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나랏밥 10년' 전직 서기관이 작정하고 비판한 공직사회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노한동 지음

사이드웨이 / 284쪽|1만8000원
요즘 공무원들 컴퓨터 파일명엔 ‘과수원’ ‘국수원’ 등의 단어가 보인다. 과장 혹은 국장이 수정을 한 번 지시했다는 뜻이다. 실무 담당자가 구속되는 사건이 늘면서 생긴 현상이다. 책임질 만한 소지가 있는 일은 최대한 맡지 않으려고 하고, 맡더라도 책임 소재를 명확히 남기려는 공무원이 많아졌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엔 공직 사회의 민낯이 드러나 있다. 저자 노한동은 2013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10년간 일한 뒤 서기관으로 승진하자마자 사직서를 냈다. 퇴직 후 공직 사회에서 경험하고 관찰한 문제를 기록하고자 펜을 들었다.

특정 예술인 지원을 배제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저자가 맞닥뜨린 첫 번째 민낯이었다. 당시 군 복무를 위해 잠시 문체부를 떠나 있었던 그는 이렇게 자문한다. “만약 내가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블랙리스트에 따라 지원을 배제하라는 지시를 거부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공무원 사회의 수직적이고 경직적인 회의 구조를 옛 TV 프로그램 ‘가족 오락관’ 속 게임 ‘고요 속의 외침’에 비유한다. 장관이 주재하는 실·국장 회의는 실·국장급 간부가 주재하는 과장단 회의로 이어지고, 다시 과장은 과원들을 불러 모아 같은 일을 반복한다. ‘고요 속의 외침’에서 한 사람의 말을 끝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전하는 사람의 주관이 섞이는 건 불가피하다. 말단 직원은 장관이 정말 뭐라고 말했는지 알기 어렵고 눈치껏 추측해야 한다.몇 가지 개선 방안을 제시한다. 하나는 관료의 전문성 강화다. 전문성은 정책의 질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에 저항하는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하급자가 현장에 대한 이해와 탄탄한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면 제아무리 상급자라고 해도 잘못된 일을 무작정 밀어붙이기 어렵다. 이를 위해 순환보직 제도의 관행을 개선하고 인사 정책의 불필요한 경직성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직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공무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생생하게 기록한 일종의 르포르타주와 같은 책이다. 퇴사자가 아니라면 쓰기 어려운 직설적이고 과감한 문장이 곳곳에 실려 있다. 꼭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조직의 관료주의에 지친 독자라면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시원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