어서 '이것은 시가 아니다'라는 자기부정의 서술까지 포함한다. 시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화자들은 독자를 혼돈과 의문에 빠뜨리면서도, 삶에 대한 애정으로 유리처럼 반짝인다. 최근 시 창작의 전반적인 경향인 내면으로의 침잠에서 벗어나, 윤지양의 시는 외부 세계와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시인 윤지양을 서울 신사동 민음사 사옥에서 만나 시집과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솔 기자
이솔 기자
낮에는 개발자, 밤에는 시인▷정보기술(IT)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했다고 들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시를 썼나.
"2017년 신춘문예로 등단했지만 생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겠다 싶어 코딩 교육을 받고 취직했다. 낮에는 웹사이트와 앱을 만들고, 퇴근 후 저녁엔 시를 썼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나 고민이 있을 때, 뭔가를 '내보내야 겠다'는 욕망이 일 때 펜을 들었다. 그렇게 3년 동안 쓴 시들이 이번 시집에 담겨 있다."

▷개발자와 시인, 정반대 성격의 두 직업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온전히 나 혼자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점이 어려웠다. 퇴근 후 곧바로 '시인 모드'로 전환되긴 어려우니까. 개발자가 되기 전에도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한 적이 있지만, 그땐 항상 시 쓰기를 중심에 놓고 생활했다. 이번엔 삶 쪽으로 조금 더 무게중심을 옮겼고… 그러다 보니 첫번째 시집과 조금 다른 스타일이 나온 듯하다."

▷시집에 실린 ‘Nguyễn Thế Hoàng’이란 시가 눈길을 끌었다.
"회사에서 실제로 베트남 외주 개발자와 메신저로 나눈 대화를 그대로 옮겨 쓴 시다. 업무 중에 잠깐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문득 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회사 사람과 'API 호출을 다른 걸로 해주세요'란 업무 대화를 나누다가, '내 원래 꿈은 사진가였어'라고 고백하는 건 일종의 문학에 가깝지 않나."▷일상에서 영감을 받아 쓴 것 같은 시가 여러 편 보였다.
"평범한 일상에서 마음에 남는 장면이나 단어에서 시가 나온다. '후지라멘왕'은 라멘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쓴 시다. 바쁘게 일하는 순간을 어떤 형식의 시로 표현하면 좋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테이블 번호와 주문 내용이 적혀 있는 식당 포스기 화면을 가져와봤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도 연주회에 갔다가 쓴 시다."

일상의 순간을 시로 표현

▷'시가 아닌 것'에서 시를 찾는 작업을 좋아하는 듯하다.
"그렇다. 인스타그램에서 '비시각각'(非詩刻刻) 프로젝트를 계속 올리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비시(非詩) 텍스트를 통해 '시란 무엇인가'를 찾는 프로젝트다. 길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광고, 낙서, 경고문 등을 찍어 올리는데, 프레임에 담기는 순간 그것들은 시가 된다. 하필 그곳에 시선이 더 머문 이유가 있지 않겠나. 이를테면 '멈춤'이란 경고문은 마음이 어딘가로 내달리고 있는 누군가에겐 위로로 해석될 수 있고, 그게 바로 시라고 생각한다. 시란, 시라고 우기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다."
이솔 기자
▷이번 시집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시를 하나 꼽는다면.
"'조지에게'를 가장 좋아한다. 사랑을 표현하고 싶을 때 직접적으로 '사랑'이란 단어를 쓰면 안된다는 게 시의 불문율 중 하나다. 그걸 깨고 싶었다. 마음껏 '사랑해'라고 말하며 사랑을 썼다. 시를 쓸 때 어떤 고정관념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뭐든 다 해보려고 한다."

▷시의 화자가 다양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1인칭이 아닌 시가 많던데.
"여러 페르소나를 가져와 입체적인 시집을 만들고 싶었다. 여러 종류의 사람이 사는 세상과 마찬가지로. 주변에서 보고 겪은 인물이 모델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상상 속 화자들이다. '은미'란 시는 제주도 여행 중 버스를 타고 가는데 옆에 은미란 가상의 인물이 앉아 있으면 어떨지 상상하고 쓴 시다."

▷시집 제목 '기대 없는 토요일'은 무슨 의미인가.
"시집에 실린 56편의 시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제목이 뭘까 고민했다. 회사에 다니다 보니 대체로 토요일을 비롯한 주말에 시를 썼다. 그런 토요일들이 모여서 '기대 없는 토요일'이 됐다. 기대가 없다는 건 사실 어떤 기대가 있는 것과도 같은 의미니까. 기대한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삶이기도 하고.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이번 시집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뭔가.
"'살자.' '온몸으로 살아가자.' 시를 통해 살아가는 여러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전부다."

▷시인이 되기로 마음 먹은 건 언제인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 시창작 수업을 들었다. 원래 소설 수업을 들으려다가 시 수업만 수강신청이 돼서 우연히 듣게 됐다. 그런데 시 쓰는 게 생각보다 재밌었다. 처음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게 시인이었다."
이솔 기자
부담없는 위로가 되는 시 쓰고파

▷왜 시여야만 했나.
"시는 자유롭다. 기존의 문법이나 정형화된 틀에 상대적으로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형식을 만들 수 있어 매력적이다. 읽는 사람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 해석할 수 있단 점도 좋다. 생각이나 마음이라는 게 콕 집어서 말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은데, 시는 그걸 할 수 있게 해준다."

▷처음 쓴 시를 기억하나.
"처음 쓴 시는 첫번째 시집 <스키드>(2021)에도 실린 '다섯 가지 단어 설명서'다. '태양, 나, 너, 따갑다, 부드럽다"란 다섯 가지 단어로 쓴 시다. 이 단어들을 재정의해 새롭게 응용해서 시를 쓴 기억이 난다."

▷계속 시를 쓰게 만드는 힘은 뭔가.
"처음엔 '시가 도대체 뭘까'란 의문으로 시작했다. 시와 시가 아닌 것은 무엇인지, 경계를 찾는 작업이 주를 이뤘다. 그게 첫번째 시집이다. 이번엔 '삶은 뭘까'란 질문으로 이동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작가란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사람이고,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질문을 완성하는 것 자체가 글쓰기'란 말을 했다. 그 말에 공감한다. 시가 뭘까, 삶이 뭘까, 이런 질문을 품은 상태로 시를 써내려 간다."

▷요즘 품고 있는 질문은 뭔가.
"최근엔 '미래'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요즘 쓰는 시들이 미래에 대한 질문으로 수렴되더라. 개인적인 삶은 정해진 계획이 없고 가능성이 매우 열려 있는 상태다. 마음 속 질문도, 시의 모습도 변화하는 삶의 형태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을까 싶다."
민음사 제공
▷연말·연초 사건 사고가 많았다. 이 시대를 위해 시는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시 하나가 모든 역할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각각의 시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자유롭고 평화로울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묻는 시라든지,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시라든지… 저마다의 시가 각자의 역할이 있고, 시대의 흐름에 맞춰 해석할 수 있는 여지들이 생긴다고 본다."

▷본인의 시는 어떤 역할을 했으면 하나.
"부담 없는 위로가 되고 싶다. 지하철에서 가볍게 들고 다니며 꺼내 읽을 수 있는 시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독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소화시켜주면 더 바랄 게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