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 선물' 줬다고 신고…황당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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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6년 차 접어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직장 내 괴롭힘으로 동료 직원을 신고하고는 출근 안 하고 인스타에 남자친구와 놀러 간 사진을 올리면서 다른 직원들에게 '일 안 하고 출근도 안 해도 되니까 신고해보라'고 종용하더라고요."
'직내괴' 신고 오남용에 몸살 앓는 업무 현장
'법 신뢰도' 하락에 '업무 마비' 부작용까지
"상사 괴롭힘 법 아니냐는 우스갯소리 나와"
시행 6년 차에 접어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현장에서 오남용되는 사례가 넘쳐나고 있다. 허위로 신고를 당한 피해자들이 생기고 이를 관리·감독해야 하는 노동위원회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인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이 10일 의원회관에서 주최한 '직장 내 괴롭힘 제도개선 연속토론회'에서는 다양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오남용 사례가 소개됐다.
김 의원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가 많아서 노동위원회에서도 근로감독관들이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하소연이 많다"며 "하지만 이러한 신고 건수 중 2/3가 결국 '법 위반 없음'으로 결론이 나서 사이에서 이 법이 '상사 괴롭힘 법'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생일 선물 줬다가도 '괴롭힘 신고' 당해…'황당' 사례들
이날 발제자로 나선 김동희 한국경영자총협회 근로기준정책팀장은 "현행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의 판단 요건이 포괄적, 추상적으로 정해져 있어서 '괴롭힘'이 무엇인지 신고자 또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신고 오남용 사례를 소개했다."평소에 친하게 지냈던 A는 B에 3만원 상당의 생일선물을 줬지만, B는 A에 1만원 상당의 선물을 주자 A가 친했던 시절 B가 했던 업무 외 부탁을 수집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
"신입사원 A는 자신이 상사로부터 성추행당하는 것을 본 B가 상사에게 '미투 모르고 그러시냐'고 말리자 '왜 피해자 되라고 강요하냐'며 B씨를 신고했다."
"일용직 직원 A는 오전 한두시간만 근무하고 관둔 후 몇 달 뒤 사장 B에 하루치 임금을 요청했고 B가 '회사에 있었던 만큼 지급하겠다'고 하자 갑질했다고 노동청에 신고했다.""팀원 A는 매번 회사 양식을 무시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해 오타와 띄어쓰기 실수 등이 다수 발생해 팀장 B로부터 나무람을 들었는데 이를 폭언으로 신고했다."
허위 신고 넘쳐…'실제 피해자' 보호 어렵게 만들어
2019년 7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도입된 '제76조의 2'는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전문가들은 △업무상 적정 범위가 무엇인지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가 무엇인지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가 무엇인지 모호한 것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더 큰 문제는 신고 오남용이 법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허위 신고를 당한 사람뿐만 아니라 실제 피해자 보호도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장진희 한국노총 연구위원은 "오남용 방지를 위해 여러 기준을 구체화하자는 얘기를 하면 피해자 보호 문턱을 높인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결국 신고 오남용은 법 신뢰를 낮춘다"며 "현장에서는 이미 신고자를 손가락질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고 실제로 피해자가 신고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경우가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괴롭힘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는 점이 노무 갈등을 양산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패널 토론에 나선 김승현 노무법인 시선 노무사는 "법이 간섭해야 하는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우리가 막고자 하는 괴롭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이어 "현재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런 식의 신고를 용인하니 온종일 신고하고 있다"며 "공공기관 몇 개는 거의 업무 마비 수준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민형/이슬기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